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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카이콩콩>을 읽고

아무도 모르는 일이 아무도 모르게 일어난다

by 하루달

나와 형이 사는 방의 창문을 비추는 가로등, 우리의 정수리를 노랗게 만든 가로등의 불빛, 그는 성실하게 꺼졌다, 껴졌다를 반복한다. 그가 꺼졌다 켜지는 순간이 세계가 재빨리 눈을 감았다 뜨는 시간이다. 그 짧은 순간 지구에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 아무도 모르게 일어난다. 지구가 도는 원주와 가로등 원의 너비 사이에는 차이가 있다. 그 안에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 나와 형과 아버지이다.

나는 아버지에게 고추를 보여주고 스카이콩콩을 선물로 받았다. 무언가를 알 수 없을 때, 너무나 기쁠 때 나는 스카이콩콩을 탔다. 수치심은 날아갔다. 세계의 소란스러움을 등지고 가로등 아래서 홀로 스카이콩콩을 타는 나는 고독하고 우아했다. 어떤 정신이 들어 있었다. 콩 하고 뛰어오르면 보이는 것이 사라지고 다시 콩 하고 뛰어오르면 나타나는 언뜻함을 좋아했다. 그때 가로등이 나에게 깜빡 윙크를 해준다.

형은 과학경시대회에서 날린 고무동력기가 우연히 늦게 고꾸라진 덕분에 탄 상 때문에 과학동아를 읽으며 과학자가 되려고 한다. 전파상을 하는 아버지는 형은 공군사관학교를 가야 한다고 들뜨고 형이 안경을 쓴 것은 텔레비전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없앤다. 둘은 아버지 전파상의 텔레비전 화면을 망치로 깨고 나만 자수를 해서 혼난다. 형은 자신만 믿으라며 라디오를 고치기 시작하지만 잘 되지 않는다.

대학에서 천문학을 배우는 사촌형이 잠시 들렀는데 형은 마치 나를 가르치려 하지 말라는 태도를 취하며 피한다. 나는 사촌형의 말이 이해할 수 없어 울렁이고 두근거린다. 어려운 말을 하는 것이 어른 대우를 해 주는 것 같아 좋아한다.

몇 년이 지나 형은 대학교 합격자 발표날 집을 나갔다. 집 앞 가로등의 전구도 나갔다. 며칠 후 형이 돌아올 것 같다며 가로등을 고치러 사다리를 타고 올라간 아버지는 손이 너무 시리다며 금방 내려오고 형은 그사이 집에서 라면을 먹고 있었다. 형은 바흐 테이프를 라디오에 넣어 틀어준다. 라디오를 고친 것이다. 가로등이 깜빡 거리는 순간은 아무도 모르는 일들이 아무도 모르게 일어나는 시간이다. 가로등은 뭔가 눈감아주기 위해 저기 서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사실을 고백하자면 스카이콩콩을 탈 때 나는 우아하지 않았다. 콩콩콩콩 거려야 해서 경박하고 우스웠다. 그것은 살면서 누구나 내는 소음이다. 그래도 뜻밖에 아름다울 수도 있다.






'나'가 아버지와 형을 바라보는 시점이다. 아이 시점은 언제나 재미가 있다. 동화가 아닌 소설 속 아이 시점은 재미 외에 무언가를 담아야 한다. 어쩌면 더 어려운 시점이다. 어른은 아니지만 아이도 아닌 중간 지점에서 이야기를 한다. 동심을 가지고 있는 아이가 시간이 흐를수록 왠지 철이 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남을 통해 성장하는 성장 소설이다.


소재는 두 개다. 스카이콩콩과 집 앞에 있는 가로등인 "그"이다. 그는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 가로등이 깜박거리는 순간에 기적이 일어난다. 기적은 그렇게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일어나는 놀라운 일이다. 불이 갑자기 켜지는 순간을 떠올려 보면 더욱더 그 황홀감이나 경외감에 쉽게 공감할 수 있다. 세계 사람들은 지구의 자전과 함께 동일한 시간 속에서 살아간다. 그렇지 못한 사람들을 그것과 가로등 원주의 사이에서 살아간다는 표현은 정말 놀랍다. 소외된 사람들이 살아가는 틈에는 어떤 일이 벌어질까. 슬프고 어려운 일만 있을까. 누구나 지구의 자전과 같은 시간 속에서 살지 않을 수도 있다. 그 시간에는 아무도 모르는 성장이 있다. 작은 싹에서 잎이 자라듯 우리도 조금씩 성장한다. 시간은 차곡차곡 쌓인다. 형은 집을 나갔지만 다시 돌아왔고 라디오도 작동을 한다.


소설 속에서 비유를 잘 표현하는 김애란 작가는 스카이콩콩이라는 소재로 가난하지만 따뜻한 마음을 가진 가족애를 보여준다. 소설의 전형적인 갈등이 없다. 사촌형의 등장이 유일한 변환점이다. 콩콩콩콩 소리가 들리고 뛰는 모습이 떠오른다. 그렇게 멋지고 우아한 장난감이 아니었지만 동경의 대상이었던 스카이콩콩을 타는 아이는 자신의 감정을 스카이콩콩에 태운다. 이름에도 스카이가 들어가듯 하늘을 향해 뛰어오른다. 그러나 뛰어오른 높이는 그다지 높지 않다. 그것이 현실이다. 높이 도약하기는 어려운 현실, 그 속에 가끔 기적이 일어나고 눈감아주는 가로등과 같은 시간이 있어 다행이다. 현실은 늘 우아하지 않다. 그러나 현실은 어쩌면 기적과 같이 원래 아름다운 세상이었는지도 모른다. "우리 몸에서 나온 원자가 다른 별들을 거쳐갔다면 분명 다른 별에 사는 존재의 몸에서 나온 원자도 한번 이상은 여기에 닿았을 거야" 대사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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