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카페의 노래>, 카슨 매컬러스

by 아룬

그런 겨울이었다. 입김을 호호 불어 손을 다스려 보아도, 입김조차 성에가 되어 투덕투덕 내려앉을 듯 하던...

이별의 말은 그 입김 같았다. “우리 헤어져.”라는 말은 분명 형태 없는 ‘말’이건만 입 밖에 내어지는 순간 스스로를 ‘물질화’한다. 그리고 그 ‘말’은 곧 가슴을 묵직히 내려 누른다. 누구의 입에서 먼저 나오든 항상 그렇다. 이제 사랑이 지겨운 자든 혹은 더 사랑하기에 힘들하던 자든.


“사랑이란 두 사람의 공동 경험이다. 그러나 여기서 공동 경험이라 함은 같은 경험을 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사랑을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이 있지만, 두 사람은 완전히 별개의 세계에 속한다. “


카슨 매컬러스의 <슬픈 카페의 노래>는 사랑이 왜 항상 지랄 같은 것인지를 딱 저 세 문장으로 명쾌하게 알려준다. 남자보다 힘이 세고 건장한 6척 장신의 그악스러운 미스 아밀리아, 그녀의 가게로 스며들어 그녀의 사랑을 받게 되는 꼽추 라이먼. 그리고 미스 아밀리아의 전 남편이자 다시 돌아와 라이먼의 추종을 받게 되는 메빈 마이시. 이 한 여자와 두 남자의 뒤틀린 애증은 그래서 참 지랄 맞다.


“간단명료하게 말한다면, 사람들은 대부분 사랑 받는다는 사실을 마음 속으로 힘들고 불편하게 느낀다. 사랑 받는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을 두려워하고 증오하게 되는데, 충분히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사랑하는 사람은 자기의 연인을 속속들이 파헤쳐 알려고 들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이는 아무리 고통을 수반할지라도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과 가능한 한 모든 관계를 맺기를 갈망한다.”


때론 ‘사랑’이라는 것이 그 대상에겐 그 만큼의 무게감이라는 걸 알았더라면 내 젊은 날의 사랑이 조금은 덜 힘들었을까… 아마 아닐 것이다. 그대 그 사랑이 내가 아님을 깨달았던, 그 겨울의 햇살은 여전히 따스하였으니.


지금은 안다. 바래도 손 닿을 수 없는 것들 따위, 일찍 포기하는 게 더 나은 걸. 때론 얻는 게 없어도, 아프지 않은 게 더 낫다는 걸.


하지만, 또 안다.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 알았더라도 여전히 같은 길을 걷고, 같은 아픔에 온몸을 비비 꼬며 진저리 치고, 같은 사랑과 같은 이별과 같은 상처 위로 애써 굵은 소금을 흩뿌렸으리라는 걸.


그러니 괜찮다. 당신은 괜찮은 거다.

그렇게 얘기해 주고 싶었다. 미스 아밀리아에게도, 또 언젠가의 나에게도,

그리고 지금 그 어딘가에서 사랑으로 아파하고 있을 그대들에게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