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속가능하고 행복한 직장생활 가능함? (3)

그렇게 이직 중독자가 되어가 (1)

by 하작가

그렇게 이직 중독자가 되어가 (1)


"부장님, 저 교육팀으로 원복하고 싶습니다."

"아니, 벌써? 왜?"


앞서 말한 내게 생겨난 몸과 마음의 병들에 대해 소상하게 고했다. ‘다 그러고 살아'가고 싶지 않다는 말과 함께 회사의 소모품이 되기 싫다는 의사를 분명히 전했다.


회사 입장에서 나는 ‘갑’이 맡겨 놓은 물건이었다. 내가 바로 삼촌이라는 빽으로 낙하산 타고 마른 하늘에서 뚝 떨어져 꼭 업그레이드 시켜야 하는 물건이었다. 이곳에서 가장 빨리, 그리고 높이 올라갈 수 있는 지름길은 다름 아닌 당초 내게 제시된 영업직무 였다. 그 길은 회사가 만들어 놓은 그 길은 오직 혈기만 왕성한 내가 당시 상황에서 쟁취할 수 있는 최고의 자리였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나의 경력과 역량, 그리고 인성 수준을 감안하면 황송하기 짝이 없는 제의였다. 그럼에도 당시엔 그 좋은 길을 걸어갈 수 있는 몸도, 마음도, 능력도 두루 없었다.


회사는 한심한 낙하산에게 유예 기간을 주기로 했다. 얼마간 다시 교육팀에서 일하다 영업 부서로 돌아오기로. 나는 입으로는 예스라고 말했지만, 마음은 정반대로 대답하고 있었다. '일단 살고 보자.' 미래의 나에게 이 모든 책임을 맡겨 두고 교육팀으로 피신하듯 복귀했다.


교육팀의 일은 루틴했고, 지방 출장이 잦았다. 정해진 강의안을 충실히 준비하고, 고객사 직원들 앞에서 한 시간씩 떠들면 되는 일이었다. ‘교육’이라는 거창한 이름이 붙어 있었지만, 지금 와 생각해보면 회사와 고객사가 나의 일을 참 후하게 평가해줬던 것 같다.


아무튼 다시 온 교육팀 생활은 몇 달 동안 무척 평온했다. 영업팀으로 돌아가기로 한 합의 시점이 다가오고 있었지만, 일부러 애써 잊고 있었다. 그때 새 직원이 채용되어 내 옆자리에 앉았다. 인력 충원이라고 생각했다. 후배가 생긴다는 사실만으로도 들떠 있었다. 실제로 나는 OJT를 맡아 강의 준비, 전화 응대법, 프로그램 사용법 등을 알려줬다.


하지만 그것은 인수인계였다.
내가 모를 리 없었다. 그저 모르는 척하고 싶었을 뿐이다.


시간이 흐르면 정식 인사발령이 날 것이고, 약속한 이상 영업부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그런 상황에서 생존을 위한 내 두 번째 승부구는 이전보다 더 강력해야 했다.


"퇴사하겠습니다."


이 승부구는 생각보다 파급력이 상당했다. 나의 다음 무대는 사장실로 바뀌었을 정도니까.


"아니, 방금 보고 받았는데 퇴사라니 무슨 말인가요?"

"들으신 대로입니다. 사장님."

"이유가 뭔지 물어봐도 되나요?"

"네, 00그룹 00사 최종 면접이 잡혔습니다. 이직하려고요."


긴장감이 흐르는 사장실에서 울리는 내 목소리가 참 낯설었다. 많고 많은 이유 중 왜 하필 ‘대기업 최종 면접’ 같은 말을 입에 올렸는지 모르겠다.


"아니, 최종 합격된 것도 아닌데 그렇게 빨리 결정을 했어요?"

"네, 그렇습니다. 저 쪽 회사에서 아주 긍정적으로 생각 중이더라고요."


‘하하, 갈수록 태산이네.’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그때 그 공간에서 가장 내 입을 틀어막고 싶은 사람은 나 자신이었을 것이다. 머릿속에서 정리가 채 되지 않은 위험한 말이 제멋대로 튀어나오는 속도가 이렇게 빠르다는 것을 처음 느꼈다. 극한 상황에서 내가 이렇게 대책 없는 사람이 된다는 사실도 처음 알게 됐다. 뼈아픈 수확도 나름대로 소중한 인생 공부의 순간이었다.


"그래요, 그럼, 결과 나오고 나서 다시 얘기합시다. 새로 맡은 업무 때문에 바쁜 줄만 알았는데... 나름 준비를 잘하고 있었나 보네요?"

앞뒤 모르고 기세등등한 젊은 낙하산 요원을 바라보는 사장님은 침착하게 어처구니없는 상황에 대응하고 있었다. 역시 한 조직의 리더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반면 십 수 년전의 나는 과도하게 패기 만만한 나머지 어전히 사리 분별이 잘되지 않았다. 나의 다음 멘트는 다음과 같았으니까.


"감사합니다. 부장 통해 결과 보고 드리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지금 와서 보니 객기도 적당히 부려야지, 무슨 배짱으로 이렇게 초강수를 뒀나 싶다. 거짓말이 거짓말을 낳는다. 허언증 환자가 되는 것, 이렇게 한 순간이구나!


하지만 내 마음속엔 한 가지 생각 뿐이었다.


‘재미없다, 회사 정말 재미없다.’


‘재미있게 회사 다니자’

그 마음은 지금까지도 변함없이 나를 움직이는 원동력이다.


벌써 14년 전 일이다. 끝 모를 무모함과 부딪히기 시작한 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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