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그렇게 서로에게 먹일까

by 아룬

SNS에서 그런 글을 보았다. 한일 부부인데 시댁과 처갓집에서의 아침상 모습이 다르다고.

한국인 시어머니는 며느리가 자고 있으면, ‘그래도 아침은 먹어야지'라고 하며 어떻게든 깨우라고 아들을 채근한단다. 반면 일본 장인은 사위가 자고 있으면 ‘어,그래. 그럼 우리끼리 먹지, 뭐'하고 끝.


그 뒤에 이어지는 내용은 대충 한국은 관계에 있어서 타인의 거리감을 존중하지 않는다는 내용이었던 거 같다. 뭐 댓글도 한국의 정이 은근이 막무가내이고 본인들의 생색용인 경우가 많다는 내용이다.


내가 얼마전에 깨달은 게 있는데, SNS 상에서 내용이나 작성자의 의도와 상관없이 어그로를 끌 수 있는 문장이 있다. (여러분들도 조심하시라...)


“남자는 ~한데, 여자는 ~ 하다.”

“한국은 ~한데, 일본은 ~ 하다. (중국은 ~ 하다).”


딱 그렇게 댓망진창이 되어 있었다.


그런데 흐음…우리는 아무튼 어떻게든 먹이려고 하긴 한다.


왜일까.


어린 시절에 무궁화호를 타고 가면(그때는 마주보게 세팅해뒀던 좌석이 은근히 많았다.) 앞자리에 처음 보는 할머니들이 그렇게 삶은 계란이랑 귤을 주셨다. 드라마 속의 클리셰 마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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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만 해도 굶고 살 일은 없으니, 귤을 먹지도 않는 나는 그들의 친절이 성가셨다.


하지만, 시간을 조금만 돌려보자. 전쟁통에 피난 다니고, 다른 건 둘쨰치고 배고픔조차 어찌할 수 없던 시절이 있었다. 양은 도시락통에 계란 후라이 하나 들어 있는 것도 큰 이벤트였던 시절이 있었다. 오죽하면 위세좀 부리는 걸 두고 ‘방귀 좀 뀌고 사나보다.’라고 했을까. 방귀는 그냥 나오나. 뭐라도 먹어야 나오지.


그러니 방귀 꽤나 뀌는 것 조차 위세가 되던 시절이었다. 먹는 게 그만큼 귀했던 거다. 그 시절을 살아온 이들에게 먹을 걸 내어준다는 건, 어쩌면 어떤 의미에서는 가장 귀한 걸 내어주는, 가장 보편적인 호의였을지도 모르겠다.


누구나 배고프던 시절이었지만, 또 누구나 서로 힘든 걸 알기에 그 정도 염치는 있기에 받고 싶어도 서너 번은 손사레를 지으며 거절하는 누군가가 또 있었을 것이다. 또 그걸 알기에 억지고 손에 쥐어주는 누군가가 있었을 것이다. 그 기억들이 알게 모르게 몸에 새어진 것일테다. 세월이 흘러서 이제 그런 행동조차 ‘관계의 거리’를 침범하는 행위라고 재단한다. 지금의 현상에서 보면 그럴지도 모른다.



그래도, 누군가 기차칸에서 삶은 계란 하나를 준다면, 꽤나 감사할 거 같다.


절대 내가 지금 배가 고파서 그런 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