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서울에서 태어나고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모두 서울에서 보냈다. 그 집에서 한 번도 이사를 가지 않았다. 나의 집은 큰 집이어서 명절에는 친척들이 왔다. 그 곳에서 나는 내 이름으로 딸, 손녀, 조카, 학생이었다. “몇 학년이지? 공부는 잘 하니? 키 많이 컸네” 질문을 받고 관심을 끄는 존재였다. 우리 집의 수저와 젓가락이 몇 개인지 아는 친척과 이웃이 주위에 있었다. 하나의 단단한 뿌리는 나를 안정적으로 만들어주었다.
결혼을 하고 나는 2년마다 이사를 다니고 있다. 서울에서 경기도로, 부산으로 다시 경기도로, 이 아파트에서 저 아파트로 옮기고 있다. 그리고 명절 때마다 나는 친척집을 찾아간다. 나의 이름은 희미해지고 관심을 끌지 못한 채 역할이 다양해졌다. 아내, 엄마, 며느리, 숙모, 고모, 학부모, 소비자이다. 이렇게 주변적이고 불안정한 공간에 놓여 있다. 나는 왜 이사를 다녔나? 가지고 있는 경제적인 범위 안에서, 또는 직장의 거처에 따라, 더 나은 환경을 위해 자꾸 보금자리를 바꾸었다. 집을 보러 다니고 결정하고 전기, 전화, 도시가스를 끊고 다시 연결하는 과정을 거친다. 이별하고 다시 사람을 만나는 일은 익숙한 사무가 되었다. 이 때부터 나는 <호밀밭의 파수꾼> 의 ‘나’처럼 소중한 무언가를 잃어버리면 끝까지 찾아내려고 하는 집착성이 사라졌다. ‘나’가 학교를 옮겨 다니듯 나도 집을 옮긴다. 아버지의 갑작스런 죽음은 식구들 모두 유목민으로 만들었다. 엄마도 여기 저기 이사를 다니시고 자식들도 덩달아 돌아다니는 유목민 생활을 한다. 마음을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하는 모습이다. 어릴 적 서울의 모습이 사라진다. 정착할 거라는 기대와 욕심을 버리고 연기처럼 사라지면서 나는 어느새 경계 밖으로 나간 사람이 되었다. 내 인생의 중심은 남편, 아이들, 부모님, 사회의 생산자이다. 어느 곳에도 소속되지 않고 연대감이 사라지는 경계인이 되어 버렸다. 특히 부산에서 느낀 소외감은 처음 느껴보는 것이었다. 현재에서는 불안하고 외로웠다. 푸른 바다는 위로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괜찮아요 미스터 브래드> 영화 속의 아빠처럼 나도 주변을 둘러보았다. 나를 묶어 줄 뿌리는 있는 것인가? 2년마다 내가 뿌린 민들레 홀씨는 여러 곳에서 작은 뿌리를 내리고 나에게 인사를 한다. 여행길 전주에서도 아는 사람을 만나는 기적이 일어난다. 여행지마다 나에게 도움을 주는 사람을 만난다. 우물 안의 개구리이었던 나는 별모양의 잔뿌리를 내리고 있다. 이제 나에게 추억이 찾아온다. 과거의 삶 속에서 지혜를 찾아내는 힘이 생기고 과거에게 진심으로 감사하는 마음이 생기고 그들의 변하지 않는 몸짓을 새기고 있다. 또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들이 있다. 어떤 상처는 아물었고 굳은 살이 되어 꽃을 피우기도 하고, 여전히 스라린 상처는 눈물처럼 아프지만 나는 단단하게 변하고 있다. 돌아갈 고향도 없고 부모님도 안계신데 나를 단단하게 만든 뿌리는 무엇인가? 시간과 사랑 속에서 나의 아이들이 자라고 주변에 생명들이 태어나 세상을 이어가고 내 곁에 있다. 슬픔에 빠져 있던 나에게 손을 내밀던 사람들이 주위에 있다. 여기가 어디인가는 중요하지 않다. 그들과 함께 마음을 나누고 있는 것이 중요하다. 같이 웃고 울고 먹고 자는 곳이 서울이다. 나의 희미해진 이름은 이렇게 되돌아왔다. 오히려 두툼해진 색깔을 입은 이름으로 더해지고 있다. 작은 나만의 조각은 누군가를 만나고 얼기설기 조각을 이루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