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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록 Aug 06. 2016

No_3. 가방 고치는 노인

한 자리에서 38년을 지킨다는 것. 

그러니까 몇 년 전이었다. 외국에서는 꽤 유명하다는 아웃도어 브랜드가 국내에 들어와서 한창 홍보를 시작할 때였다. 마침 배낭이 하나 필요했던 터라 장만을 했다. 그런데 왠걸, 한 두어번이나 매었을까.. 갑자기 가방 끈 한 쪽의 실밥이 튿어지기 시작한 게다.  뭐 이런 황당한 경우가 있나 싶었지만 일단 A/S를 보냈다. 오고 가고 2주가 넘게 지나고 나서 수선이 되어서 온 녀석을 보고 나니 또 한 번 실소가 났다.  원래 배낭색과 다른 검은 색 실로 두 세번 시침질을 해서는 그걸 수선이라고 해서 보내왔던 것이다. 그냥 참고 쓰자 싶었으나 그 배낭을 맬 때마다 항상 드는 불안함은 어쩔 수가 없었다. 언제라도 튿어지면 어쩌나 하고... 그러다 보니 자주 매지 않게 되기도 했고.


그렇게 2~3년은 불안한 마음으로 쓰고 있었는데...역시나 2주 전에 한쪽의 실밥이 다 튿어지면 가방 끈이 너덜대기 시작했다. 걍 버릴까 하는 마음도 있었으나 혹시나 싶어 세탁소를 가져가 보았다. 세탁소에서는 이런 녀석은 수선을 할 수가 없다는 게였다. 그러면서 골목 위로 한 50m를 가면 구두와 가방을 수선하는 곳이 있으니 한 번 찾아가 보라는 것이었다. 조금 올라가 보니 골목 한 귀퉁이에 한 평 남짓한 자그마한 구두 수선집이 있었다. 오다가다 매일 보기는 한 곳이었다.


유리 쪽문을 열고 들여다 보니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 앉아 구두를 다듬고 있었다. 고개를 스윽 들어 바라보는 눈빛이 예사롭지 않다. "뭐 때문에 오셨소?".. 괜히 쭈삣쭈삣하며 "배낭 끈이 떨어져서요."라고 하니 이리 내어보란다. 배낭을 받아드는 손이 투박하고, 손가락마디마디가 굵으며 손 가득 세월의 흔적이 배어 있는 모냥새가 꽤나 연륜이 배어 있어 보였다. 


"만들기는 잘 만든 가방인데.. 마감이 잘못 되었구랴. 상품 검수팀에서 잘못했네."라며 한 마디를 툭 던진다.

그래서 수선을 하려면 얼마나 들 것 같습니까. 물으니...

"이게 보기에는 가방 끈만 툭 떨어진 거 같으나, 이 끊어진 부분을 안으로 미어 넣어 집으려면 등판에 대어 있는 판이 있어 위에 붙어 있는 마감을 다 뜯어야 하오. 그리고 난 후에 안에서부터 집고, 다시 위에 덧대어 있는 부분을 다시 마감을 해야하는 게용. 그냥 대충 겉만 마감을 해서는 짐의 무게를 견디지 못해 그때 그때 떨어질 게요."

라며 정작 얼마가 드는지는 말하지를 않는 게다.

그래서 재차 그래서 얼마나 들겠습니까...하고 물으니

"그 작업을 하려면 족히 반나절은 해야 하고. 허면 한 3만원은 받아야겠소.  "

아니 무슨 가방 수선에 3만원이냐, 그 돈이면 하나 새로 사겠다..라는 생각이 스치우는데 그 표정을 읽었는지 노인이 한 마디를 덧붙인다. 


"가방이 참 좋은데 아깝긴 하네.. 요새 싸구려 중국제 가방도 3만원은 넘긴하지."

듣고 보니 그말도 맞는 듯한 것이 영업을 아는 노인장인 것이었다. 그러다 불현듯 이곳에서 꽤 오래 일하신 듯 하여 얼마나 계셨나 물어보았다. 

"근데 여기서는 얼마나 오래 일을 하셨던 거에요?"라고 물으니..

"이태원 사우? 그럼 알텐데...여기 38년 있었지. 근데 총각 나이는 어찌 되우?"

"아...제가 태어났을 때부터 하셨네요. 제가 올해 서른 여덟입니다."

"어이쿠.. 그렇게 안 봤는데.. 인물도 좋고 영 젋어보이는구먼..."

이라길래 (절대 인물도 좋고 젊어보인다고 해서가 아니라...) 38년 장인이 반나절을 작업을 하시는데 3만원이면 싸고 말지요... 라며 냉큼 맡겼다.

역시 영업을 잘 아는 노인장인 것이었다. 

"근데 이게 작업 시간이 좀 걸리는데 언제 찾으러 오시려 하우?"라길래..

그냥 담 주 주말에나 오겠습니다 하고 나왔다.


정작 너무 바빠서 2주만에 찾으러 갔더니..

"아이고.일찍도 오셨소." 이러면서 배낭을 내어주는 것이었다.

집에 와서 보니 그 큰 공사를 했다는데 그런 티도 하나 없고 가방끈을 툭툭 댕겨봐도 새 가방인 양 튼실하게 잘 마감이 되어 있는 것이었다. 어허.. 그 노인이 이태리에서 태어났으면 가죽 장인으로 마이스터 대접을 받을 것을 하필 이 나라에 태어나 저런 고생을 하시는구나 싶으니 괜히 눈시울이 붉어지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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