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바’였으면 어땠을까?

by 아룬


갑자기 생물이 된 나는 왠지 의기양양해졌다. 갑자기 그 단어들이 새롭게 다가와서 살펴봤다.


생물(生物) : 생명을 가지고 스스로 생활 현상을 유지하여 나가는 물체.

생명체 (生命體) : 생명이 있는 물체.


생명체인 건 일단 OK. 하지만 생물인가? 일주일에 한 번씩 와 주시는 가사도우미 아주머니가 없으면 생활 현상을 유지하지 못하는 나는 생물이 아닌 게 아닐까. 잠시 의기소침해지긴 했다. 하지만 그 정도로 ‘생물’이라는 타이틀을 박탈당하는 것은 너무 야박하다. 그러니 일단 생물인 건 인정해 주십쇼.


아무튼 생물인 나는, 아무튼 그 중에서 인간이다. 그러게 그 수많은 생물들 중에서 왜 하필 인간인 것인가.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나만 그런가). 왜 하필 인간 같은 걸로 태어나서 이리 고단한 삶을 사는 것인가. 만원 지하철에 서서 손잡이를 멍하니 바라보며 매일 아침 출근을 할 때, 별 쓰잘데 없는 회의와 보고서를 끼적이다가 고단하게 집에 돌아올 때, 그렇고 왔는데 한량하게 누워 있다가 나를 반기는 댕댕이를 볼 때, 그래 ‘개팔자가 상팔자’라는 생각이 들 때. 폭우가 쏟아지는 날 점심 먹으러 나갔다가 젖은 채로 오후 반나절을 사무실에 앉아 있을 때 등등등등


그렇다. 인간이라는 동물은 왜 하필 이리 고단한 삶을 살고 있는 것인가.


태초의 나’는 어땠을까?


괜히 인간이 아닌 ‘나’는 어떤 모습이었을지 궁금해졌다. 애초에 인간이라는 종이 생겨나기도 전에, 아주 수십 억년 잔의 지구에 태어났더라면, 나는 뭐로 태어났을까? 아주아주 단순한 그 무엇이었을 때의 나.


흐음.


제일 먼저 떠오른 게, 왠지 ‘아메바’다. 나의 짧은 생물학적 지식으로 보기에 그냥 제일 단순해 보이는 녀석.


아메바(Amoeba) :육질충아문 근족충간 아메바목에 속하는 원생동물의 총칭

20250907_1220_Quantum Amoeba Dynamics_simple_compose_01k4h2wwjcekatc4r6sryy3js4.png ⓒGenerated by AI using Sora

호오…


원생동물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아메바도 동물이라니. 세균 같은 것인지 알았는데…아니다.

어떤 면에서는 인간과 동급인 것이다. 원생동물이 뭔가 살펴보니 “하나의 세포로 구성된 현미경적 크기의 원시적인 동물로, 다세포로 구성된 조직이나 기관을 형성하지 못하고 하나의 세포 자체가 생활 단위가 되는 개체” 라는 설명이 따라 나온다. 단세포 생물인데 동물로 분류된다는 뜻이다. 세포 하나인 주제에 동물이라니 뭔가 쉽게 상상이 되지 않는다.


아무리 단세포라도 동물이니 뭘 먹고 살겠지 싶어서 보니 또 다른 단세포 생물인 박테리아를 먹고 산단다. 아메바라고 해서 다 똑같은 것도 아니다. 인간의 뇌조직을 먹는 무서운 녀석부터 해조류 같은 걸 먹거나 아니면 박테리아를 한꺼번에 먹지 않고 농사 짓듯 증식시켜서 먹는 녀석까지 꽤나 다채롭다. 생존을 위해서는 힘을 합쳐 외적을 방어하거나 먹이를 함께 사냥하기도 한단다.



단세포 생명체로 태어나면 아무렇게나 살아도 대충 먹고 살아지는 줄 알았는데 그것도 아닌가 보다. 왠지 그들의 삶도 먹고사니즘 앞에서는 그리 녹록해 보이진 않는다. ‘아메바’인 것도 은근 피곤한 삶이겠다 싶다. 박테리아와 조류를 먹고, 축축한 회백질의 인간 뇌나 동물의 장기 속을 집 삼아 살고, 또 어딘가에서는 먹고 살아보겠다고 박테리아 농사 짓고… 그런 생각을 하니 조금 전까지 팍팍해 보이던 인간의 삶이 왠지 좀 살만하게 여겨졌다.


생각이 짧았다. 살아가는 모든 것은 나름의 고단함이 있다. 늑대는 사냥을 해야 하고, 사슴을 도망을 쳐야하고, 코끼리도 애를 키워야 한다. 아아아.. 생(生)은 고(苦)인 것이다.


‘아메바’도 생각을 할까


하지만, ‘생(生)은 고(苦)’ 같은 소리도 인간이나 되어야 하는 게 아닐까.


하나의 단세포로 이루어진 태초의 ‘나’. 눈도 코도 입도 없고, 세상과 나를 구분해주는 건 세포막 하나. 세포 표면으로 돌기를 내어 위족 운동을 하며 꿈틀꿈틀거리고 있었을 것이다. 어차피 ‘뇌’같은 것도 없고 , ‘의식’ 같은 거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어쨌든 잘 살고 있었을 테다. 박테리아 농사가 망했다고 “어이쿠, 이번 겨울을 어떻게 나냐?” 이런 생각 안 하고도 잘만 살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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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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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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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그러니까, 사실 생물이 생존을 하는 데에는 생각 같은 건 딱히 필요가 없는 게 아닌가. 생각 같은 거 안해도 일단 ‘살아 있을 수’는 있다는 거 아닌가. 하긴 뇌가 없이도 잘만 사는 애들이 수두룩한데, 새삼스럽다.


그러니까 ‘내가 나’라는 의식, 그리고 지금 내 머리 속을 장악하고 있는 그 수많은 생각과 마음 같은 게 없어도 ‘생명체’로 살아가는 데 아무 문제가 없다는 거네?

그런가. 그런 것인가.하긴 생각 같은 거 많이 한다고 잘 살 수 있었으면, 생각 많고 걱정 많은 순대로 잘 살아야 할 텐데 딱히 그렇지도 않다.

20250907_1147_Geometric Amoeba Abstraction_simple_compose_01k4h13tw1f96t7874wh8csaa6.png ⓒGenerated by AI using Sora


좋고 나쁜 것만 느껴도 살 수는 있다


생물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건, 주변 환경에 대해서 어느 정도 인지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자신의 생명을 유지할 수 있는 반응을 보이면 족한 것이다.

박테리아 같은 단세포생물은 자율적 autonomous 생명체다. 단세포생물은 주변 환경에 대한 일종의 '인지cognition' 능력을 확실히 가지고 있지만, 이는 마음과 의식에 따른 것이 아니라 분자 수준 이하의 가정에 기초해 항상성의 명령에 따라 자신의 생명을 효율적으로 지배하는 비명시적 능력non-explicit competence에 의존한다.

<느끼고 아는 존재> 中 , 안토니오 다마지오


항상성이라고 하니까 거창하게 들리지만 어떻게든 ‘안 죽고 살아가려고’ 끊임없이 자기에게 필요한 것의 균형을 찾아서 움직이고 노력한다는 얘기다. 아무것도 몰라도 무언가를 감각하였고, 그것에 따라 반응하였을 것이다. 어쨌거나 생명체라는 건 환경 속에서 살아간다. 외부 환경이 주는 자극들을 받아들이고, 거기에 대응을 한다. 신경계가 있건 없건, 하다 못해 분자 단위에서나마 그런 일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그렇게 태초의 원시생명체는 자신의 생명을 이어갔을 것이다. ‘본능’이라고 부르기 힘들 정도의 미시적 차원에서의 활동이었겠지만, 생명체란 원래가 그런 것이니까.


인간이라고 거기서 크게 벗어나는 것도 아닐지도 모르겠다. 인간의 지능을 5단계에 걸친 진화의 혁신으로 풀어낸 책 <지능의 기원>에서 저자인 맥스 베넷은 이런 진화의 첫 번째 혁신을 ‘조종’이라고 한다. 좋은 것은 찾아가고 나쁜 것은 피해가는.


동물이 자극이 좋은 것과 나쁜 것으로 구분하는 것을 심리학자와 신경과학자들을 자극에 감정가valence를 부여한다고 말한다. 감정가는 도덕적 판단에 관한 것이 아니라 자극의 좋음과 나쁨에 관한 것이다. 동물들이 자극에 반응해 다가갈지 피할지 결정하는 것처럼 훨씬 원초적인 차원이다. 자극의 감정가는 당연히 객관적이지 않다. 화학물질, 이미지, 온도 등은 그 자체로는 좋지도 나쁘지도 않다. 자극의 감정가는 좋음과 나쁨에 대한 뇌의 판단으로 정의되는 주관적인 것이다.

< 지능의 기원> 中, 맥스 베넷


무언가에 대한 좋고 싫음은 그렇다면 애초에 생명체가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가장 기본적인 원리인 걸까. 하지만, 생존을 돕는 이 기본적인 원리가 인간을 고달프게 하는 건 아닐까?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누군가가 겪는 모든 일들 그리고 대상들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좋아하는 것, 싫어하는 것, 이것도 저것도 아닌 것... 그래서 우리가 경험하는 대상세계 혹은 그것들이 일으키는 경험 자체를 불교에서는 크게 셋으로 나누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

<인생의 괴로움과 깨달음> 中, 강성용


좋아하는 것, 싫어하는 것, 이것도 저것도 아닌 것. 저 말이 중국을 거쳐서 한자로 번역되어 들어온 게 탐진치(貪瞋痴)라고 한다. 탐욕(貪), 분노(瞋), 어리석음(痴)

좋아함(raga)’을 ‘탐(貪)’으로 ‘싫어함(dvesa)’을 ‘진(瞋)’으로 ‘착각(moha)’을 ‘치(癡)’로 번역하다 보니, 이것들을 ‘탐욕’과 ‘분노’와 ‘어리석음’이라고 이해하게 된다. 그리고 이것이 인생의 문제를 만다는 세 가지 근본적인 독, 즉 삼독(三毒)이라고 배운다.

<인생의 괴로움과 깨달음> 中, 강성용


어쩌면 무언가가 좋고 싫은 건 어쩔 수 없는 일일지도 모르겠다. 애초에 모든 생명체들에게 기본적으로 탑재되어 있는 알고리즘이니까. 물론 그대로 따르기만 하면 인간이 아닌 아메바 레벨이 되겠지만, 그걸 그대로 일단 알아두는 건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저는 좋은 건 좋고, 싫은 건 싫은 '생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