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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달 Jan 08. 2024

"싯다르타"를 읽고

부모의 역할을 생각하다

태국 여행을 하는 동안 내내 읽고 싶던 책이다. 불교에 대한 책을 서양인이 썼다는 사실 또한 흥미롭다.


인도 사성 가운데 가장 높은 계층 바라문의 아들 싯다르타는 요즘 말로 엄친아이다. 뛰어난 외모와 두뇌와 인성까지 고루 갖춘 싯다르타는 내면에 차츰 불만의 싹이 튼다. 그가 공부하고 도를 닦는 참회는 현자나 철학자의 것이지 나의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는 어렵게 아버지의 허락을 구한 후 머리를 깎고 떠돌아다니는 탁발승, 사문이 된다. 그의 절친 고빈다도 함께 한다. 사문들과 함께 지내는 그들은 모든 것을 비우는 일을 한다. 자신의 감각을 죽이고 자신의 기억을 죽였다. 그러나 싯다르타는 고타마라는 세존, 부처를 만나도 처음 가졌던 생각과 다름이 없다. 자신에게서 대답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거짓으로 안식에 이르거나 해탈을 얻을 뿐 자아는 남을까 두렵다. 친구 고빈다는 세존을 따라 제자의 길을 걷지만 싯다르타는 홀로 길을 떠난다. 자아를 부수어버리고 껍질을 벗겨내는 일은 나 자신을 찾을 수 없는 일이라 자신을 똑바로 바라보기로 한다. 그는 세속의 길에 빠진다. 기생 카말라에게서 사랑을 배우고 카마스와미에게서 상업을 배워 부와 권력을 가지게 되는데 20년 동안 쾌락과 탐욕과 태만에 빠진 자신을 나중에 꿈을 통해 각성한다. 철저한 구토와 환멸을 느낀 그는 강에서 자살을 시도한다. 그때 완성을 뜻하는 성스러운 옴이 들린다. 그리고 자신의 행위가 어리석은 짓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깊은 잠에 빠진 그를 지켜준 이는 오랜 친구 고빈다였다. 부자의 복장을 하고 있는 싯다르타를 알아보지 못하였으나 그는 알아보았다. 자신도 구도의 길을 가는 중이라고 말하며 과거에 자신을 강을 건너게 해 준 뱃사공, 바주데바를 찾아가 그와 함께 산다. 그리고 바주데바처럼 강의 소리에 귀 기울인다. 싯다르타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새롭게 시작한다. 방황도 타락도 모두 자신의 것임을 알게 되고 그 과거 때문에 현재의 내가 진실을 발견하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시간은 존재하지 않으며 모든 것은 현존하는 것, 타락과 탐욕은 인간의 본성이라는 것, 사유와 감각, 선과 악은 하나라는 것, 수천의 소리가 어우러진 노래는 완성이라는 옴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오랜만에 찾아온 친구 고빈다는 그에게서 세존의 얼굴을 발견한다. 그리고 그에게 절을 한다.


우리는 세속의 세상에 살고 있다. 삶의 목표를 철학적인 해탈에 두고 살지는 않는다. 그러나 싯다르타는 세속이 나쁘고 해탈의 경지에 오르는 것은 옳고 위대한 것이라 말하지 않는다. 해탈과 세속은 같이 존재하는 하나라는 단일성을 보여 준다. 마치 모든 것을 품고 있는 강처럼. 싯다르타는 현자와 스승에게서 지혜를 얻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말은 왜곡되어 진실을 전달할 수 없기 때문에 스스로 깨달아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철학을 가장 위대한 사상가에게서 얻으려 하고, 지혜를 담은 책을 읽어 자신의 목표로 삼는다. 철학은 철저히 자신의 것이어야 한다.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싯다르타의 아들에 대한 사랑이다. 조금 평범한 사람들은 지나친 돈과 권력에 대한 탐욕이나 도박이나 육체적인 욕망에 휩쓸리지는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자식에 대한 사랑은 지나친 집착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싯다르타도 부유한 생활을 하다가 만난 아들이 생각처럼 자신의 말을 듣지 않자 고뇌에 빠진다. 그리고 오두막을 벗어나 도망간 아들을 찾아 떠난다. 자신이 젊었을 때 한 타락을 할 것을 뻔히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자 바주데바는 말한다. 당신도 그런 타락을 통해, 경험을 통해 진실을 얻게 되지 않았느냐고. 아들도 자신의 길을 가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과거 사문이 되겠다고 집을 나설 때의 아버지의 마음을 헤아린다. 아버지도 그를 사랑했으나 막을 수가 없었다. 나는 자식에 대한 맹목적인 사랑도 일종의 번뇌, 슬픔의 원천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성인이 되어도 길을 찾아주고 실패를 할까 두려워하는 부모의 사랑에 대해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실패를 나의 것으로 받아들이는 자세, 타인의 실수도 그 자체로만 받아들이는 용기에 대해서도 생각해 본다.


" 나에게는 이 세상을 사랑할 수 있는 것, 이 세상을 업신여기지 않는 것, 이 세상과 나를 미워하지 않는 것, 이 세상과 나와 모든 존재를 사랑과 경탄하는 마음과 외경심을 가지고 바라볼 수 있는 것, 오직 이것만이 중요할 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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