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는 왜 이 모양인가
그러니까 ‘건강한 육체에 건강한 정신이 든다’ 정도의 뻔한 얘기를 길게 한 느낌이지만 또 그렇다. “하면 된다”라는 불굴의 정신을 강조하는 이 나라에서 “할 만해야 된다”는 정도의 진실을 건져낸 정도의 가치랄까. 적어도 어떤 물적 토대가 있어야 뭐라도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이니까 뭔가 다른 게 있을 테다. 아니 있어야지. 본능에만 충실하지 않고, 어쨋거나 자신의 의지를 가지고서 무언가를 이루려고 하는 존재. 그래, 인간이 동물과 구분되는 점은 분명 있게 마련이다. 그래 ‘생각’이라는 걸 하는 존재니까.
‘나는 왜 이 모양인가?’를 고민하며 제일 먼저 찾아본 건 심리학책들이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부터는 뇌과학책을 찾아 읽기 시작했다. 내 두개골 안에 있을 핑크색 백질의 푸딩 같은 녀석. 어쨌거나 ‘생각’이라는 건 이 녀석이 하고 있으니 이 녀석에 대해서 좀 알게 되면 도움이 되지 않을까,라는 욕심을 내며.
뇌과학책을 읽으면서 알게 된 것 중 가장 충격적인 건 ‘뇌’라는 녀석은 애초에 생각을 위해 존재한 게 아니었다는 점이다. 어쩌다 ’ 사고’의 영역을 담당하게 되었지만, 애초에 ‘뇌’라는 녀석의 역할은 그게 아니었다는 점이다. 예를 들면 나라는 인간도 처음부터 이 모양은 아니었다. 우중충한 만성 피로에 찌든 아저씨 이전에 나도 나름 모두에게 이쁨 봤던 아기 시절이 있었단 말이다. 나도 소싯적에는 귀여웠다는 얘기를 하려는 게 아니라(좀 하고 싶긴 하다) 무엇이든 지금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판단을 하면 꽤 많은 것을 놓치게 된다는 얘기다.
지금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면 그 물건은 왠지 처음부터 그랬을 거 같다. 지금 글을 쓰고 있는 1kg도 안 되는데 14인치의 가벼운 노트북은 그냥 뚝 떨어진 게 아니다. 대학 시절 쓰던 벽돌 두께의 노트북, 아니 그전에 XT와 허큘리스 모니터를 달고 있던 IBM-PC, 그전에 연구실을 가득 채우던 ENIAC. 뭐 그런 역사가 있었으니 이 노트북도 있는 거다.
인간의 뇌도 그런 게 아닐까. 지금 이 모양이, 완성본처럼 짜잔 하고 처음부터 있던 게 아니다.
앱으로 따지자면 몇 백만 년에 걸쳐서 v2045847.4.01 정도로
거쳐서 지금 겨우 이 모양이 된 걸 테다.
인류 계통과 침팬지 계통이 나뉜 것 약 800만~500년 전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그러다 400만 년쯤 전에 현생 인류의 조상으로 추정되는 오스트랄로피테쿠스가 쓱 등장했다고 한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는 슬슬 직립보행을 하기 시작했고, 그래도 두뇌 용량은 현생 인류와 비교하면 1/3 정도였을 거라고 한다.
다음 등장인물은 200만 년 전에 나타난 최초로 사람속, 즉 호모(Homo)로 시작하는 호모 에렉투스. 이때부터 인간은 적당한 속도로 장거리 달리기를 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었고, ‘끈질긴 추적’을 통해 사냥을 하는 수렵채집인으로써 거듭나기 시작했다. 두 다리로 걷고 달리고(대둔근이 이래서 중요하다), 발바닥활의 스프링 작용이 생기고, 허리가 가늘어지고 어깨의 가동성이 늘어나면서 던지기도 잘하는 인류.
뇌용량으로 따지자면 400만 년 전에 살던 오스트랄로피테쿠스의 뇌 용량은 380~450cc인데, 이후에 나타난
호모 하빌리스의 뇌 용량은 530~800cc로 커졌다. 완전히 직립 보행한 호모 에렉투스의 뇌 용량은 900~1,100cc이고 20만 년~5만 년 전에 살았던 호모 사피엔스의 뇌 용량은 1,300~1,600cc였다고 한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보다 호모사피엔스의 체중이 4배 정도 더 나가는 건 아니었다. 그런데도 인간의 뇌는 점점 커졌다. 침팬지 같은 영장류와 같은 체중으로 놓고 보면 인간은 약 세 배 정도 큰 뇌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소비하는 에너지의 관점에서 보면 더하다. 인간의 뇌의 무게는 약 1.4kg, 체중의 2% 내외라. 하지만 소비하는 에너지, 즉 칼로리는 약 20%에 넘는다고 한다.
왜 이 인간이 ‘내가 왜 이 모양인가’를 얘기하려다가 왜 인간의 진화를 읊고 있는지 궁금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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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이것은 어디까지나 나만 망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내가 왜 이 모양인가’를 질문을 ‘뇌는 왜 이 모양인가’라는 질문으로 바꾸는 순간 나의 결함은 전인류가 함께 고민해야 할 공통의 문제로 일정 부분 떠넘길 수 있기 때문이다(심지어 라임도 이쁘다). 뭐 꼭 그래서가 아니라 인간이 왜 이 모양인가를 생각하는데, ‘뇌’를 빼놓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어쩌다 보니 '사고’의 영역을 담당하게 되었지만, 애초에 이 녀석의 역할은 내 몸을 살아 있게 유지하고, 그럼으로써 번식과 생존을 위해서 필요했을 뿐이다. 우리가 지금 이 뇌를 가지고 말도 하고 생각도 하고 노래도 부르고 망상도 하고 한다고 해서, 원래 뇌라는 녀석이 이런 기능을 다 가지고 있던 게 아니었다는 것이다.
지금 여러분 손에 아이폰 17 Pro를 들고 있다고 해서 원래 ‘전화기’라는 얘가 그렇게 생긴 게 아닌 것과 마찬가지다. 영화도 보고 인스타그램도 하고 사진도 찍고 동영상도 편집하고 문자도 보내고…. 그래서 어쩌다 보니 전화하는 것 빼곤 어지간한 건 더 하고 있지만, 그래도 아이폰의 태생은 ‘폰(Phone)’이었다는 것이다. 즉 전화를 거는 것.
뇌라는 녀석도 비슷한 측면이 없지 않다.
Homo Sapiens Brain, Ver. 2025.09 패치가 다른 사람과 말도 하고, 글도 쓰고 혼자 생각도 하고 영화도 보고 과거를 회상하다가 미래를 떠올리기도 하고, 상사 욕을 하다가, 저녁에 뭐 먹을까를 생각하고 있기는 하지만, 애초에 이 뇌라는 녀석은 그러려고 생긴 게 그게 아니라는 것이다.
두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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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조금은 놀랐다. 아이폰으로 유튜브 보고 있는데, 전화가 왔을 때만큼이나.
그럼 뇌라는 녀석이 애초에 하기로 되어 있던 ‘통화’ 기능, 가장 기본적인 기능은 무엇이었을까.
“생존하려면 에너지 효율이 필수적이다. 에너지 효율은 일종의 예산 budget이라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재무예산은 돈이 들어오고 나가는 것을 파악한다. 당신의 몸을 위한 예산 역시 이와 비슷하게 수분, 염분, 포도당과 같은 자원들을 얼마나 얻거나 잃었는지 파악한다. 수영이나 달리기처럼 에너지를 소비하는 행위는 당신의 계좌에서 자원을 인출해 가는 것이다.... 당신이 취하는(또는 취하지 않는) 모든 행위는 경제적 선택이다. 당신의 뇌는 생물학적 자원을 언제 써야 하고 언제 저축해야 하는지 늘 헤아리고 있다.”
<이토록 뜻밖의 뇌과학>, 中 리사 펠드먼 배럿
"유기체의 일차적인 목표는 계속 생존하는 것이다. 이 목표는 단호히 진화가 부여한 필수 사항이므로 정의상 사실이다. 살아 있는 모든 유기체는 위험과 기회 앞에서 생리적 통합성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한다. 이것이 뇌가 존재하는 이유다. … 모든 유기체가 뇌나 신경계를 갖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생존할 수 있는 좁은 범위 안에서 생리적 필수 변수가 유지되도록 만들어 계속 생존하기 위해서다."
<내가 된다는 것>, 中 아닐 세스
역시나 생존이다. ‘생리적 필수 변수가 유지되도록 만드는 것’, 소위 말하는 ‘항상성(Homeostasis)을 유지하는 것이다. 날이 추워서 체온이 떨어지면 체온을 올리기 위해 신체 예산을 더 쓰는 것, 인슐린이 부족하면 조금 더 분비하기 위해 신체 예산을 더 쓸지 말지 고민하는 것. 그런 게 뇌가 했던 최초의 역할이라는 것이다.
다시 아메바를 떠올려보자. 외부의 자극에 대해서 자신의 항상성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던 작고 귀여운 아메바. 이 녀석이 다세포 생물로 진화하면서 “어이 그거 좀 니가 관리해 봐”라며 만들어 준 ‘재무팀’ 정도의 부서가 뇌였을지도 모른다.
심지어 그런 생물도 있다. 있던 재무팀도, 상황이 바뀌면 없애버리는. 멍게 중에는 어릴 때는 뇌가 있다가, 어딘가에 정착하면 뇌를 소화시켜버린다고 한다. 어차피 써먹을 곳이 없다는 거다. 아주 애자일한 녀석이다.
어쨌거나 생존에 필요한 정보를 처리하는 것. 그것이 애초에 뇌와 신경계가 담당하는 것이었을 테다. 외부수용, 내부수용, 고유수용 감각에서 들어오는 정보들을 처리하면 그것을 생존에 필요한 적절한 대처를 하도록 하는 것 말이다.
결국은 몸에 뭔가 필요할 때 즉각 즉각 자동으로 예측하고 대비하여 움직이려면 예산에서 에너지를 꺼내 써야 한다. 그리고,
“그러한 움직임은 노력할 만한 가치가 있어야'한다. 그것이 예측이다. 과거 경험에 근거해 새로운 행위에 몸을 준비시키는 것이다”.
<이토록 뜻밖의 뇌과학> 中 리사 펠드먼 배럿
뇌가 하는 일은 결국 그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