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속가능하고 행복한 직장생활 가능함?(21)

지옥 같은 몸살이 남긴 깨달음 - 좋은 건 같이 하고 싶으니까

by 하작가

"요즘 재미있어요?"


아침에 만나는 동료들에게 건네는 나의 첫인사다. 열에 아홉은 '무슨 그런 질문을 하냐'는 표정으로 답을 대신한다. 그럴 때면 나는 능청스럽게 덧붙인다.


"아, 당연히 재밌는데 뭘 새삼스레 물어보냐는 뜻이죠?"


그제야 동료들은 "내가 졌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억지로라도 만든 미소 한 조각. 나는 그렇게 동료들의 아침에 작은 웃음 물결을 일으키려 노력한다.


하지만 인사가 끝나고 뒤돌아선 그들의 뒷모습은 여전히 무겁다. 사무실 책상에는 '시궁창 같은 현실'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쌓여가는 업무, 그에 비례하는 스트레스, 날카로운 전화벨 소리와 숨 막히는 정적 속의 키보드 소리…. 하루 중 가장 오래 머무는 이 공간이 때로는 어느 문학작품이나 영화 속 지옥의 풍경과 참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누군가 나에게 묻는다면 어떨까. "당신은 즐거운가요?" 솔직히 매 순간 행복하진 않지만, 적어도 즐거운 마음으로 출근한 적은 많다. 대단한 비결은 아니다. 누구나 매일 하는 '출근'의 방식을 조금 바꿨을 뿐이다.


지옥 같은 몸살이 남긴 깨달음

회사에서 5km 거리, 버스로 15분. 직주근접의 혜택을 누리며 5년을 살았다. 그러던 어느 날, 지독한 몸살이 왔다. 이틀을 꼬박 누워만 있었는데 기운이 나기는커녕 바닥에 닿은 목과 허리가 끊어질 듯 아팠다. '운동 부족'이라는 흔한 진단이 실제 고통으로 다가온 순간이었다.


문제는 '시간'이었다. 운동할 시간을 따로 내기가 너무 어려웠다. 결국 이전에 없던 시간을 쥐어짜 내기로 했다. 집 앞에서 회사 앞까지 나를 실어다 주던 자가용 수준의 성남 315번 버스를 포기하는 것부터 시작했다.


처음에는 한 정거장 일찍 내려서 500m 정도를 빠르게 걸었다. 날이 풀리자 이마에 송골송골 땀이 맺혔다. 그런데 이 땀방울이 주는 쾌감이 생각보다 대단했다. 일단 작은 성취감이 주는 뿌듯함이 찾아왔다. 500m가 주는 선물같은 맛을 보니 욕심이 생겼다. '겨우 요만큼으로도 기분이 좋은데, 나머지 4,500m를 달리기로 다 채우면 얼마나 짜릿할까?'


회사는 일 잘하겠다는 사람을 말리지 않는다

다음 날부터 아예 뛰어서 출근하기 시작했다. 가장 큰 걸림돌은 샤워였다. 매일 사우나비 만 원을 내기엔 지갑 사정이 여의치 않았다. 마침 우리 회사는 교육 서비스를 제공하는 곳이라 숙박용 객실이 있었다. 나는 곧장 담당 부서에 메일을 보냈다.


"안녕하세요, 교육지원부 김형석입니다. 업무 몰입도 향상과 스트레스 관리를 위해 아침 운동을 시작하려 합니다. 혹시 직원을 위한 샤워 공간을 확보해주실 수 있을까요? 인근 사우나 비용이 부담스러워 지속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검토 부탁드립니다."


놀랍게도 회사는 선뜻 객실 하나를 샤워실로 배정해 주었다. 여기서 깨달았다. '말 한마디'의 힘을. 나의 속마음은 사실 "월급도 쥐꼬리만큼 주면서 사우나비 정도는 지원해줘야지!"라고 외치고 싶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상대의 입장에서 '귀찮은 일'을 '기꺼이 도와주고 싶은 일'로 바꾸는 정중함이 필요했다. 회사는 결국 '일 잘하겠다는 사람'의 손을 들어줬다.


내 일상의 주인으로 달리는 출근길

이제 새벽이면 눈이 번쩍 떠진다. 예전에는 억지로 몸을 일으켜 뭘 입을지 고민하며 시간을 보냈지만, 지금은 다르다. 양치만 하고 미리 준비해둔 운동복을 챙겨 입으면 끝이다. 업무용 복장은 이미 회사 사물함에 요일별로 골라 입을 수 있도록 옮겨두었다. 회사 청소 해주시는 여사님의 "집에서 쫓겨 났어?"라는 걱정어린 질문조차 유쾌하게 들린다.


집을 나서는 단계가 단순해지니 마음에도 싱그러운 바람이 분다. 출근 방법 하나 바꿨을 뿐인데 인생의 페이지를 이전과 다른 마음으로 가볍게 넘길 수 있게 됐다. 굳이 세게 달릴 필요도 없다. 걷고 싶으면 걷고, 컨디션 좋으면 속도를 낸다. 만원 버스의 피로도, 대중교통 파업 소식도 더 이상 내 아침을 방해하지 못한다. 내가 편하고 좋아하는 페이스대로, 내 다리를 의지해 달리는 이 길 위에서 나는 비로소 내 일상의 주인이 된다.


달리기로 세상을 돕는 법

달리기에 발을 살짝 담그자 새로운 세상이 열렸다. 마침 코로나 시국이라 비대면 '언택트 레이스'가 유행이었다. 아이들을 돌봐야 하는 아빠로서 주말 대외 활동은 사치였는데, 혼자 달리고 인증하는 방식은 나의 상황에 딱 맞았다.


그렇게 시작한 '기부런'이 벌써 5년째다. 독립유공자 후손을 위해(815런), 루게릭 환우를 위해(아이스버킷 챌린지 런), 식수가 부족한 아이들을 위해(6K Global Run) 달렸다. 거창한 사명감으로 시작한 건 아니었다. 그저 출근길을 조금 더 재미있게 만들고 싶었을 뿐이다. 그런데 내 모습을 본 동료들은 말한다. "에이, 형석 씨니까 하는 거죠. 저는 못 해요."


그 말을 들을 때면 가슴이 미어진다. 나라고 왜 출근이 안 힘들었겠나. 몸이 아파서 걷기 시작했고, 걷다 보니 뛰게 된 것뿐이다. 당신들도 충분히 할 수 있는데!



좋은 것은 같이 하고 싶으니까

전략을 바꿨다. 달리기라는 다소 부담스런 행위의 중요성을 내세우는 대신 '콩고물'을 강조하기 시작했다. "이 대회 신청하면 티셔츠에 모자에 로봇청소기 당첨 기회까지 준대요!" 내가 지금까지 받았던 기념품 보따리를 풀며 영업(?)을 뛰었더니, 벌써 세 명의 동료가 러닝에 동참했다. 밝아진 그들의 안색을 볼 때면 내가 더 행복해진다.


좋은 에너지는 몸과 마음을 바꾼다. 마음이 긍정적으로 변하면 아파도 금방 낫고, 더 즐겁게 달리기 위해 생활 습관까지 건강해진다. 이건 결국 '지옥 같은 출근길'을 '설레는 아침'으로 바꾸는 강력한 힘이 된다.


"그러니 여러분, 우리 같이 걸어요. 걷다 보면 뛸 수 있게 되고, 신기하게도 행복은 그 곁을 따라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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