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청안

by 임복경


고 나라에 귀족 출신 자제 중 열여섯부터 스무 살까지 무술과 학문을 수련하는 ‘태사’라는 기관이 있었다. 태사의 대원들은 삼천여 명이었고 귀족들의 자립 단체라 왕실이 운영에 관여하지 않았다. 관리 체계는 나이보다 실력을 기준 삼아 선출하였다.


지도자는 우선 태령과 태원으로 나뉘고 이들을 인솔하는 태장을 두었고 최고 우두머리를 태수라 하였다. 나라의 인재가 모였기에 훗날 과정을 마친 태사의 인걸 대다수가 관직에 등용되었다. 최고 인재라 할 태수는 해마다 선발되었다. 시험을 통해 최고점자 3인을 태수 후보자로 선발하고 이전 삼 년간 태수를 지낸 3인이 모여 최종 낙점하였다.


가을걷이가 끝났을 즈음인 십일월 일곱째 날부터 태수 선발 시험을 치르고 새로 뽑힌 태수는 새해 첫날 왕으로부터 임명장을 받았다. 첫 관문에서 태장 수련과정인 법과 윤리, 천문 시험으로 이십 인을 걸러 냈다. 다음으로 기마, 궁술, 검투를 겨루어 최종 3인을 뽑았다.


궐 밖 태사에 청안, 위헌 그리고 팔급이 최종 3인 중 다음 태수를 낙점하기 위해 모였다. 그들은 지난 삼 년간 태수를 지낸 자들이었다.

“지난 한 해 동안 노고가 많으셨어요. 세심한 성정을 발휘하셔서 빈틈없이 태사의 일이 잘 꾸려졌다고 칭찬이 자자합니다. ” 위헌이 청안에게 인사를 건넸다.

“두 분의 성과에 흠집이 날세라 전전긍긍했을 뿐입니다. 무사히 임기를 마치게 되어 기쁩니다.” 청안이 겸손하게 응수했다.

“자, 그럼 각자 최종 우수 3인 중에 마음에 둔 사람을 천거해 보십시오. 추천 후에 논의를 거쳐 결정하십시다.” 팔급이 채근하였다.

“나 화인이 임무를 마쳤으니 다음은 제인 출신 중에 형의 동생 거립이 적임자라 여겨집니다. 성적도 가장 우수하니 금상첨화입니다.”


청안이 팔급을 바라보며 말했다. 고 나라 본령 출신인 화인 자신 다음으로 제나라 출신 제인이 태수를 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제안이었다. 태사의 귀족은 주류 세 개 파로 나뉘었다. 고 나라의 화인, 평 나라의 평인, 제 나라의 제인이었는데 어머니의 출신에 따른 구분이었다.


태수 자리에 세 개 파를 교대로 앉혀서 보이지 않는 알력이 균형을 이루고 있었으니 암묵적으로 이번엔 제인 출신이 선출되어야 할 순서였다.

더구나 거립은 내년이면 스물이 되는 나이라 통솔력을 발휘하기에 수월하다 여겨졌다. 팔급은 기대하던 말을 듣게 되어 내심 흡족해 위헌의 찬동을 구했다.

“위헌은 어떻게 생각하시오?”

위헌이 선뜻 말을 잇지 않더니 입을 뗐다.

“거립이 우수한 태장이긴 하나 전임자에 이어 다음에도 여 태수를 세우는 것에는 반대하오. 분위기를 새롭게 하는 차원에서 이번에는 남 태장중에서 골라야 합니다. 면전에서 이런 말 하긴 거북하지만 거립은 평판 면에서도 부적격하오.”

“평판이라니오?” 팔급이 미간을 찌푸렸다.

“타고난 운명이니 어쩔 수 없다지만 거립이 주부 공의 친자는 아니란 거요. 못난 자들의 입방아라고 치부하면 그만이라 싶겠지만 태사의 위상에 굳이 흠을 낼 필요가 없다고 봅니다. 거립에게도 좋은 일이 아니오. 태수 자리에 나서면 물밑에서 떠돌던 말들이 수면으로 떠올라 거립을 괴롭힐 수도 있어요. 자리에 욕심을 부리다 더 큰 화를 당할지도 모르는데 이를 혈육이라면 말려야 하지 않소?”


예상했던 위헌의 반대였다. 불편한 심경을 숨기며 팔급이 위헌의 말을 받았다.

“나와 동생도 어리석은 자들이 떠드는 말을 들어 익히 알고 있소. 말씀대로 태사의 입장도 고려해 거립과 상의했지요. 우리의 결론은 이렇소. 출신 문제는 태사에 입단할 때 검증된 바이고 더는 공식적으로 거칠 것이 없다는 거요. 저급한 이들의 말질에 휘둘려 자격이 되는 거립이 태수에 임명되지 못한다면 그것이 오히려 태사의 위상을 해치는 일이 될 것이오.”

위헌이 헛웃음을 지으며 어색한 분위기를 무마하려 들었다.

“부마의 마음을 상하게 하려는 건 아니었어요. 태사도, 거립도 모두 안존해야 좋지 않으냐는 말이지요. 세상일이라는 것이 민심을 따라야 형통하다고도 하지요. 안 그렇소, 청안?”


청안은 거립을 태수 자리에 앉혀 자신이 벌려놓은 태사 내에서의 일들을 함께 도모하길 바랐다. 위헌이 반대하고 나서니 난감해졌다.

청안은 태사에 입단한 후 줄곧 여자 대원들의 충원에 주력했다. 머지않아 황녀가 제위에 오르면 측근인 자신이 오른팔이 될 날을 염원하며 그때를 위해 한편이 되어 따르는 힘 있는 자들을 모으고자 했다. 태사에 삼천 명 대원 중 여자 대원이 천여 명에 달했고 청안이 여자 대원들을 부르는 명칭을 공모해 ‘태선’이라 새로 지어 불렀다. 청안이 태선들을 위한 생활공간을 따로 지었을 뿐 아니라 태선들만의 크고 작은 소모임을 주도하였다.


태선들의 활동이 늘면서 태사의 분위기가 더 활기를 띄었고 이는 자연스레 어린 태선들의 입단을 부추겼다. 청안에게는 그녀의 복안에 귀 기울고 따라줄 막역한 태수, 아니 태선이 필요했다.


두 사람의 의견이 충돌한 상황이라 청안의 결정만이 남았다. 위헌의 의견대로 하면 차석을 차지한 평인 출신 조 태장을 선출해야 했다. 청안이 고심하는 표정으로 말했다.

“내일까지 시간이 있으니 저는 하룻밤 더 깊이 생각한 후에 기표하겠습니다. 두 분께서는 기표지에 표기하셔서 함에 넣으시지요.”

“그러시지요. 그럼….”


위헌이 3인의 이름 중 차석의 이름 즉, 조 태장의 이름 위에 자신의 이름을 쓰고 나서 자물쇠가 달린 목함에 넣었다. 이어 팔급이 거립의 이름 위에 표시하고 함에 넣었다. 청안이 헤어지기 전에 인사를 나누려 하는데 밖에서 다급한 발소리가 들리더니 문 앞에서 멈추었다.

“화란궁에서 당도한 급한 기별을 알립니다.”

“들어와라.”

팔급의 말에 소년의 앳된 티를 벗지 못한 태령 하나가 상기된 얼굴로 문을 열고 들어섰다.

“왕녀께서 태기가 있으시다는 전갈입니다.”

뜻밖의 소식에 일순 정적이 흘렀다. 침묵을 깨고 먼저 청안이 만면에 희색을 띄고 기뻐했다.

“경하드립니다. 어서 왕녀께 가보셔야지요.”

“경축하오, 온 나라가 기뻐할 일입니다.” 위헌이 팔급의 손을 부여잡았다.

“그럼, 나는 이만….”


팔급이 급히 자리를 떴다.

위헌이 팔급을 따라 나가고 청안이 기표지를 한참 쳐다보았다. 크게 한숨을 쉬고 나서 무거운 표정으로 붓을 들어 차석 조태장의 이름 위에 표기한 후 용지를 함에 던져 넣었다.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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