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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달 Jan 09. 2024

밤은 길       고 괴롭습니다

프리다 칼로의 슬픔

앤솔러지 작품 "활자에 잠긴 시" 중 박연준의 "밤은 길고 괴롭습니다"를 읽었다.


앞표지 왼쪽 윗부분에 "활자에 잠긴 시" 로고가 있다. 프리다 칼로의 모습이 반만 나와 있고 제목 "길고"의 활자가 "길    고"로 멀리 떨어져 있다. 프리다 칼로의 마음을 대변하는 듯한 제목에 우선 눈길이 머문다. 표지의 모서리는 부드럽게 깎여있다. 표지 다음 장은 활자와 색깔이 같은 짙은 밤색이다. 면지는 강렬한 주황빛으로 의미심장하다. 이어 제목 다음의 면지에 "글쓰기는 내가 추는 춤이다" 문구가 홀로 있다.

뒤표지도 프리다 칼로의 모습이 반으로 잘려 있다. 앞표지와 똑같은 오른쪽 반의 모습이다. 정여울 작가의 추천글이 네모 안에 들어가 있다. 뒤표지를 넘기자 오른쪽 윗부분에 "장르와 경계 너머 시와 그림으로 쓴 산문"이라며 활자에 잠긴 시의 의미를 작은 글씨로 설명하고 있다. 마치 숨은 그림 찾기 같은 책이다. 작가 소개는 평범하지 않게 뒷장에 실려 있다.


박연준은 스물다섯에 등단해 "속눈썹이 지르는 비명" 시집을 냈고 "소란" 산문집을 냈다. 아직 시간이 많고 사랑하는 남자와 살고 있으며 해야 할 일이 많다는 구절로 자신을 소개한다.


미술 평론가가 쓴 산문이 아니고 지극히 주관적인 프라다 칼로에 대한 사랑이 넘치는 에세이다. 그림과 시는 닮은 점이 있기에 글을 썼다고 한다. 즉 그림 번역을 시도한다. 물감이 그림으로 변용되기 전의 화자의 마음과 다 표출하지 못한 메시지를 읽어보는 작업이다.


"그림과 시는 비와 눈처럼 닮았다

안개와 허기처럼, 그리움과 기차처럼 닮았다

밤과 다락처럼, 비밀과 그물처럼 닮았다

달과 고양이처럼

유령과 강물처럼

빨강과 파랑처럼 닮았다

그림과 시는 벽에 붙여놓을 수 있고

낱장으로 찢어 들고 다닐 수 있다

둘 다 사냥감을 종이 위에 '산 채로' 데려와야 한다"


  그녀의 삶을 우리는 안다. 몸의 고통, 사랑의 배신, 다시 몸의 고통으로 이어지는 그녀의 가련한 인생에 대해 그림을 통해 그녀가 말하려는 것은 무엇일까. 그녀는 살기 위해 사랑을 했고 사랑으로 고통을 받을 때는 그림을 그렸다. 작가는 자신 삶의 진솔한 이야기도 들려주면서 글을 쓴다는 것, 그림을 그린다는 것의 공통점을 통해 스스로 깨닫기 시작한다. 탄생과 죽음은 같이 있고 사랑과 고통도 함께 존재한다는 것을.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어렵고 외롭고 고통스러운 일이다. 그녀만 사랑이 고통스럽고 힘든 것은 아니다. 우리는 그것을 알기에 프리다 칼로의 그림을 좋아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저 연민과 동정심으로, 경외감으로 그녀를 대하는 것이 아니다. 작가가 시인이기에 아름답고 통찰력 넘치는 문장이 많다. 무겁게 사랑과 예술을 이야기하다가 우리가 누리는 평범한 일상의 이야기로 리듬을 바꾼다. 그리고 사랑 위에 있는 예술을 말한다. 사랑에 비하면 예술은 강하다. 그래서 그녀는 영원히 살아있다.  


프리다 칼로의 그림을 좋아하는데 앞으로는 다른 감각으로 감상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녀가 우리에게 말하려는 목소리에 좀 더 귀를 기울인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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