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낌이 ‘쎄한 건’ 다 이유가 있다

동물의 지분

by 아룬

그렇다. 좋은 건 좋고, 싫은 건 싫다. 그 자명한 사실을 받아들이기로 했더니 갑자기 마음이 편안해졌다. 그냥 그건 당연한 거다.


생명체는 외부에서 오는 자극들을 끊임없이 받아들이고 대응한다. 그러다가 신경계가 있는 고등 동물이 되면서 이제 그 자극들을 느끼게 되었을 것이다. 거기에서부터 ‘느낌(feeling)’이 시작이다. 그렇다.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그 ‘느낌.’


느낌은 생명이 처음 나타났을 때부터 존재했던 것은 아니다. 느낌은 동물이 신경계를 갖추었을 때 비로소 출현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생명의 역사에서 비교적 최근에 해당하는 6억년 전이다. 신경계는 점점 자신 주변의 세계를 다차원적으로 지도화하기 시작했다. 그 세계는 생물의 내부에서 시작되었고, 그렇기 때문에 마음 그리고 그 안의 느낌이 생겨나게 되었다.

<느끼고 아는 존재> 中, 안토니오 다마지오
느낌은 기민한 감시병 역할을 한다고 할 수 있다. 느낌은 마음이 있는 모든 존재에게 그 마음이 속한 유기체 내부의 생명 상태를 알려준다. 또한 느낌은 그 마음이 느낌의 메시지에 담긴 긍정적 또는 부정적 신호에 따라 행동하도록 동기를 부여한다.

<느끼고 아는 존재> 中, 안토니오 다마지오


애초에 우리가 ‘의식’이라는 걸 가지게 만드는 ‘신경계’라는 건 생명의 진화 단계를 놓고 보면 꽤나 마지막에 등장한 것이라고 한다. 아메바나 박테리아 같은 단세포 생물들은 그런 게 없어도 잘만 살아간다.


‘뇌’라고 하면 이성, 사고 같은 걸 떠올리지만 애초에 뇌는 그런 걸 위해서 존재하는 게 아니라는 거다. 생명체가 느끼는 좋고 나쁨에 대한 감각들을 우리의 ‘뇌’는 신체에 필요한 자원들을 적절히 분배하고 그럼으로써 신체가 생존해 있고, 효율적으로 살아갈 수 있게 해주는 게 1차 목표이다. 느낌은 뇌에게 들려주는 정보를 제공하는 일종의 시그널이라는 것이다.


흐음. 그렇다. 느낌이 쎄할 때는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내 나름의 백데이터를 가지고서 나의 몸이 뇌에게 알려주는 것이다.


나는 무엇을 느끼나


그런데 대체 나는 뭘 느끼나. 조금 전에는 배가 고파서 라면을 먹었다. 배고픔을 느꼈고, 물이 보글보글 끊는 소리를 들었고, 라면을 와작와작 싶어 먹었다. 그런 것들일 테다. 결국 어떤 감각기관들을 통해서 무언가를 접하게 되고, 그것이 우리 몸에 어떤 느낌으로 전달되는 것일 테다.


인간의 감각은 크게 3가지로 나뉜다고 한다. 바로 내수용감각, 외수용각, 고유수용감각이다.


내수용감각 : 내 몸 안의 상태(심박, 호흡, 배고픔 등)를 느끼는 것

외수용감각 : 외부의 자극을 느끼는 것

고유수용감각 : 내 몸의 자세, 힘 평형을 느끼는 것.


내수용감각은 우리 신체 내부에서 알려주는 신호들을 받아들이는 감각이다. 속이 쓰리다, 숨이 차다, 배가 아프다 같은 것들. 그러다 또 놀라운 사실을 하나 알게 되었다. 인간의 소화관에는 약 1억 개의 신경세포가 있다고 한다. 척수나 말초신경계 전체에 있는 것보다 많다. 뇌와 소화관은 단위질량당 에너지 소비량이 거의 같다고 한다.

“장 신경계는 말초적이라기보다는 중추적이다. 장 신경계는 거대한 구조를 갖고 있고 필수적인 기능을 수행한다. 장 신경계를 구성하는 뉴런의 수는 1억~6억 개로 신경계를 구성하는 뉴런 대다수는 내재 뉴런이다. 내재 뉴런이란 다른 부위에서 뻗어 온 것이 아니라 원래 그 구조 안에서 발생한 뉴런을 말한다. 또한 내재 뉴런은 다른 곳으로 뻗어 나가기보다는 그 구조 안에서 기능을 수행한다.
… 최근에는 장 신경계를 '제2의 뇌'라고 부른다. 이처럼 영예로운 지위에 오른 것은 장 신경계가 차지하는 커다란 부피와 이것이 수행하는 자율적 기능 때문이다.
… 장 신경계는 복부의 내장에서 뇌로 향하는 신호의 주된 도관인 미주신경의 주요 지류이다.... 흥미롭게도 장 신경계가 우리 몸에 있는 세로토닌의 95퍼센트를 생산한다.”

<느낌의 진화> 中 안토니오 다마지오


저 어마어마한 신경세포들이 나에게 내 몸 상태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주고 있었다니. 몸에 좋은 것, 속이 편한 거 먹고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그렇다. 장 신경계는 자율적이다. 배가 고프면 뭘 참지 못하고 먹는 건 내 잘못이 아니었다. 자율적인 장 때문이었다, 엣헴


하지만 감각이라고 했을 때 무엇보다 와닿는 건 외수용감각일 테다. 외수용 감각은 말 그대로 우리 신체 외부의 세계를 수용하고 받아들이는 감각이다. 보고, 듣고, 맡고, 느끼고, 맛보는 감각. 불교에서 얘기하는 색(色), 성(聲), 향(香), 미(味), 촉(觸) 같은 것일 테다. 어쩌면 외수용감각은 우리가 느끼는 것, 그 이상일 수도 있을 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타인과 하는 커뮤니케이션은 결국 이 외수용감각이 없으면 어렵다. 타인의 말을 듣고, 행동을 보고… 그런 사회적이고 문화적인 것들 또한 외수용감각을 통해서 전달되는 것일 테니 말이다.


20250914_2310_Geometric Eye Concept_simple_compose_01k548y1p8e25vpj3fg3b8hxx4.png ⓒGenerated by AI using Sora


마지막으로 고유수용감각이다. 운동을 하러 가면 종종 들어봤을지도 모르겠다. 근골격계의 움직임을 느끼는 감각이다. 근방추, 골지건기관, 관절 수용기, 전정기관 등을 통해서 내 자신의 신체 위치와 자세, 균형이나 움직임에 대한 정보를 인지하는 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 뇌에는 저 세 가지 감각이 섞여서 들어온다. 재미있는 건 인간의 뇌는 그 구분을 잘 못한다고 한다.

내수용에서 오는 스트레스나 외부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똑같이 받아들인다. 정량화할 수는 없지만 쉽게 이해하기 위해서 단순화해보자. 내가 견딜 수 있는 스트레스의 수치는 100이라고 치자. 내 몸이 너무 건강하고 어제 잠도 잘 잤고 그래서 내수용으로 느끼는 스트레스가 0이다. 그런데 사무실에 갔더티 상사가 나에게 잔소리를 한다. 이거 때문에 50 정도의 스트레스를 준다면, 그것은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부분이다. 그런데 내가 어제 뭘 잘못 먹었는지 배탈이 나 있고 그것 때문에 잠도 한숨도 못 자서 스트레스 70 정도 쌓여 있는데, 상사가 똑같은 스트레스를 준다면? 120이 되니 내가 견딜 수 있는 임계치를 벗어난다. 속 편하면 참았을 일도, 나도 모르게 스트레스로 인해 폭발할지도 모른다.


한 잔의 물잔을 생각해보자. 하나의 물잔은 하나는 텅 비어 있고 하나는 이미 절반이 넘게 차 있다. 똑같이 절반 분량의 물을 부어도 한 잔은 넘치지 않을 것이고, 한잔은 금방 넘칠 테다.


20250914_2303_Quantum Entangled Glass_simple_compose_01k548h2gxeat803rs1eybr4pc.png ⓒGenerated by AI using Sora


내 안에 있는 '동물의 지분'


뭐 복잡한 얘기를 했지만, 사실 결론은 무척 당연한 얘기다. 배가 고프면 짜증이 나고, 잠을 못 자면 다음날 피곤하다.


아무리 이성적인 척 해봤자, 인간은 동물이다. 기본적인 게 채워져야 건강하다. 하드웨어가 구리면 소프트웨어를 아무리 최적화해봤자 한계가 있게 마련이다. 인간에게는 그렇게 ‘동물의 지분’이 있다. 생명체가 가지고 있는 지분. 이걸 간과하면 안 된다. 하다 못해 판사들이 가석방을 심사하는 것도 점심 먹기 전과 점심 먹고 나서의 심사 결과가 달랐다고 한다. 밥을 먹고 배가 부르면 인간은 인자해지는 것이다.


인간은 동물이고, ‘나’도 동물이고. 그러니 동물인 ‘나’의 기본적인 욕구들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우리의 감정은 신체로부터 기인하는 바가 많고, 단순히 이성적으로 마음을 다스린다… 라고 해서 되는 경우는 의외로 드물다.


그렇다. 잘 먹고, 잘 자고, 잘 싸고. 그게 중요하다.


그러니까 저는 편하고 싶은 동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