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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달 Jan 21. 2024

태국은 처음이야

나의 백팔번뇌는

왓 포 사원에는 부처님이 누워있다. 아주 거대한 모습으로, 아주 편한 자세로, 온통 금으로 덮인 럭셔리한 모습으로.  길이가 46 미터, 높이가 15 미터이다.


그리고 인상적인 것은 부처님 발바닥에 백팔 번뇌의 그림이 새겨져 있고 옆에는 108개의 항아리가 놓여 있어 동전 108개를 하나씩 넣어야 하는 것이다. 언제 108개를 다 넣나 싶다. 우선 나는 번뇌보다는 지인들의 행복을 빌었다. 가족 한 명씩, 친척 한 명씩, 대학원 샘들 한 명씩, 친구들 한 명씩, 동네 지인들 한 명씩, 딸 친구들 한 명씩, 아들 친구들 한 명씩...  이제는 소원을 빌었다. 해치의 무병장수, 딸아이의 합격, 아들의 회사 성공, 우리 둘의 건강, 안정된 삶, 작가의 꿈... 더 없다. 이제야 번뇌를 생각해 본다. 건강에 대한 두려움, 미래에 대한 두려움, 부모님의 그리움, 고독에 대한 두려움, 죽음... 결국 나에게 가장 큰 번뇌는 두려움이다. 소심한 나는 대학원 진학도 엄청 망설이고 두려워했다. 내가 할 수 있을까. 어렵지 않을까. 괜한 일 하는 거 아니야. 요즘은 건강이 조금만 안 좋으면 죽음에 대한 생각도 많이 한다. 그래서 하루하루를 소중하게 살 수 있긴 하지만 나는 죽음도 많이 두렵다. 일을 그만두고 나에게 어떤 미래가 올 지도 두렵다. 작가로서 성공하는 것은 많이 힘든 일이다. 연예인이 되는 것과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럼 나는 상처를 받지 않을까. 괜한 일을 하는 것 아닌가 두려움이 또 앞선다. 나에게는 두려움 극복이 가장 어려운 숙제이다. 사랑받지 못할까 봐, 인정받지 못할까 봐 혼자일까 고통스러울까 두려워한다. 두려움과 그리움은 닮았다. 보이지도 않고 만질 수도 없고 아련하게 다가오고 아프다. 글쓰기가 나에게 두려움을 보이게 만들었다. 글로 두려움을 인지하고 스며들게 하고 실연도 하게 만든다. 그러다가 내가 된다. 불완전한 나.  그럴 수밖에 없다.  그래서 나는 태국에 와서도 부처님을 붙잡고 호소하며 동전을 던지고 한국에 가서는 성당에서 성경을 읽는다. 그래도 나에게는 아주 정직하고 착한 글이 옆에 있다는 사실이 감사하다.


“이제는 디에고를 계속 사랑하면서 동시에 진지하게 원숭이를 그리기 시작하려 해”- 프리다 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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