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속가능하고 흥미로운 '그 무엇'
본격적인 직장 생활을 하며 나는 ‘선택적 아웃사이더’로 살았다. 회사에서는 되도록 조용히 묻어가고 싶은 마음이 컸다. 점심도 혼자 먹거나, 많아야 극소수에 가까운 동료들과만 함께했다. 일단은 내가 가장 편해지고 싶었기 때문이다.
팬데믹의 종식은, 진짜 나다운 나로 돌아왔음을 알리는 신호이기도 했다. 점심시간을 더 이상 오전 내내 소모된 나를 회복하기 위한 단순 보상 시간으로만 쓰고 싶지 않았다. 의미 있는 시간으로 만들고 싶었다. 누군가를 만나고, 관계를 다시 설계하는 시간. 네트워크 관리라는 말이 이토록 따뜻하게 느껴진 적은 처음이었다. 인간관계를 대하는 생각과 태도가 조금씩 바뀌고 있었다.
글을 쓰고 싶다는 마음은 결국 사람의 소중함을 깨닫는 데까지 나를 데려갔다. 내 글은 누군가 읽어줘야 비로소 완성된다. 가장 먼저 읽게 될 사람은 결국 가장 가까운 사람들일 것이다. 입장을 바꿔 생각해보니 답은 명확했다. 삐딱하고 폐쇄적인 동료의 글을 굳이 찾아 읽고 싶지는 않을 것 같았다. 무슨 기대가 생기겠는가? 그렇다면 내가 먼저 따뜻하고 좋은 사람이 되어야 했다. 그렇게, 나는 아주 조심스럽게 새로운 출발을 꿈꾸기 시작했다.
마침 그 시기에 가깝게 지내던 동료들이 하나둘 회사를 떠났다. 그중에는 업무 능력도 뛰어나고, 회사 안에서도 충분히 미래 핵심 인재로 인정받던 사람도 있었다. 이상한 건 회사가 그런 인재를 붙잡으려는 의지를 거의 보이지 않았다는 점이다. 왜 이런 일이 반복되는 걸까. 이유는 단순했다. 회사에서의 시간이 전혀 행복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취업난은 여전히 심각하고, 이직 역시 쉬운 일이 아닌 세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스스로 회사를 떠난다는 건, 분명 어딘가 크게 잘못되어 있다는 신호였다.
그때부터 고민이 시작됐다.
‘어떻게 하면 나와 내 동료가 직장 안에서의 시간을 조금이라도 더 행복하게 유지할 수 있을까?’
나는 평소 가까이 지내던 동료들을 단톡방에 초대했다. 방 이름은 꽤 길었다.
<지속 가능하고 흥미로운 회사 생활 어떠함?>
당시 내 고민과 바람을 한 문장으로 요약한 결과였다.
그 무렵, 동료들을 만날 때마다 던지던 질문이 하나 있다.
“정년퇴직 후에는 어떻게 사실 거예요? 혹시 준비하고 있는 게 있나요?”
이 질문을 받으면 대부분 말없이 나를 바라봤다. 마치 외계인을 처음 본 사람처럼 생경한 눈빛으로. 그리고 어김없이 질문은 다시 내게로 돌아왔다.
난 하고 싶은 게 정말 많다고 답한다. 글쓰기를 기반으로 작가, 글쓰기 강사, 커뮤니티 리더, 북스테이 운영, 북카페 창업, 각종 챌린지 기획, 북클럽 운영까지. 내가 좋아하는 글쓰기에서 파생될 수 있는 일들을 하나씩 해나가며 살고 싶다. 그것은 나 혼자만의 욕심이 아니다. 당신과 나 모두의 행복을 위해서이고, 희망과 미래가 잘 보이지 않던 삶을 조금 더 재미있고 흥미롭게 만들기 위함이다. 그리고 당신도 할 수 있다는 용기와 위로를 해주고 싶다.
직장 생활 15년 차가 되어서야, 그제야 회사를 꽤 재미있게 다니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매일 달리며 출근하니 아침의 긍정적인 에너지가 몸과 마음에 가득 찬다. 그런 상태에서 업무 전에 좋은 책을 읽거나 내 글을 쓰니 점차 너그럽고 여유 있는 상태가 된다. 결과물도 내가 가진 능력보다도 더 좋게 나오는 것 같다. 그래서 어지간한 일로는 회사에서 멘탈이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물론 딱 한 번, 살짝 실망한 적은 있다. 우리 회사에는 매년 전체 직원 중 반드시 두 명은 성과 등급 C를 받는, 묘한 ‘관행’이 있었다. 그리고 재작년에 그 대상이 바로 내가 되었다. C등급은 연봉 인상률 0%, 성과급 0원을 의미한다. 보통 설 연휴쯤, 급여와 함께 들어오는 성과급을 보고 개인 등급을 알게 된다. 회사 입장에선 직원들이 기분 좋은 연휴를 보낼 수 있도록 나름 고민해서 만든 장치였다. C등급 받을 두 명의 직원은 그렇지 않을 것을 뻔히 알텐데 ‘뭐 두 명 쯤이야 기분 나쁘건 말건’이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그때 통장에 돈 들어오는 알람이 울렸다. 1월 급여만 찍혀 있었다. 혹시나 싶어 동료들에게 물어봤다. 다들 급여와 성과급이 두 차례에 걸쳐 들어왔다고 했다. 오히려 동료들이 더 당황하며 혹시 전산 착오일지 모르니 조금 더 기다려보라고 했다. 하지만 착오는 없었다. 그해 설 연휴 동안 마음이 살짝 가라앉았던 건 사실이다. 하지만 이내 이런 생각으로 좌절을 감싸안았다.
‘내가 언제 또 C등급을 받아보겠어?’
지금 나는 이 이야기를 기분 좋게 웃으며 글로 쓰고 있다. 전체 직원 중 단 두 명만 받을 수 있다는 전설의 C등급 스토리를 무용담으로 풀어낼 수 있다면, 이것 역시 글쓰는 직장인으로서 누리는 호사 아닐까. 일종의 무시를 당했지만 마음의 상처가 아닌 훌륭한 글감을 선물로 받았다는 사실이 더 감사하다. 그야말로 한정판 소재다. 내가 그때의 참담한 기분을 기억하고 글로 잘 표현해 놔야 그와 비슷한 아픔에 처한 이들을 누구보다 잘 위로할 수 있을 것이다. 만약 내가 글을 쓰는 삶을 살지 않았다면 지금도 그 일로 이를 바득바득 갈고 있지 않을까? 행복한 삶을 사는데 아무런 도움이 안되는 일이다.
대체로 나는 웃으며 회사에 다니려고 노력했다. 회사에서 가장 오랜 시간을 머무는 사람이며, 가장 열심히 자기 계발을 하는 직원이기도 하다.
내가 일하는 곳은 정년이 보장된 조직이다. 스스로 박차고 나가지 않는 이상, 환갑을 앞둘 때까지 자리를 지킬 수 있다. 얼핏 보면 꿈의 직장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안정된 고용’이라는 특징은 축복이기보다는 저주에 가깝다고 느껴질 때가 많다. 직원 중 노후 준비가 탄탄해 보이는 사람은 거의 보이지 않고, 정년 이후의 삶을 구체적으로 계획하는 사람은 더더욱 없다. 다들 입을 모아 말한다.
“지금은 회사 일 말고 다른 걸 생각할 여유가 없어.”
그 말과 함께, 내게 늘 따라붙는 멘트가 있다.
“요즘 일 없어? 한가한가 봐?”
“내년엔 00부 가서 제대로 일 좀 해볼래?”
자기 삶에 대해 무책임한 채로 쌓인 피로를 내게 투사하는 느낌이 들 때가 많았다. 나만 살아가는 방식이 조금 다를 뿐인데, 그런 오해를 받는 것도 어쩌면 당연하겠다 싶다가도 억울한 마음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주어진 회사 일을 게을리한 적도 없고, 구멍을 낸 적도 없는데 ‘나와는 다른 생각을 하고 다른 삶을 산다’라는 이유만으로 그런 말을 듣는 건 참기 쉽지 않다. 더 궁금한 건, 왜 다들 회사를 자기 인생보다 앞장서 책임지려 하는지다. 회사가 우리를 끝까지 지켜주지 않을 가능성이 훨씬 크다는 걸 모두 알고 있으면서도 말이다.
그렇다고 회사가 소중하지 않다는 말은 아니다. 육아 휴직을 보내며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도 회사는 내게 가장 큰 수입원을 제공해 주고 있다. 분명 고마운 존재임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다만, 먼 훗날의 미래까지 지금의 회사 하나에만 기대는 건 무모한 선택이라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나는 처절하게 쓰려고 한다.
하루에 1만 자를 쓰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직장을 다니며 쓸 때는 하루 2~3천 자만 써도 상당한 에너지가 필요하다. 휴직 중이라 흔히들 시간이 많을 거로 생각하지만, 실상은 출퇴근할 때보다 더 바쁘다. 하루 1만 자라는 책임이 생겼기 때문이다. 처음이자 마지막일 이 육아 휴직의 목표는 분명하다.
2년 뒤, 회사로 돌아가지 않아도 되는 상황을 만드는 것. 그래서 쓰고 있다. 어쨌든 결과를 만들어야 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