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가 부서라면?

저희는 '미래전략기획경영관리빅데이터AI이노베이션'팀입니다.

by 아룬


순수하게 신체 예산을 조절하기 위한 이유만으로는 뇌를 저렇게 키웠다면 좀 무의미하다, 뇌가 이렇게까지 커 나간 것은 나름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저 조그마한 재무팀은 어쩌다가 저렇게 큰 조직이 될 수 있었을까. 복잡한 뇌과학을 떠나서 이 문장에서 생각을 해 보자.


“뇌의 핵심 임무는 이성이 아니다. 감정도 아니다. 상상도 아니다. 창의성이나 공감도 아니다. 뇌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생존을 위해 에너지가 언제 얼마나 필요할지 예측함으로써 가치 있는 움직임을 효율적으로 해내도록 신체를 제어하는 것, 곧 알로스타시스(Allostasis)를 해내는 것이다..... 간단히 말해서 당신의 뇌가 하는 가장 중요한 일은 생각하는 것이 아니다. 작은 벌레에서 진화해 아주아주 복잡해진 신체를 운영하는 것이다. “

<이토록 뜻밖의 뇌과학>, 中 리사 펠드먼 배럿


당신이 한 부서의 부서장이라고 생각해 보자. 부서를 키우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예산을 많이 타내고 조직원을 늘리고 싶으면 어떻게 하겠는가? 새로운 아젠다를 세우고 자신이 하고 있는 업무의 범위를 넓히고 키우면 된다. 그렇게 해서 예산을 타내고 인력을 늘리면 된다. “제가 봤을 때 이 업무도 저희가 기존에 하던 것과 관련이 있으니 저희가 하면 더 잘할 거 같고, 회사에 도움이 될 거 같습니다.” 이러면서 자꾸 새로운 영역에 깃발을 꽂는 것이다.


진화도 이와 비슷한 게 아닐까. 그 기능을 발전시켜봤는데 안 되면 죽고, 잘 되면 살아남는 것이다. 끊임없이 새로운 기능을 업데이트해보고, 안 되면 빨리 없애고 효과가 있으면 더 키워보고.


마, 실패하면 도태, 성공하면 진화 아임니까?.


GHRUCrsbIAAt-LM.jpg 영화 <서울의 봄>


대충 그런 느낌으루다가.


그러니 “생존을 위해 에너지가 언제 얼마나 필요할지 예측”하는 업무의 범위를 넓히면 되는 것이다.


여기 이제 ‘인류진화계획’을 위한 모종의 신체 내부 부서들이 모여서 회의를 한다고 생각해 보자. 뇌라는 녀석이 자꾸 이런 얘기를 하는 것이다.

20250921_2226_Organs Conference_simple_compose_01k5p75sjbf5mbqpztseb5z1c1.png ⓒGenerated by AI using Sora


“지난번의 꿩을 잡았던 곳 근처에 다시 가니까 이번에는 사슴이 있더란 말입니다. 이렇게 먹을 곳이 어디 있는지 기억하고 찾아가는 게 생존에 도움이 되더란 말이죠. 그러니 ‘기억’과 관련한 메모리 반도체 사업은 저희가 담당하겠습니다.”


“근데 요즘 시절이 VUCA 하지 않습니까. 아무래도 이성적으로 논리적으로 세상에 대처하는 게 생존에 도움이 되지 않겠습니까? 이 부분과 관련해서는 저희 부서에서 이니시에이티브를 가지고 책임지고 Do More With Less 해보겠습니다.”


“요즘에는 옆에 있는 다른 인간들과 협업을 하는 게 생존에 도움이 되는 거 같습니다. 감정 인지하고 공감하는 능력을 키우는 게 생존에 도움이 될 거 같습니다. 이 업무도 저희가 맡을까 하는데 VIP 관심 사항이니 특별히 다들 많이 도와주시기 바랍니다. ”


“아무래도 사람들과 어울려서 일을 할 때는 남들과 똑같은 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창의적인 인재가 되어야죠. 그러니 창의력을 키우는 게 생존에 도움이 되는 일입니다. 그러니까 이 업무도 저희가 하겠습니다.”


다른 신체 기관들이 보기에 그 일을 뇌가 곧잘 하고 그게 인간의 생존의 도움이 되는 상황들이 지속이 되었을 것이다.


”어, 그래함 해봐?..... 흠 나쁘지 않군. 너님이 계속하세요.”


뭐 이렇게 되었겠지. 이제 각 부서에서 달라는 예산이나 엑셀로 돌리던 이 조그마한 재무팀은 ‘미래전략기획경영관리빅데이터 AI크리에이티브이노베이션’ 어쩌고 저쩌고 하는 본부 정도로 서서히 커져 간 것이다.


아마도 어느 순간 어떤 선순환이 시작되었을 것이다. 뇌를 통해서 생각하고 계획을 짜고 다른 이들과 팀워크를 이루어 사냥감을 잡는 것이 생존에 도움이 되는 순간이 있었을 테다. 그리고 서로 모여서 사는 것이 더 많은 식량을 채집하고 수렵하는데 도움이 되는 순간이 왔을 것이고. 그때부터 뇌를 키우고, 언어를 사용하고, 사고를 하고, 위에서는 배우고 아래에게는 가르침을 주는 것이 더 생존에 도움이 되는 시절이 있었을 것이다.


‘통화’라는 기능만 놓고 보면 쓸데없는 고해상도 디스플레이와 몇 천만 화소의 카메라가 왜 필요하겠는가. 하지만 지금은 없으면 안 되는 기능이 되었다. 뇌도 마찬가지다. 그러니 단순히 신체예산을 배분하는 것에 한정되었다면 체중에 비해 쓸데없이 크고, 쓸데없이 에너지를 많이 쓴다는 생각이 들지만, 어느 순간부터 고급(?) 기능들을 발휘하기 시작하면서 꼭 필요한 존재가 되어버린 것이다.


운동하기 싫은 건 내 탓이 아니야


신체 예산을 관리한다는 건, 반대로 얘기하면 효율적이라는 점이다. 처음에 정해진 곳에 정해진 대로 보내면 된다. 부서를 마구마구 늘렸지만, 뇌라는 녀석은 어떤 면에서는 인색하고 꼼꼼한 관리자인 셈이다.
뇌는 '익숙한 것'에 집착한다. 무언가를 바꾼다는 건 하나하나 쉬운 일이 아니고 무언가를 고쳐간다는 건 무엇 하나 달갑지가 않은 일이 된다.


회사에서도 그렇지 않은가, 한 번 프로세스를 짜고 알고리즘을 만들어 두었으면 그것이 그냥 굴러가면 된다. 그게 효율적이니까. 관성에 따라 일을 하면 큰 무리는 없다. 그런 프로세스와 알고리즘도 마냥 형편없지는 않기 때문이다. 나름의 존재가 가치가 있으니 애초에 그렇게 만들어진 거다.


사실 프로세스가 엉망이라서 망할 게 뻔히 보여도 지금껏 해 오던 것을 반복하며 서서히 망해가는 회사들도 수두룩하다. 우리도 종종 그런다. 망할 게 뻔해 보이는데, 그렇게 살면 스스로의 삶을 망가뜨릴 게 뻔해 보이는데도 그 패턴을 벗어나지 못한다. 예를 들면 매번 나쁜 남자만 만나는 연애 패턴을 가진 여성들은 또 얼마나 많던가.


우리가 같은 행동을, 비슷한 사고를 반복하는 건 어쩌면 그래서가 아닐까. 그냥 그렇게 짜인 대로 살아가는 게 당장엔 편하니까 말이다.


인간은 합리적인 존재가 아니라 스스로를 합리화하는 존재.라는 말은 그런 의미에서 꽤나 적확하다. 최소한의 에너지를 들여서 임기응변으로 상황을 대처하는 것. 그리고 그 선택과 결과에 대해 스스로를 합리화하는 스토리를 만들어내는 건, 어떻게 보면 가장 효율적인 법이니까.

20250921_2238_Twisted Fires and Brains_simple_compose_01k5p7y3gre97ve1tbcrske043.png ⓒGenerated by AI using Sor


다만 ‘효율’이라는 것이 그 자체로 더 나은 삶을 위한 것은 아니라는 걸 우리는 종종 잊는다. 여기에서의 효율이란 지금 내가 구축한 ‘나’, 그 ‘에고’를 유지하는데 효율적인 것일 뿐이다. 그 ‘에고’ 자체가 틀려먹었다면 그 효율은 오히려 독이 된다. ‘효율적인’ 범죄집단은 ‘무능력한’ 범죄 집단보다 더 골치 아픈 존재인 거와 마찬가지랄까.


그리고 이렇게 나름 한 번 효율적인 체제를 갖추고 나면 뇌는 변화를 원하지 않는다. 변화는 피곤하고 신체 예산을 써야 한다. 가만히 있으면 항상성이 유지되고 편안하다. 굳이 바꾸어야 할 이유가 없다. 운동을 떠올려보자. 굳이 왜 이걸 해야 하는가. 정말 죽을 위기도 아닌데, 왜 달리기 같은 걸 하는가, 체온과 심박수가 오르고 땀을 흘리고. 예산관리라는 측면에서 뇌가 보기엔 운동이란 안 써도 되는 에너지를 쓰는 낭비적인 행동이다. 신체의 항상성을 깨뜨리니까.


뇌는 예산을 관리하는 부서다. 뇌가 가지고 있는 효율적이고 꼼꼼한 신체 예산 관리 본능, 그것이 인간을 하던 대로 하게 만들고 변화를 싫어하게 만든다. 그러니 게으른 건, 쉽게 바뀌지 않은 건 내 탓이 아니다. 뇌 탓이다.


유체 이탈 식의 변명 같지만, 어쨌거나 그 또한 나라는 닝겐의 한계인 것이다. 때론 한계를 넘어서는 건 필요하지만, 그러려면 일단 한계를 인정할 줄 알야 하는 법이다.(사실, 한계를 굳이 넘어서야 하는지도 잘 모르겠다.)


아무튼 내 탓이 아니고, 뇌 탓이다.


아주 상큼하고 발랄한 결론.

쾅쾅쾅!


역시 남 탓을 하면 기분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