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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 트웨인의 '톰소여의 모험'

동화

by 하루달 Oct 05. 2021



브런치 글 이미지 1






어린 시절 본 ‘톰소여의 모험’ 만화영화 속 나무 위 오두막집을 동경했다. 나도 저기 살아봤으면 하는 생각에 만화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부모도 없이 외롭게 혼자 사는 허크의 오두막집은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자유의 공간이자 언제든지 놀러갈 수 있는 휴식의 공간인 듯 싶었다. 그곳은 해야 할 일이 있지도 않고 간섭이나 통제가 없는 곳이다. 커다란 나무 위에 누가 집을 지었는지 분명 위험해 보이고 화려하지 않은 곳, 더위와 추위를 막아주기에는 역부족인 그곳이 많은 사람들의 로망의 대상이 되는 까닭은 무엇일까? 고향과 같은 향수와 낭만을 불러 일으키는 이유는 무엇일까? 숨는 은밀한 장소는 눈에 띄지 않는 곳에 있어야 하는데 나무 위의 집은 먼 곳에서도 눈에 띈다. 시점을 달리하여 집 안에서 밖을 바라보면 먼 곳에 누가 있는지 보이는 전지적 시점의 장소이다. 시간대로 바람의 소리를 듣고 진정한 땀을 흘릴 수 있고 이름 모를 산새와 다람쥐와 친구가 될 수 있는 그 곳은 한 번도 그런 곳에서 자라지 못한 도시의 아이들이 유독 동경하는 듯하다. 최근 자기 집을 짓는 사람들의 모습을 다룬 ‘건축탐구 집(EBS)’이라는 프로그램에서 실제로 나무 위에 집을 지은 사람을 보았다. 어린 시절 품었던 동경의 대상을 어른이 되어 현실로 만든 사람이었다. 감탄이 절로 나오는 그곳, 우리에게 나무는 어떤 의미일까?


 나무는 조용하다. 살아있는지 죽어있는지 알 수가 없을 정도로 소리가 없다. 가끔 잎사귀들이 흔들리는 소리는 나무가 내는 소리가 아니라 그동안 지루했는지 장난꾸러기 바람이 내는 소리이다. “지이지위” 또한 나무 위에 앉은 새들이 적막을 깨는 소리이다. 그래도 나무는 살아있다. 영화 ‘아바타’의 ‘생명의 나무’는 끊임없이 전기 신호를 보낸다고 한다. 또 청진기를 나무에 대고 가만히 귀 기울이면 수액이 흐르는 소리도 들린다고 한다. 나무는 뿌리에서 물을 빨아들이고 쉴 틈 없이 수액을 나르고 있다. 잎에서는 햇빛과 물을 이용해 영양분을 만드느라 분주하다. 그러나 우리는 그 활기찬 소리를 들을 수 없다. 우리의 귀로 나무의 생명의 소리를 들었다면 우리는 나무를 어떻게 대했을까? 소리의 뜻을 알아내기 위해 귀 기울였을까? 나무는 조용하기 때문에 억울하다. 마치 생명이 없는 것 같이 보는 시선 때문에 아무 죄의식 없이 나무를 베고 꺾고 상처를 입힌다. 나무가 소리를 지르거나 움찔 움직였다면 우리는 그런 행동을 쉽게 하지 못했을 것이다. 조용하면 손해를 보는 세상이다. 그러나 우리는 조용한 나무에게 마음의 문을 연다. 아무 조건 없이 나무만 있으면 된다. 조용하게 우리의 말을 경청하는 나무는 고해성사 장소가 되고 마음의 평온을 얻게 된다. 둘이 나눈 비밀 이야기는 절대로 남의 귀에 흘러 들어갈 리 없다. 나무는 듬직하고 우직한 친구이자 따뜻한 어머니 품과 같은 존재이다. 조용하기 때문에 나무는 친구가 많다. 풀벌레는 밤새 나무 옆에서 떠들어대고 조용한 밤사냥이 이루어지는 세상 속 수많은 소리들이 오간다. 그 중 달과 친구를 하는 점이 가장 부럽다. 조용한 둘은 어떻게 마음을 나눌까 궁금하다. 나무는 슬픈 존재 작가 같다. 보이지 않는 독자와 소통하며 자신의 목소리를 조용히 내는 아름다운 고독한 작가 같다. 조용함은 나무의 힘이다. 세상의 시끄럽고 어지러운 말, 길을 잃고 떠도는 말, 남을 속이고 자신도 배반하는 말을 배우지 않은 나무는 자신만의 언어가 있을 것이다. 아무것도 남지 않은 겨울나무에게 관심을 돌리며 우리는 그 소리, 생명의 근원을 알 수 있다.


 나무는 색깔로 말을 건넨다. 추운 겨울이 지나고 푸릇 푸릇 연두색과 싱그러운 초록색으로 다시 살아있음을 보여주어 계절의 시간을 알려준다. 인간은 나무와 눈으로만 대화한다. 아름다운 꽃과 단풍에 매혹되고 달콤한 열매에 감사의 뜻을 전달한다. 짧은 눈요기와 식욕의 시간이 지나면 망각의 시간 속으로 빠져 다시 나무가 살아있다는 것을 잊는다. 잠시라도 죽어버린 것 같은 겨울나무에게 관심을 보인다면 우리는 생명의 근원으로 갈 수 있다. 영화 ‘아바타’의 ‘영혼의 나무’는 모든 생명의 근원이자 균형의 에너지를 이루고 있다. 에너지의 흐름, 만물의 균형을 이야기한다. 나무는 꼼꼼하고 고독한 수학자이다. 세상에 살아있는 생명과 죽어간 사물의 숫자를 세서 균형을 맞추려고 노력한다. 나무가 겨울에도 활동을 했다면 다시 생태계는 숫자의 균형이 이루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초식이 육식에게 잡아먹히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육식이 보다 강한 육식에게 잡아먹히는 것의 예의를 지키는 일은 수의 균형을 지키는 일일 뿐이다. 나무는 자신의 생명력을 이렇게 균형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누구의 편을 들지 않고 누구의 소망을 들어주지 않는 묵묵히 세상의 균형을 맞추는 평화주의 수학자이다.  


 사람은 은퇴를 하거나 건강이 좋지 않거나 휴식을 원할 때, 죽음이 다가올 때 나무가 둘러싸여 있는 시골에서 살고 싶어한다. 나무를 그리워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왜 바다의 향수로 돌아가지 않고 나무에게 돌아가려는 것일까? ‘허크’의 오두막이 나무 위가 아닌 다른 장소에 있는 집이었어도 나는 그곳을 동경했을까? 매끈한 몸통을 만져본다. 매끈하지도 거칠지도 않는 나무의 촉감이다. 비를 머금은 나뭇가지는 조금 매끈하다. 물기 젖은 눈물과 같다. 부드럽지도 단단하지도 않다. 초록잎을 들여다본다. 마음이 평온하고 깨끗해진다. 수없이 많은 잎들은 초록 별이 되어 하늘을 가득 메운다. 시원한 바람이 빰을 만지고 간다. 잘 지내라는 인사의 말을 보낸다. 웃음을 머금은 잎은 빛난다. 위로의 시간이 찾아온다. 말없이 나와 대화한다. 훅 하고 흙냄새가 코를 찌른다. 상큼한 잎이 먹고 싶어진다. 나무는 나에게 생명의 노래를 부르며 죽음이 다가옴을 감사하게 생각하게 한다. 고맙다는 인사를 전한다. 나무는 우리를 성찰의 시간으로 이끄는 한 권의 책이다. 인생의 지혜와 인내를 배울 수 있는 나무는 우리 곁에 서있다. 나무 한 그루를 집으로 가져온다. 아쉬움과 미안함에 물을 주고 햇빛과 달빛을 맞을 수 있는 장소에 둔다. 나의 집은 숲으로 변한다. ‘허크’의 작은 오두막집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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