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뭘 쓰지?"
"그래서 뭘 쓰지?"
아무 대답도 떠오르지 않았다. 참으로 당황스러웠다. 동시에 나 자신에게 깊은 실망을 느꼈다. 단 하나의 주제도 떠올리지 못하면서, 글 쓰며 살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니.
마침, 그때는 코로나가 오랜 시간 전 세계를 집어삼키고 있던 시기였다. 사람을 마음대로 만나는 것도,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쉽지 않았다. 그래서였을까.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은 더 간절해졌다. 글은 시공을 초월해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가장 좋은 수단이니까.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무엇을 쓸지 모르겠다는 벽에 부딪히자, 꾸준히 해오던 읽고 쓰는 일 자체에 급격히 흥미를 잃어버렸다. 당장 수입이 생기는 것도 아니고, 본업인 직장 생활을 병행하며 글을 쓰는 데 쏟아야 할 시간과 에너지가 갑자기 무겁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나는, 굳게 닫힌 마스크 아래에서 글과 관련된 모든 것을 잃어버린 침묵의 시기로 들어갔다.
그렇다고 완전히 멈춰 있었던 건 아니다. 이 무렵 달리기를 시작했다. 몸도 기분도 위축됐기에 운동은 해야겠는데 헬스장 같은 밀폐된 공간은 선뜻 들어가기 어려웠고, 마스크를 쓰고 운동한다는 건 상상만으로도 숨이 막혔다. 그래서 인적이 드문 곳을 골라 달리기 시작했다. 출근길은 자연스레 고정 러닝 코스가 되었고, 회사 주변으로도 새로운 길을 하나둘 개척해 나갔다. 실외에서도 마스크는 써야 했지만, 아무도 없는 순간에는 조심스레 마스크를 벗고 마음껏 깊은숨을 들이마시며 달렸다.
숨이 트이자, 마음도 조금씩 가벼워졌다. 다시 뭔가 해볼 수 있겠다는 기대감이 함께 올라왔다. 매일 뛰다 보니 문득 내 롤 모델이신 무라카미 하루키 형님이 왜 그렇게 달리는지를 이해할 수 있었다. 건강한 신체에서 좋은 생각이 나오고, 긍정적인 기운으로 단단히 무장되어야 글을 쓸 수 있다는 사실을 몸으로 이해하게 됐다. 깊은 슬럼프는 오히려 뭐라도 해보자는 절박함을 불러왔고, 그 덕분에 나는 다시 원래의 꿈이었던 글쓰기에 한 걸음 가까워질 수 있었다.
문 하나가 닫히면, 반대편에서 또 하나의 문이 열린다는 말이 있다. 어쩌면 침체된 마음은 잔뜩 경직되어 쪼그라든 몸에서 비롯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날 이후로 기회만 되면 밖으로 나가 달렸다. 걷다 보면 뛰고 싶어지고, 뛰다 보면 한겨울에도 땀이 난다. 땀은 몸의 노폐물뿐 아니라 마음속 노폐물까지 함께 흘려보낸다. 천천히 달리며 떠오르는 생각들은 곧바로 쓰고 싶은 글감이 되었다. 어느 순간, 내 앞을 가로막고 있던 벽에 미세한 균열이 가고 있다는 걸 느꼈다. 가볍게 밀어도 무너질 수 있을 만큼.
나는 달리고, 생각하고, 썼다. 그 벽은 나를 방해하기 위해 나타난 것이 아니라, 스스로 해결할 방법을 알려주기 위해 등장한 것처럼 느껴졌다. 그러는 사이 코로나 종식 소식이 들려왔다. 마스크 없이 지하철을 탈 수 있었고, 보고 싶던 사람들과 마음껏 약속을 잡을 수 있었다. 무채색이던 세상은 다시 색을 되찾아 알록달록해졌다. 그리고 나의 마음도, 조금씩 다시 세상을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