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재(人材)라는 이름의 유령, 그리고 남겨진 우리들의 예의
자꾸만 같은 자리에 구멍이 난다. 신입을 받아 금지옥엽같이 모시고 가르쳐 이제 제 몫을 하나 싶으면, 돌아오는 건 수줍은 고백이 아닌 퇴사 통보다. 채용 공고를 내고 면접을 거쳐 새 사람을 앉히기까지 걸리는 마의 두 세달. 조직은 절대 기다려주지 않는다. 결국 옆자리 동료들의 어깨 위로 카드 돌려막기식 업무가 얹혀진다. 누군가의 고통으로 누군가의 빈자리를 메우는 것, 안타깝게도 이것이 우리 조직이 선택한 최선이라는 탈을 쓴 몰골이다.
하지만 숙련된 경력자들조차 이 자리에선 맥을 못 춘다. 이 조직에선 나름 날고 긴다는 사람도, 어딘가에서 비슷한 업무를 하며 괄목할 성과를 낳았던 사람도 금방 나가떨어지는 이 독이 든 성배를 신입에게 맡기려 했다니, 지나온 무모함에 실소가 터진다. 더 기막힌 건 조직의 학습 능력이다. 1년 동안 담당자가 세 번 바뀌었다. 사업 계획을 세운 사람, 전반기 보고를 한 사람, 최종 결과 보고서를 작성한 사람이 모두 제각각인 기이한 풍경. 과연 이 기막힌 연극의 주인공은 누구란 말인가.
사람들은 말한다. 업무가 과중하니 분장을 새로 하거나 인원을 늘려야 한다고. 하지만 그건 이미 우리 회사에서 숱하게 패배한, 먼지 쌓인 솔루션일 뿐이다.
진짜 문제는 업무의 무게가 아니라 업무를 둘러싼 ‘공기’에 있다. 외부 업체의 무리한 요구, 상위 부서의 허황된 성과 지표, 그리고 협력을 가장해 자행되는 은근한 갑질들. 담당자는 칼퇴는커녕 야근 수당조차 보장받지 못한 채 밤의 불을 밝힌다. 하지만 주변 누구도 선뜻 손을 내밀지 못한다. 도와주다 정이라도 들면, 혹은 그가 ‘늘 그랬듯’ 떠나버리면 그 짐이 고스란히 내 것이 될지 모른다는 비겁하고도 슬픈 본능 때문이다. ‘호의가 권리가 되는’ 무한 루프 속에서 우리는 살아남기 위해 기꺼이 이기적이 된다. 그리고 그 생존 본능을 차마 나쁘다고 손가락질할 수도 없다.
결국 세 번째 퇴사 소식이 들려왔다. 이번엔 신입도 아닌, 회사의 기틀을 닦았던 베테랑이다. 조직 내부가 술렁였다. 노사협의회 안건으로까지 올라갔다. “특정 직무의 반복적 퇴사, 인재 관리 대책 마련 시급.” 그러나 돌아온 사측의 답변은 서늘했다.
“허 참, 인재(人材)라니요. 당신들이 입에 올리는 인재라는 단어의 의미를 다시 정립해야 합니다. 무책임하게 업무를 팽개치고 마무리도 없이 내빼는 사람을 어찌 인재라 부르겠습니까? 그런 이들의 퇴사까지 회사가 관리할 의무는 느낄 수 없습니다.”
조직을 관리하는 고충을 모르는 바 아니다. 하지만 그들이 정의한 ‘인재’의 범주가 너무나 독단적이라 숨이 막힌다. 묻고 싶다. 그들을 당신들이 정의하는 진정한 인재로 만들기 위해 단 한 번이라도 그들의 마음을 들여다보았는가?
얼마나 힘든지, 어떤 기분으로 그 자리를 버티고 있는지, 그래도 보람찬 순간은 없었는지, 무엇을 도와주면 당신이 우리와 더 오래 함께할 수 있을지. 일을 못 한다고 비난하기 전에 동기부여를 하고 동료를 지켜내는 것, 그것이 리더와 관리자의 최우선 업무 아닌가. 그 임무를 방기한 채 떠난 이를 비난하는 것으로 책임을 회피하는 모습은 비겁하다 못해 처참하다.
더 최악인 건 떠난 이의 뒷모습에 대고 침을 뱉는 상사들이다.
“그 친구가 다 망쳐놔서 일이 이 모양이야.”
그 말을 듣는 남은 이들의 마음엔 공포가 서린다.
‘나도 언젠가 떠나면 저런 취급을 받겠구나.’
심지어 오랫동안 헌신한 경력자의 퇴사를 두고 “진작 나갔어야 할 놈들인데 속이 시원하다”며 자평하는 광경에선 소름이 돋는다. 그게 당신들의 조직 운용의 묘라면, 그 잔혹함 속에서 나는 언제든 다음 타자가 될 수 있다.
내가 인재라고 인정해달라는 칭얼거림이 아니다. 다만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데, 우리는 고래만도 못한 존재인가. 당신의 자식이 아니라서, 피 한 방울 안 섞인 타인이라서 이렇게까지 가혹한 것인가. 퇴사를 앞둔 동료에게 가해지는 ‘N차 반려’의 횡포는 절정이다. 목차 순서, 줄 간격, 번호 매기기... 자기가 지적한 내용조차 기억 못 하면서 끊임없이 ‘빠꾸’를 놓는 행위는 명백한 폭력이다.
송별 점심 자리에서조차 “결재 다시 올렸어?”라고 속삭이는 팀장의 목소리.
결국 동료는 트라우마를 가득 안은 채 도망치듯 회사를 나선다.
그 뒷모습에 대고 관리자는 비웃는다. “저런 게 무슨 인재야?”
아름다운 이별은 바라지도 않는다. 다만 직급을 내세워 막판까지 영혼을 탈탈 터는 깡패짓은 멈춰야 한다. 관리자라면 적어도 업무의 전문성, 지성과 교양, 그리고 사람을 품을 줄 아는 따뜻한 인격 중 하나라도 갖춰야 하는 것 아닌가. 우리가 감히 이런 요구를 하지 못하는 건, 나 또한 ‘인재가 아닌 무능한 도망자’로 낙인찍힐까 두려운 탓이다.
나의 관리자들이 이 글을 본다면 아마 둘 중 하나로 반응할 것이다. “아, 직원들이 이런 마음일 수도 있겠구나.” 하며 자성하거나, 혹은 “나를 두려워한다고? 관리자로서 내가 아주 성공했구먼!” 하며 쾌재를 부르거나.
안타깝게도 우리 회사의 관리자들은 단연 후자의 의미에서, 아주 훌륭한 ‘인재’들이다. 그러나 나는 다짐한다. 나는 당신들처럼 살지 않겠다고. 사람을 소모품으로 쓰는 조직이 아니라, 사람의 온기를 지키는 동료로 남겠노라고. 그것이 내가 이 비정한 일터에서 나 자신을 지키는 마지막 자존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