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쓰는가? (2)

뭐 좋다, 그래서 뭘 쓸건데?

by 하작가

독서량은 점점 늘어났다. 읽는 데서 멈추지 않고, 꾸준히 감상문도 남겼다. ‘서평’이라는 말이 있긴 했지만, 왠지 모르게 겸연쩍어서 그렇게 부르진 못했다. 하나둘 책 이야기를 쌓아가다 보니 인스타그램이 점점 나를 ‘책 읽는 사람’으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각종 출판사 계정에서 신간 소식이 자연스럽게 흘러 들어왔다.


그러던 중 창비 출판사의 한 게시물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댓글을 남기면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중국 편 신간을 300명에게 증정한다는 내용이었다. 조건은 명확했다. 기간 내 서평을 인스타에 올릴 것, 그리고 공개 계정일 것. SNS를 과거 싸이월드 재질의 개인 자료 저장소처럼 쓰는 사람에게는 애초에 닿을 수 없는 기회였다. 그 순간 깨달았다. 내가 인스타그램을 어떤 방향으로 사용해야 하는지. 이제 SNS는 단순한 기록장이 아니라, 내가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꿈을 품고 있으며 그 꿈을 위해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통로가 되어야 했다.


첫 서평단 활동을 마치자, 생각보다 더 많은 기회가 이어졌다. 이미 계정에 쌓인 책 사진들, 그리고 질적으로는 부족해도 양으로 성실히 밀어붙인 서평들이 더 많은 서평단 선정으로 이어졌다. 세상에는 정말 다양한 종류의 책이 쏟아지고 있었고, 작가로 살아가고 싶어 하는 사람도 그만큼 많다는 사실이 생생하게 다가왔다. 잠재적인 경쟁자가 많다는 사실에 위축되기보다는, 같은 꿈을 품고 그 꿈을 나누는 동반자가 이렇게나 많다는 점에 오히려 안도감을 느꼈다.


나의 마흔 초반은 작가의 꿈을 품고, 열심히 읽는 데 집중한 시간이었다. 단발성 서평단을 넘어 일정 기간 활동하는 고정 서평단, 이른바 ‘서포터즈’에도 선정되기 시작했다. 짧게는 3개월, 길게는 6개월 동안 출판사의 신간을 읽고, 한 달에 한두 권씩 서평을 인스타그램에 올리는 활동이었다. 그렇게 내 인스타는 조금씩, 분명하게 풍성해지고 있었다.


서평단 활동을 하면서 가장 크게 배운 것은 ‘책임감 있는 글쓰기’였다. 서평의 게시 기한이 있기 때문에 출판사와의 약속을 지킨다는 의미가 있었다. 데드라인, 마감 기한이라는 것은 사람의 행동력을 극한으로 끌어올릴 수 있는 장치다. 이유 불문하고 해내야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학생 때 과제를 제출하는 일이나 회사에서 보고서나 각종 결재를 올릴 때도 데드라인이 있지만 유쾌하게 지켜낸 적은 없는 것 같다. 거의 순수 100% 타의에 의해 진행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서평단은 드디어 내가 재미있고 행복하게 지켜내고 싶은 책임감 있는 활동이기 때문에 마치 인생에 새로운 문이 하나 열린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나의 글을 기다리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도 상당히 설레는 대목이다.


내가 쓰는 사람으로 살아가기 위한 상황에서 현재 가장 부족한 부분은 인지도다. 김형석이라는 사람이 아무리 좋은 글을 써내도 사람들은 느끼지 못한다. 내가 오늘도 글을 열심히 쓰고 있지만 그로 인해 세상은 전혀 변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도 서평단 활동은 출판사가 기꺼이 나의 독자가 되어 주겠다고 약속한 일이기 때문에 참여할 때마다 가슴이 뛰었다. 게다가 내가 올린 피드에 출판사 담당자가 꼼꼼하게 댓글까지 남겨 줄 때면 세상 다 가진 행복감이 며칠 동안 지속된다. 내가 좋아하는 책을 택배비까지 부담하며 보내주고, 부족한 글을 귀한 책의 홍보 수단으로 활용하고, 격려와 감사의 인사까지 받다니 이렇게 가성비 충만하게 자존감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이 또 있을까 싶다.


서평단 활동을 하며 글쓰기 근육을 상당히 키울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꾸준히 쓰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몸으로 깨달은 시기였다. 읽는 일이 물론 중요하지 않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읽은 것을 다시 내 생각과 언어로 재정의하고, 나의 마음과 경험을 덧입혀 또 하나의 글로 만들어내지 않는다면 독서는 얼마든지 시간 낭비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이는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나는 책 읽는 것을 무척 좋아하지만, 문해력이 아주 좋은 편이 아니다. 집중력도 뛰어나지 않아 한 페이지를 읽다가 멍해지는 순간이 매번 찾아온다. 그래서 앞장으로 다시 돌아가는 일도 잦다. 하지만 이제는 그것마저 독서의 일부라고 받아들이고 있다. 결국 다시 쓰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피할 수 없는 과정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혹시 나와 비슷한 방식으로 독서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말해주고 싶다. 정말 괜찮다고. 오히려 그 ‘다시 돌아가는 순간’이 당신의 인생을 조금 더 재미있고, 조금 더 행복하게 만드는 중요한 경험이 될 수 있다고.


그즈음부터였다. 이제는 남의 책만 읽는 데 그치지 않고, 나의 글을 쓰고 싶다는 마음이 분명해졌다. 언젠가는 책이라는 형태로 만들어보고 싶다는 욕심도 생겼다. 그래서 2023년이 지나기 전까지 내 이름을 건 책 한 권을 내보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그런데 막상 그다음 질문에서 멈춰 섰다.


‘그래서, 뭘 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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