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속가능하고 행복한 직장생활 가능함?(20)

여전히 내 팔뚝에 선명한그녀의 손톱자국

by 하작가

내가 전직한 직업상담 분야에서 일 년 중 가장 크고 중요한 사업을 꼽으라면 단연 ‘취업박람회’다. 이 기회를 빌려 취업박람회에 대한 지극히 개인적이고도 뼈아픈 견해를 밝히자면, 박람회는 가장 중요해 보이지만 사실 가장 먼저 없어져야 할 행사다. 운영 방향을 바닥부터 완전히 뒤집어엎어야 한다.


내 생각에 박람회는 대개 정치적인 논리로 운영된다. 막대한 예산을 쏟아부어 화려한 공간을 빌리고, 누가 봐도 감탄할 만한 대기업을 섭외하고, 얼마나 높은 분을 내빈으로 모셨는지가 주최 측의 역량을 과시하는 척도가 된다. 그 화려한 무대 위에 구직자는 주인공이 아니다.


내가 속한 센터에서도 작은 박람회를 개최했다. 다섯 개의 지역 기업이 참여하는 미니 박람회였다. 나는 두 개 기업의 인사담당자 응대와 부스 운영 지원을 맡았다. 행사는 오후 1시부터 5시까지였다. 3시가 좀 넘어갈 무렵, 한 기업 담당자가 다급한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회사에 급한 일이 생겨서 지금 당장 들어가 봐야겠다고 했다. 행사 종료 시까지 담당자가 자리를 뜨지 않도록 관리하는 것이 내 중요한 임무 중 하나였기에 난색을 표했지만, 담당자는 부드러운 표정과 말투로, 하지만 약간의 협박의 뉘앙스를 적절하게 조합한 필살기를 꺼내들었다.


“지금 들어가 봐야 회사에서도 다음번 박람회 때 또 나올 수 있도록 여건을 보장해 줄 겁니다.”


양질의 기업 하나를 섭외하는 게 얼마나 피 말리는 일인지 알기에, 나는 일단 보내드리는 게 맞다는 판단을 내렸다. 하지만 최종 결정은 팀장의 몫이었다. 불행히도 상황을 정리해 줘야 할 팀장은 보이지 않았다. 본사에서 나온 본부장님과 대화하러 잠시 자리를 비운 상태였다. 다급한 상황에서 내가 선택한 건 전화였지만, 수신 거절로 뚝 끊기고 말았다. 결국 나는 불안한 마음을 안고 ‘선조치 후보고’를 해야 했다.


약 1시간 후, 행사장으로 팀장이 돌아왔다. 빈 부스를 발견한 그녀가 다가와 상황을 물었다. 나는 긴장된 마음으로 설명하기 시작했다.


“00기업 담당자가 회사에 급한 일이 있어서 가봐야 한다고 했습니다. 대신 다음 행사 땐 꼭 다시 참석하겠다고...”


여기까지 말했을 때였다. 수많은 구직자가 모인 개방된 공간에서 상상조차 하기 힘든 날카로운 비명이 내 귀를 찢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내 왼쪽 팔뚝 안쪽 살점도 함께 찢겨나가고 있었다. 팀장은 극도의 분노를 참지 못하고 괴성과 함께 육두문자를 쏟아냈다. 요 며칠 압축해 놓은 쓰레기더미 같은 감정을 손끝에 모아, 내 팔뚝의 가장 연한 살점을 뜯어내는 길을 택한 것이다.


그녀의 뒤에는 본사 본부장과 팀장이 서 있었다. 그들은 애써 고개를 돌려 이 참혹한 광경을 외면했다. 우리 주변의 모든 사람이 슬로우 모션처럼 움직이며 수군거렸다. 박람회라는 중요한 행사에서, 내가 치욕스러운 주인공의 자리에 올라서는 순간이었다.


직장 생활을 하며 마음이 다친 적은 많지만, 물리적인 폭력에 의해 몸까지 다친 건 처음이었다. 내 생애 가장 강력한 폭행이었다. 그날의 팀장은 내 기억속에선 영화에 나오는 조폭 두목만큼이나 잔인했다. 어렵게 들어온 직장에서 이런 사람을 직속 상관으로 만날 줄이야.


지금도 매년 박람회 관련 업무를 할 때마다 상이군인처럼 팔뚝을 들어 그날의 상처를 무심하게 바라보곤 한다. 이제 손톱자국은 거의 아물어 보이지 않지만, 내 눈에는 여전히 그 구멍에서 피가 쏟아지는 장면이 생생하게 보인다.


만약 내가 팀장이었다면 어땠을까? 대답은 자신 있게 ‘아니요’다. 적어도 행사장 안에서는 말을 아꼈을 것이다. 정리가 마무리된 후, 커피 한 잔을 건네며 편안한 상태에서 이야기했을 것이다.


“오늘 정말 고생 많았어요. 아까 돌발 상황에서 얼마나 고민이 많았겠어요? 내가 전화 받을 상황도 안 돼서 당황스러웠죠? 그럼에도 나름의 판단을 내려서 인사담당자 마음이 상하지 않게 조치해 준 결단은 잘했다고 말해주고 싶어요.”


먼저 노고를 치하하고, 제때 도움을 주지 못한 것에 대해 사과한 뒤, 칭찬하는 게 우선이다. 진짜 하고 싶은 조언은 그다음이다.


“다만, 그 상황에서 최선의 선택은 무엇이었을까요? 만약 다시 그런 상황이 오면 어떻게 하고 싶어요?”


‘당신이 잘못 대처했다는 것을 스스로 잘 알고 있지 않나요?’라는 신뢰를 한 번 더 주는 리더십. 비난의 말을 잠시만 눌러놓으면, 훨씬 부드러운 '피드백'으로 다시 태어난다.


여전히 나는 그 팀장을 용서할 용기가 나지 않는다. 직원의 살점까지 물어뜯던 그녀에게 나는 전혀 소중한 존재가 아니었다. 대신, 나는 지금부터 내가 만날 사람들에게 용서를 베풀기로 했다. 조금 더 침착하게, 마음 다치지 않게, 몸도 다치지 않게. 그것이 내가 피 흘리며 배운 잔혹하지만 소중한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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