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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달 Sep 02. 2023

자유롭게 떠나는 카라반 여행

아름다운 속초


구체적이고 꼼꼼하게, 하나라도 놓칠라 안달복달 여행을 하던 시기가 있었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이다. 하나라도 더 보여주고 싶은 욕심은 정보의 여왕으로 만들었다. 아들이 말한다. 주변 친구들 중 박물관이나 미술관을 가지 않는 친구들이 많다고, 본인들은 그런 경험을 많이 해서 좋은 것 같다고. 그러나 나는 이제 지쳤다. 그렇게 꼼꼼하게 여행을 하고 싶지 않다. 우리는 그냥 마음 가는 대로, 즉흥적인 여행을 하기로 했다. 시작은 영남 알프스 가고 싶은 마음인데 지금 삼 일째 강원도에 있다. 오늘 속초를 가기로 마음을 먹은 이유는 반려견을 동반할 수 있는 식당, 카페가 많기 때문이다. 그리고 최근에 알게 된 속초 명소가 있다.






속초 재래시장은 정말 사람이 많았다. 카라반의 냉장고가 고장이 나서 스티로폼 박스와 얼음을 사고 들뜬 마음으로 시장을 구경했다. 나는 재래시장을 좋아한다. 같은 크기의 공장에서 찍어낸 듯한 애호박이 아닌 다양한 크기의 애호박을 살 수 있고, 잘 깎지는 못하지만 덤으로 얻는 인정에 웃음 지을 수 있고, 어린 시절 할머니와 가 본 시골의 냄새가 생각나기도 하고, 호기심 가는 재미있는 물건을 많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예전에 비해 무뚝뚝한 상인들이 많이 무섭지 않다. 건조된 생선을 파는 맛집 가게를 발견해서 택배로 부치고 복숭아 한 박스를 샀다.



영랑호를 아는 사람이 많지 않다. 영랑호는 굉장히 크고 아름답다. 속초의 숨은 보물이다. 한 바퀴 도는 것이 힘든지 중간에 다리를 만들어 놓았다. 트래킹 하기 딱 좋은 장소이다. 주차장에서 멀어질수록 점점 낯선 공간이 나온다. 작은 빌라도 있고 예쁜 카페도 많다. 호수를 가까이 두고 걷게 만든 나무테크 길도 있고 호수를 바라보는 흔들의자도 있다. 강아지를 좋아하는 카페 주인에게 강아지 건강 정보도 얻고 지친 다리를 잠시 쉬게 했다. 아무리 더워도 따뜻한 아메리카를 마시던 나지만 오늘은 아이스 아메리카가 딱이다. 속초에 나오니 벌써 도시 여름이다.







다시 영랑호를 걷는데 "야생동물 출현 주의"라는 문구가 있다. 야생동물이라면 멧돼지인가, 들고양이인가, 뭐지 라는 말을 주고받는데 갑자기 해치가 짖는다. 우리는 또 강아지를 봤구나 싶어 자동으로 해치를 안았다. 그런데 세상에나 들개가 내 앞에 떡하니 서있다. 나는 젖 먹던 힘을 다해 "저리 가, 저리 가" 가방을 휘두르며 소리를 질렀다. 산책하던 사람들이 모두 우리를 바라본다. 비쩍 마른 들개는 한참 우리를 노려보더니 유유히 산 쪽으로 몸을 돌린다. 놀란 가슴은 진정이 되지 않는다. 개는 본능적으로 한 번 물면 절대 놓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 위험한 것이다. 아, 해치가 물렸으면 어쩔 뻔했나, 생각만 해도 식은땀이 나고 소름 끼친다. 우리는 정말 해치를 지켜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들개가 무섭지도 않았다. 그런데 가만 생각하니 들개는 정말 우리를 해칠 마음이 없었던 것 같다. 바로 물 수도 있었는데. 먹을 것을 찾아 내려왔나, 비쩍 마른 몸이 자꾸 생각나 안쓰러운 마음이 든다. 주변에 들개가 많은 모양인데 그럼 차라리 들개 조심이라고 써붙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어쩌다 이 지역에 들개가 생긴 것일까 아마 사람이 버린 개일 것이다. 결국 주먹구구식으로 안전을 생각하지 않고 하는 행동은 우리 모두의 안전을 위협한다. 밤에 여기 산책하는 것은 위험할 것 같다. 아찔한 순간이 기억에 남는 일화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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