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속가능하고 행복한 직장생활 가능함?(14)

결국 최후의 승자는 나

by 하작가

결국 최후의 승자는 나


아내는 결혼식 때 회사에 청첩장을 돌리지 않았다고 한다. 이유는 간단했다. 회사 사람들이 오는 게 싫어서.


타고난 관종인 나로선 전혀 이해가 되지 않는 선택이었다. 난 가능하면 모든 분이 오셨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개인적인 친분과 상관없이. 그래서 대표님과 임원진들이 '내 결혼식보다 중요한' 그 어떤 일 때문에 모두 못 오신다고 했을 때 정말 섭섭했던 것 같다.


아내 얘기를 좀 더 하자면, 회사하면 떠오르는 게 힘들었던 기억밖에 없다고 한다. 그래서 회사와 조금이라도 관련된 모든 것들이 몸서리치게 싫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결혼하자마자 바로 퇴사할 수 있도록 여러 가지 준비를 해놓는 치밀함도 선보였다. 그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왜 청첩장을 안 돌렸는지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었다.


사실 나도 회사가 정말 100% 맘에 들어서 결혼식에 모든 분이 오셨으면 한 건 아니었다. 다만 내 인생 가장 멋진 날에 나를 아는 모든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축하와 사랑, 그리고 존중받고 싶은 마음이 컸을 뿐이다. 내 결혼식을 통해 조직 내 최고 권력자들에게는 그다지 소중하지 않은 나의 존재를 발견했다. 중요한 사실을 알았으나 대가가 좀 크긴 했지만 이 회사는 나를 존중하지 않는다는 것을 제대로 깨달았다.


결혼식을 통해 마음이 한없이 따뜻했던 순간도 많았다. 직원분 중에 본가가 멀어 반강제적 주말부부가 된 분이 계셨다. 주말에도 외출하는 것을 극도로 꺼려서 친구를 만나거나 외식 등을 하는 일도 드물 정도였디. 건너 듣기론 대중교통 이용하는 것도 안 좋아하신다고 했다. 나중에 방명록을 보니 그분 이름이 있는 것이다. 축의금을 전달해 주시고 누군가 대필로 적으신 건가? 결혼식 후를 경험해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탐정 본능이 무한대로 깨어나는 시기다. 만약 대필이라면 앞뒤로 비슷한 필체가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하지만 그분 이름만 특이한 필체였다. 나중에 알고 보니 혼자 대중교통으로 주말 그 복잡한 청담동의 결혼식장까지 오시고 식사까지 하고 가셨다는 것이다. 결혼식 날 그 분을 대면했다면 아마 울컥했을 것 같다. 높으신 분들로부터 버림(?)받고 별다른 친분도 없던 그 분으로 인해 허전했던 부분이 채워지고도 남았으니까.


회사에서 그 분에게 해드린 것이라곤 오며 가며 인사한 것밖엔 없다. 하지만 어렵고 번거로운 상황에서도 굳이 몸을 움직여 그곳까지 와주신 것은 그분이 할 수 있는 최고의 노력이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오시는 동안 어떤 생각을 하셨을까? 중간쯤 오다가 ‘아 괜히 가는 건가?’ 하면서 후회는 안 하셨을까? 그분의 입장에 되어 여러 가지를 생각해 봐도 그날 세상 최고의 순간을 맞이한 동료를 위한 마음이 없었다면 절대 오시지 않았을 것이다.


그분 외에도 오실 거라 예상하지 않았던 분들도 참석해서 축하해 주실 때 어떻게 감사함을 표해야 할지 벅차올라서 순간순간 찾아오는 감정의 울림이 감당이 안 됐던 그날의 기억이 있다.


이렇게 충만한 행복감을 안고 신혼여행을 다녀와서 답례품을 준비하면서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결혼식에 왔건 말건 다 준비해 주는 게 맞는가? 주말에 먼 길 오신 분들을 위해서 답례품을 준비해야 하는가? 전자와 후자를 융복합해서 준비하기로 했다. 모든 분께 다 준비하되 축의금을 주셨거나 식장에 와주신 분들께는 플러스알파로 준비했다. 그리고 내게 최고의 참담함을 안겨 주신 대표님 것으로는 플러스알파 베타까지 준비해서 전달했다.


‘이거나 먹어라.’라는 말을 농담이든 진담이든 많이 하는 편이다. 이때만큼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좋은 의미로 사용했다. 나는 비록 당신께 존중 받지 못했지만, 난 있지도 않은 존중의 마음을 깊은 바닥에서 긁어모아 당신에게 드렸다는 메시지를 선물로 드렸다. 물론 그 분께 메시지가 가 닿았는지 알 수는 없지만 나는 가능한 범위에서 최선을 다했다. 그래서 뿌듯하다. 주는 자의 행복을 오롯이 느끼고 있었으니까. 결국 최후의 승자는 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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