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거립

by 임복경

동짓달 새벽별이 뜨기 전이었다. 제강부인은 잠결에 아득한 아기 울음소리를 들었다. 바람 소리였나, 바람 소리에 끊어졌나 싶었는데 집 안에서 나는 소리였다. 설핏 아들의 울음인가 싶어 눈을 번쩍 뜨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부인의 아들은 옆에 곤히 잠들어있었다. 그렇지, 이제 팔급은 세 살이 되었으니 그런 아기 소리를 낼 리가 없어, 부인이 아들의 이마를 쓸어주며 안심했다.


그때 다시 가느다란 울음이 들렸다. 자신의 존재를 조심스레 알리듯, 울어도 되나 가늠하듯 작게 이어졌다. 부인이 천천히 일어나 방문을 열었다.

발 앞에 강보에 단단히 싸인 것이 눈에 들어왔다. 성큼 문지방을 넘어 아기를 지나 마루 끝에 서서 컴컴한 사방을 둘러보았다. 달빛조차 삼킨 어둠뿐이었다. 문소리를 들어서였을까, 문이 열려 방안의 훈김이 닿아서였을까 아기가 조용했다.


부인이 돌아서서 아기를 싼 포를 덥석 안고 방으로 들어왔다. 어린 것이 얼마나 한데 있었던 걸까, 떨리는 손으로 등잔을 밝혔다. 아기는 두툼한 포로 둘둘 말렸고 머리와 눈까지는 면포로 싸여 있었다. 드러난 코와 입에 손바닥을 대보니 차긴 하지만 다행히 얼음이 배기진 않았다. 부인이 앞섶을 헤쳐 아기를 끌어안고 이불을 둘러썼다. 한 손으로 연신 포 위를 문지르며 뛰는 가슴을 진정시키려 애썼다. 대문 앞이 아니라 안채 방문 앞에 업둥이라니, 여기까지 들어왔다니, 부인이 쓰다듬던 손을 멈추고 아기 얼굴을 덮은 면포를 조심스레 들어 올려 보았다.


노란 등잔불에 가까이 다가가 앉았다. 넓은 이마에 가뭇한 피부의 아기가 갑자기 들어온 불빛에 눈이 부셔 미간을 찡그렸다. 사내아인가, 부인이 강보를 풀던 손을 멈추었다. 화엽 무늬의 붉은 비단 속싸개가 한 번 더 아기를 싸고 있었다. 여자아이였다. 네 귀퉁이에는 금으로 만든 작은 방울 장식이 달랑거렸다. 아기가 들여다보는 부인과 눈을 맞추었다. 그 눈빛이 평온하기만 해서 운명의 파랑 끝에 선 아이답지 않아 보였다.


문중의 허락이 어렵지 않게 떨어졌다. 업둥이를 들이는 것은 가택을 지키는 업신을 맞는 일이라 했다. 복을 들이는 일이었고 손이 귀한 집안에는 경사였다. 아이가 대문 앞에 버려졌다면 집안사람으로 들이는데 여러 해 걸렸을지 모를 일이었다. 업둥이는 부엌에 딸린 첩실, 손님이 머무는 객관, 별채를 거쳐야 했을 것이었다. 부모 될 이는 아이의 생김부터 천성, 성장 정도를 가늠하고 살폈다. 그래서 업둥이가 대문에서 안채까지 발을 들이는 데는 보통 짧아도 이삼 년 걸렸다. 안채에서 기르겠다는 결정은 가문의 한 사람으로 받아들인다는 의미였기에 더 오랜 시일이 걸리기도 했다. 그런데 이 아이는 첫날부터 부인의 안방으로 들게 되는 바람에 기나 긴 시험의 시간을 건너뛰고 단박에 집'안' 사람이 되었다.


안채에 머문 지 여섯 달이 지난 어느 날, 앉아있던 아이가 제강부인의 팔을 잡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업둥이가 그날로 이름을 얻었다. ‘거립’이었다.

두 발로 일어선 날부터 거립은 부쩍부쩍 성장했다. 또래보다 항상 머리 하나 정도 컸는데 열 살 무렵부터는 오라비인 팔급 보다도 조금 더 컸다. 동글한 얼굴에는 온화한 미소가 물들어 있었고 둥근 어깨에 겸손이 묻어났다. 말씨는 또렷하지만 느릿해서 듣는 이를 집중하게 했다.


거립은 자신이 집안의 업둥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언제부터인지 누구한테서 들었는지 기억할 수 없지만 아버지나 어머니 혹은 집안사람으로부터 정식으로 들은 게 아닌 건 분명했다. 유모한테서였나, 종들의 뒷소리였나, 마을 사람들이 하던 말을 들었나, 알 수 없지만 알게 되고도 크게 상심하지 않았다. 어렴풋하게 느끼던 자신의 처지에 대한 증거들을 한 가지씩 모으고 이리저리 조각들을 맞춰 볼 뿐이었다.


거립에게 아버지는 자애롭고 어머니는 애틋하였다. 꼭 집어 모을 수 있는 증거는 없다시피 했다. 거립이 혼인할 시기를 넘기기 전까지는. 오가는 혼담 속에 신랑감들이 하나같이 아버지 맹문의 집안보다 기울었다. 집안이 괜찮다 싶으면 사람이 한참 모자랐다. 상처한 홀아비이거나 남편감이 열 살 어리거나 했다. 거립이 업둥이라는 증거였다.


마땅한 혼처가 나서지 않아 거립의 나이 열일곱을 지나고 있었다. 문밖에선 버석하게 마른 오동나무 잎이 마당을 쓸고 다녔다. 잔병치레로 해쓱해진 제강부인이 딸과 그림을 그리느라 방안은 고요하기만 했다. 흰색 비단 천에 솔가지를 태운 송연묵으로 나무줄기를 그리고 돌가루로 색을 낸 석록으로 잎을 그려 넣고 붉은 모래로 꽃잎을 더해 네 귀퉁이까지 가득 채웠다.

거립은 창공에서 날개를 활짝 펴서 날고 있는 큰 새를 완성했다. 몸통이 작고 날개가 커서 비단 화폭이 모자랄 지경이었다.


“새의 다리가 세 개로구나.” 부인이 웃었다.

“그래야 두 개일 때 보다 굳건하게 서지요.”

거립이 눈웃음 지으며 말을 이었다.

“어머니의 그림은 줄기가 끊어지지 않고 모두 이어져 있네요.”

“나무의 생명력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 위대함도. 나무가 숲을 이루고 그 안에 온갖 미물이 살고 그로 인해 우리가 사는 것이니까.”


부인이 붓을 내려놓고 한구석에 놓인 궤를 열어 칠기함을 꺼내왔다. 함을 열어 붉은 천을 펼치니 금색 실로 수놓은 화엽 무늬가 가득했다.

“이것은 네가 왔을 때 너를 싸고 있던 물건이다. 여자아이일 경우 붉은색을 쓴다지만 어디 그뿐이겠느냐. 이것은 너를 보내는 어미의 마음이 들인 물 일게다. 이 꽃무늬 한 땀에 너의 무사를 빌고 또 한 땀에 복을 새겼을 테지. 그렇다 한들 너의 원망을 피할 수 있겠느냐만… 너의 생모도 그것을 피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너의 한을 비워 낼 수 있다면 저지른 죄보다 더한 벌을 받으려 하겠지.”


거립이 천을 들어 보다가 얼굴을 가리고 어깨를 들썩였다. 간신히 울음이 잦아들자 부인이 자신이 그린 그림을 내밀었다.

“이건 내가 너의 생모의 마음을 흉내 내보았다. 어떠냐 거의 흡사하지 않으냐?”

거립이 이번엔 아예 치마폭에 어프러졌다. 부인이 옆으로 다가와 거립의 머리부터 등까지 쓰다듬었다. 부인이 거립을 업둥이로 처음 만났던 그날처럼.

“싸개 끝에 달린 금령을 보았지? 그 귀한 것이 귀퉁이마다 있지 않으냐? 사방에서 너를 보호하고 액운을 막아주는 것이다. 그렇게 우리 딸을 지켜주고 싶은 어미가 둘인 게다. 너는 그런 어미 둘을 가졌다, 울 일이 아니다, 아가. 네가 어미가 된 연후에 이야길 들려주려 했는데… 우리 딸이 그런 어미의 마음을 가지게 된 후에….”


다음 해 가을에 거립은 홀로 그림을 그렸다. 다시 볼 수 없는 어머니를 그렸다.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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