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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달 Sep 01. 2023

자유롭게 떠나는 카라반 여행

강원도에서


도발적인 여름의 기세에 눌려 청춘의 여드름과 같은 피부를 가지게 된다. 얼굴에 번들거리는 기름과 미지근한 물은 섞이지도 않는다. 기름 냄새를 맡고 달려드는 모기에 속절없이 당하기 일쑤. 여름은 길고 너무나 열정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나 나는 이 여름이 가면 가을이 오고 바로 한 해가 마무리되는 분위기임을 알기에 여름이 가는 것이 아쉽다. 미운 정 고운 정이 들어버렸다. 정열적인 여름을 그대로 즐기려면 떠나야 한다. 도시는 너무나 키가 큰 건물들이 여름의 솔직한 진심을 숨기고 어설픈 지구 온난화 프레임을 씌우고 걱정만 한다. 에어컨은 끄지 않은 채.


나는 드디어 저녁에는 추워서 이불을 덮어야 하는 여름의 시골에 와있다. 창문을 활짝 열고 방충망 사이로 들어오는 뜨겁지 않은 흙의 바람을 피부로 느낀다. 기분 좋게 추운 듯 시원하다. 아스팔트 아지랑이는 더 이상 없다. 열대야라는 단어도 없다. 우리는 매미의 노래가 더 이상 시끄럽지 않고 청량하다고 느낀다. 작은 벌레들의 독창도 귀 기울여 듣는 여유가 생긴다. 풀벌레들의 작은 귀도 생각한다. 시끄럽지 않은 백색소음은 도시의 여름 소리를 잊게 만든다. 아무것도 하지 않을 자유, 눈과 귀와 피부가 쉴 시간을 즐긴다. 기분 좋게 눈을 뜨고 창문 밖 풍경을 보고 카디건을 걸치고 슬리퍼를 신고 데크 위 의자에 앉는다. 아무도 일어나지 않았다. 해치의 끈을 묶지 않아도 된다. 유유히 산책을 하다가 커피 물을 올린다. 그대로 멈춰버린 시간, 풀의 다양한 색채에 놀란다. 선글라스도 모자도 양산도 필요하지 않은 이유는 나무가 있어서이다. 나무는 해를 가려주는 일만 하는 것이 아닌 멋진 색채의 마법을 보여 상상의 나래를 생명이라는 숭고한 철학으로 이어가게 만든다. 나무는 부모 같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 책도 생각난다. 압력솥의 추가 움직인다. 정다운 소리이다. 누구 집에서 아침밥을 짓는지 알게 하는 사적이지 않는 소리이다. 구수한 밥과 짭조름한 명란젓과 뭉클 새콤한 방울토마토 냄새가 어우러진다. 아침은 솥밥으로 준비했다. 해가 나자 땀이 난다. 그러나 억지로 속이지 않는 부지런하고 착한 땀이다. 물통을 가득 채운 카라반에서 아껴 쓰며 조심스레 샤워를 했다. 카라반에는 굴리는 물통이 두 개 필요하다. 샤워나 설거지 후 생긴 물을 담은 통을 다시 화장실에 버려야 한다.







자작나무 숲 캠핑장이라는 말에 근처에 자작나무 숲이 있는 줄 알았는데 원대리 자작나무 숲은 다른 곳이었다. 트래킹을 하기 위해 떠났다. 왕복 2시간 걸리는 코스와 왕복 3시간 걸리는 코스가 있다. 짧은 시간의 코스는 좀 가파르다. 평평한 숲을 만나기 위해서는 등산 같은 걸음을 걸어야 한다. 많이 가파르다. 헉헉거리는 숨소리와 비 오듯 쏟아지는 땀, 눈과 귀에 달라붙는 작은 벌레들, 여름 등산을 처음 해본다. 자작나무는 사실 돌연변이이다. 하얀 호랑이, 하얀 하마 모두 돌연변이라 목숨이 위태로웠다. 그러나 자작나무는 귀한 대접을 받는다. 시각이 아름답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얀색은 고귀하면서 외로운 색이다.









근처 곰배령도 트래킹 하기 좋은 곳이라고 한다. 또 백담사도 유명한 곳이다. 남편은 전두환을 떠올린다. 입에 담지도 말라고 날카로운 소리를 날린다. 고귀한 곳이 더러운 이름으로 기억되다니 너무 하다. 근처 만해 마을은 한적한 곳이다. 12 선녀탕 계곡도 있고 조용하다. 반면 백담사는 주차장부터 많은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백담사 계곡 역시 사람이 많다. 셔틀버스를 타고 올라가면 백담사가 있다. 해치도 난생처음 계곡에 발을 담갔다. 아직 수영을 해 본 적이 없다. 동물들은 본능으로 수영을 할 수 있다고 한다. 개헤엄. 물을 싫어하는 해치도 너무 더운지 발을 담근다. 아주 잠깐 더위를 피한 후 다시 낮잠을 자기 위해 캠핑장으로 왔다. 오늘의 큰 이득은 12 선녀탕 계곡을 안 것이다. 근처 큰 공영캠핑장이 있다. 가을 캠핑을 즐기고 싶을 때 이곳에 오면 될 것 같다. 조금씩 정보가 쌓인다.






한 마리의 제비가 봄을 만드는 것도 아니며 날이 좋은 하루가 봄을 만드는 것도 아니듯 행복한 하루나 짧은 시간이 지극히 복되고 행복한 사람을 만드는 것도 아니다는 말이 있다. 오늘 하루, 이번 여행으로 짧은 행복감을 누리는 것은 억울하다. 여행은 삶의 연속상에서 삶을 되돌아보고 소중하게 만드는 시간이다. 계속 행복을 지속하는 방법을 배우는 시간이 여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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