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은 리퍼 상품일지도
그래, 대충 증상이야 그렇다 치자. 그런데 사실 말이다. 잘 모르겠더란 말이다. (그러니 참선도 하러 가보았지.)AI 녀석이 알려준 것마냥 인간을 규정하고 바라보는 관점은 너무도 다채롭기 때문이다.
철학적(?)으로 보면 이렇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고 해보았자 과연 생각하는 ‘나’라는 녀석은 과연 실체가 있는 것인 가, 나는 생각하기를 선택한 실존적 존재인가, 그 선택은 나의 무의식의 발로는 아닐까, 내 성격은 그럼 무의식에 의한 것인가, 하지만 그것은 어릴 때 자랐던 붓싼 싸나이의 감수성 때문은 아닌가…. 어쩌고 저쩌고.
그러다 저런 사변적인 생각을 떠나 현실적으로 정의하자면 이렇게도 가능하다. 무슨 책 제목 마냥 ‘서울 전세에 대기업 비스무리한 곳 다니다가 떄려치운 박차장’이라고 쓸 수도 있고, ‘경상남도 밀양시 삼랑진읍 송지리 박모 씨의 애물단지 막내 아들’이라고 써도 되고.
만약, 당근마켓에 올린다고 치면 이렇게 써야 할지도 모르겠다.
“40대 후반의 리퍼 상품. 연식이 오래된 만큼 사용감은 있는 편입니다. 너무 예민한 분은 피해주세요. 무게가 있는 만큼 직접 픽업하러 와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중고 거래 특성상 반품 및 환불은 불가합니다.”
Q.E.D
Major Bug Fixed.
Nirvana Updated.
이렇게 머리 속에서 난장판이 벌어지는 와중에….
“꼬르륵”.그렇다. 배가 고팠다. 저녁 늦게 마신 커피 때문에 시간은 늦었지만 잠은 오지 않는다. 라면이라도 끓여 먹을까. 먹고 나면 또 배가 불러서 한 동안 더 못 자겠지, 아니 그런데 배가 고픈 채로 잠이 드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잖아.
“꼬!르르르륵!”
갑자기 그 소리가 베토벤 교향곡 5번 ‘운명’의 전주처럼 다가왔다.
조금 전까지 일생일대의 실존을 고뇌하는 척하였으니, 이제는 라면을 탐하는 나란 존재는, 그저 한갓 짐승이었다. 배가 고프면 잠이 들지 못하는, 그런 동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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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냐. 그렇군. 그렇다... 그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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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호호호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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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배가 고픈 존재였다.
그렇다.
나는 동물이다.
인간은 동물이었다. 아니 이것이 무슨 대단한 발견이라고, 나는 이 밤중에 이걸 중얼거리고 있는가. 하지만, 그것이 지금 내가 찾아낸 유일한 사실 아닌가?
그러니까 대한민국의 40대 후반의 남성이라는 ‘나’라는 개체는 꽤나 특수할 것이다. 하지만 그래봤자 인간이다. 그리고 아무리 만물의 영장이 어쩌고 하고, ‘인간’이라는 ‘종’이 특별하긴 하지만 그래봤자 동물이다.
그러니 ‘나’라는 존재는 결국 동물의 생리학적 기반을 벗어날 수 없다. 즉 동물로써 가지고 있는 일종의 메커니즘이라는 게 있을 것이다. 배가 고프면 밥이 먹고 싶고, 먹었으면 싸야 하고, 잠을 못 자면 졸리게 되어 있다.
그래서 다시 생각해본다. 나는 무엇인가. 인간이다. 인간은 무엇인가. 동물이다. 동물이란 무엇인가. 생물이다. 뜬금없지만 그래서 대체 인간은 어떤 생물학적으로 어디에 속하는지 궁금해졌다. 살펴보니 저렇다.
계: 동물계
문: 척삭동물문
강: 포유강
목: 영장목
과: 사람과 (Hominidae)
족: 사람족 (Hominini)
속: 사람속 (Homo)
종: 사람(Homo Sapiens)
아니, 뭐가 저렇게 복잡한가. 어쨌든 포유류에 속하고 영장류에 속하고 대충 ‘사람 뭐시깽이’들의 세부 분류를 끊임없이 타고 들어서 인간인 것이다. 그 이름도 찬란한 호모 사피엔스!
두둥!!
아무튼 똑똑하신 분들이 오랫동안 열심히 분류를 하고 또 해서 나를 ‘사람속’이라 곳으로 분류를 하였으니, 내가 무슨 날고 기는 재주가 있다고 그 분류를 벗어나는 특성을 가지겠는가. 그렇다. 아무튼 나는 사람이다.
그런데 저 길고 긴 생물학적 분류의 항목을 보다보니 드는 생각이 있었다. 인간이라는 게 처음부터 이런 모습은 아니었을텐데. 어쩌다 하필 지금 이 모양으로 만들어졌을까, 어쩌다 이렇게 살고 있는 걸까. 물고기는 수영을 하기에 최적화되어 있고, 새는 하늘을 나는데 최적화되어 있듯. 인간도 무언가에 최적화되어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인간의 이데아란 무엇인가.
여기에 덧대어서 하나의 개체로서, 그러니까 하나의 인간이 살아오면서 겪은 무언가가 있을 것이다. 가정 혹은 또래 문화, 사회적 맥락, 살아온 지역과 시간의 틀 안에서 규정지어진 무언가가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그 모든 것들을 배경으로 하여 구성된 ‘나’라는 존재가 겪고 행동해온 시간의 층들이 쌓여 이루어진 ‘나’라는 특수한 개체가 있을 터다.
그러니까 나라는 인간 하나의 뒤에 깔려 있는 것들은 은근히 꽤나 많다.
1. 인간이라는 동물의 메커니즘 (기본 패턴)
2. 인간이라는 동물의 원형 (패턴이 생겨나는 구조)
3. 개별적 인간이 자신의 패턴을 구축하는 방식
자동차라고 하면 엔진이 어쩌고, 핸들이 어쩌고 하며 그 부품부터 살펴보고 공부해 보는 게 자동차의 원리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거다. 왜 핸들을 이렇게 만들었고, 엔진은 어떤 변천을 거쳐왔고. 뭐 꼭 그런 걸 다 알아야 차를 운전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공부라는 건 또르니까.
인간도 매한가지 아닐까? 정신의 문제, 마음가짐의 문제라고 하더라도 인간도 결국 동물이다. 먹고 자고 싸야 하는, 그 동물 나름으로 필요한 것이 있다.
이렇게 써놓고 보니 뭔가 있어 보인다.
그러니까 말이죠, 어쨌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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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생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