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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달 Jan 17. 2024

태국은 처음이야

grab, grab, grab

태국의 택시는 무섭다. 미터당 요금을 내지 않고 400바트인지 500바트인지 흥정을 해야 한다. 오늘은 드디어 <grab> 앱을 이용했다. 카카오택시처럼 여기 위치를 알려주고 도착지를 지정한 후 기다리면 된다. 한국처럼 빠르지도 정확하지도 않다. 따라서 조금 사람이 많은 곳으로 가서 기다렸다. 초록색, 핑크색 태국 택시가 아닌 자가용이 다가온다. 도요타 8881, 번호를 확인해야 한다.


1980년대 한국, 자가용을 가진 사람들이 많지 않은 시대이다. 나는 초등학생이었다. 우리는 5명 가족, 따라서 택시의 최대 인원 4명을 초과하는 숫자였다. 택시를 잡기 위해서는 동생과 나는 나무 뒤에 숨어 존재를 감추어야 했다. 5명이 쪼르르 서있으면 택시는 우리 앞에 오지도 않는다. 아빠는 택시를 향해 목적지를 목청껏 외친다. 꼬맹이 오빠도 손을 열심히 흔든다. 택시는 가는 길에 단어만 들으려 잠깐 차를 세우는 듯하다가 자신이 원하는 동네가 아닌가 그냥 지나친다. 과장을 조금 해서 백 여대의 택시를 보낸 후 아빠는 비장의 카드를 내세운다. "따불!"

우와~ 그래도 목적지가 맞지 않으면 택시는 지나간다. 완전 택시가 갑인 시대이다. 지금의 태국처럼. 너무 지친다. 어린 나이의 우리는 징징 댄다. 짠순이 엄마가 아빠에게 눈짓을 한다. 아빠는 수많은 택시를 잡는 사람들 사이에서 독보적인 존재라도 되는 듯 외친다. "따따불!!"

와우~ 드디어 택시가 섰다. 동생과 나는 나무 뒤에서 택시가 완전하게 정차한 것을 본 후 즉, 오빠가 뒷자리에 오른쪽 다리를 넣는 순간 잽싸게 달려 나간다. 전에 5명인 걸 알고 화를 내며 그냥 가버린 택시가 있었기 때문이다. 아빠는 빛의 속도로 운전자 옆 좌석에 동생을 안고 탄다. 운전사가 볼멘소리를 한다. 어, 사람이 또 있었어요? 이거 곤란한데. 네~ 제가 자식이 세 명입니다. 그래서 따따불 드리잖아요. 동생은 갑자기 죄인이 된 것 같이 소심해진다. 자신은 태어나지 말았어야 한다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한다. 그놈의 택시 때문에. 어린 나는 나중에 최초의 여성 택시 운전사가 되어 우리 식구 5명이 한 자리씩 앉아 눈치 안 보고 편안하게 가는, 장래희망을 결심한다.


나의 태국에 대한 상식은 아주 간단하다. "왕과 나" 영화에서 본 것처럼 왕이 외국문물을 받아들이기 위해 애를 썼다는 것, 그리고 영국과 프랑스 사이 실리 외교를 해서 식민지가 되지 않았다는 것, 일 년 내내 여름이어서 먹거리가 풍족하다는 것, 쌀농사와 물고기 양식을 같이 한다는 것. 그리고 닉쿤의 모국이라는 것. 그리고 우리나라보다 잘 살지 않는 나라에 대한 편견도 있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타다"처럼 "grab"이 있는 것을 보고 조금 놀랐다. 우리나라는 택시 운전사들의 강력한 반대 때문에 '타다'가 자리를 못 잡고 있다. 그런데 태국은 외국인도 'grab'을 이용하지 않나. 8차선도 아닌 좁은 도로에는 자가용과 오토바이를 개조한 툭툭이, 오토바이, 택시가 있다. 그들은 자신의 일자리를 넘보는 서로를 향해 으르렁거리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았다. 따라서 우리는 취향대로 선택을 할 수 있다. 재미를 위해 툭툭이를 타기도 하고, 합리적인 소비를 하고 싶어 'grab'을 타기도 하고. 그러다 보면 태국의 택시도 반성을 하지 않을까. 우리의 택시가 1980년대보다 친절해진 것처럼. 태국은 우리보다 무언가를 grab 한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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