10. 국경

by 임복경


처례성으로 돌아온 팔급은 유난히 말이 없었다. 며칠이 지난 어느 날, 장군이 요새를 둘러보고 있었다. 망루에 올라 이웃한 국가, 동호의 드넓은 초지를 내려다보았다. 돌과 풀로 덮인 끝없는 초원이 고요하기만 했다. 동서로 얕은 개천이 실처럼 굽이굽이 늘어져 초원을 갈랐다. 천을 경계로 아래쪽은 고 나라의 풀이었다. 국경이었다.

그때 개천 건너 오른편에서 양 울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떼를 지어 물을 마시던 양들이 물속을 더듬거리며 고 나라 쪽으로 향했다. 동호의 사람 둘이 뒤에서 양들을 불렀다.

“얍, 얍, 얍…”

“이얍, 이얍, 이얍…”

이미 물 너머 무성한 풀에 눈이 팔린 양들이 두 사람의 다급한 작대기 질에 더 허둥대며 천을 건넜다. 얼결에 두 사람도 양들을 쫓아 그렇게 국경을 넘었다. 둘 중에 덥수룩한 수염으로 온 얼굴이 시커먼 사내가 양들이 흩어지지 않게 모으려 애를 썼다. 몸집이 작은 이는 여름 햇볕에 몸이 달아올랐는지 양몰이를 포기하고는 흐르는 물에 들어가 얼굴을 씻었다. 털북숭이 사내가 고개를 돌려가며 이리저리 둘러보다 자리에 앉았다. 작은 이도 곁으로 다가가 누워 몸을 말렸다.


지켜보던 망루 위 팔급 장군이 그들에게서 눈을 떼지 않고 낮은 소리로 명하였다.

“저들을 잡아 배를 갈라 매달아라.”

부장군이 팔급의 의중을 살피다 입을 뗐다.

“일개 목동이 온데….”

“염탐꾼이다. 동호가 도발한 것이다. 이를 빌미로 동호를 건너 흉노로 진격하겠다.”

“먼저 국왕께 적의 도발을 알리고 전쟁 개시를 허락받아야 할 것입니다.”

“적의 침입이 있을 시 예외다. 지체 없이 맞서야 한다. 지금이다. 서둘러라.”

“네. 명대로 이행하겠습니다.”

이내 아비와 아들로 보이는 양치기 둘이 장대에 높이 달렸다. 그들의 공포에 질린 휘둥그런 두 눈에, 갈라진 배에서 흘러내린 창자에 날짐승이 들끓었다.


장군은 적진으로 정찰군을 보냈다. 그들은 동호의 토성에 이르는 은밀한 접근로를 알아냈다. 초승달이 구름에 가려져 어두운 밤, 정예군이 선봉에 나섰다. 뒤로는 엄호와 매복을 맡은 중원 군과 달아나는 병사들을 차단하고 추격할 후속군이 따랐다. 대낮의 전투에 비하면 그 수는 한참 적었다.

군사들은 가죽신을 신고 뛰어 발소리를 땅에 묻었고 번쩍이는 칼을 가슴에 품어 날랐다. 행여 어둠 속에서 눈빛이라도 적의 눈에 띌 새라 눈까지 가늘게 떴다. 말소리 대신, 새소리와 벌레 소리를 주고받으며 적진에 스며들었다. 야전의 제일 임무는 병참기지를 급습해 물자와 군 장비를 약탈하고 노획할 수 없는 것들은 불사르라는 것이었다. 병사들에게 전리품으로 말과 무기만이 허용되었다.

동호의 졸고 있던 보초병들은 날아든 고 나라 정예군에게 목을 내주었다. 이어 토성의 문이 열리고 고의 중원 군이 쏟아져 들어왔다. 일부 군사들이 부러 횃불을 피워 나눠 들고 장수들의 숙소로 몰려갔다. 유인술이었다. 적들은 우왕좌왕하다 횃불을 뒤쫓았다. 후속군에 속한 궁수들의 화살이 이들을 쓰러뜨렸다. 대부분의 고 나라 병사들은 무기고로 향했고 중원 군이 침탈하여 빠져나간 자리에 후속군이 불을 놓았다. 고 나라 병사들이 어둠 속에서 풀숲을 가르며 갈 때는 단 한 개의 무기에 업혀 갔다가 새벽 어스름에 돌아올 때는 적의 무기들을 메고 적의 말을 타고 왔다.


틈을 주지 않고 팔급은 바로 다음 날, 동호를 토벌하러 나섰다. 무기를 잃은 동호의 군사들은 빈손으로 고 나라 군대를 맞았다. 무릎을 꿇는 장수를 베고, 스스로 목을 벤 장수를 매달고, 아이나 어른이나 돌이라도 던지는 이도 베었다. 고 나라 군이 지나는 길에 주인을 잃은 머리가 나무 아래 떨어진 밤송이처럼 나뒹굴었다.

팔급이 처례성으로 돌아와 여왕에게 알릴 승전 장계를 써서 전령에게 전하였다. 곁에는 목숨을 부지한 동호국 장수의 부인이 무릎을 꿇고 앉아 있었다. 그날부터 국경을 지키지 못한 나라도, 그 나라의 여인도 지키고자 하던 것들을 모두 잃었다.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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