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부는 날은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피로에 지친 여자의 미간처럼 좁은 등압선을 가진 바람이 많이 부는 밤이다. 뭐라도 묻지 않으면 누군가 굉장히 어려운 질문을 할 것 같다.
나는 아버지와 복집에서 말없이 복어를 먹었다. 복어에는 독이 있어 오늘 밤 자면 죽는다고 아버지는 말한다. 아버지도 어릴 때 이걸 먹고 견뎌서 살았다고 한다.
나는 아버지에게 머리를 잘라 달라고 하고 나는 어떻게 태어났어요? 질문을 한다. 아버지는 엄마를 처음 만난 해수욕장 이야기를 들려준다. 갑자기 두드러기가 나서 울고 있는 엄마에게 감자로 마사지를 해서 낫게 했고 그렇게 아버지 친구들과 엄마 친구들은 같이 어울리게 되었다. 친구들이 아버지를 모래 위에 뉘어 모래로 덮은 뒤 아버지 아랫도리 근처에 폭죽을 꽂아 하늘로 불꽃이 터져 나왔고 그때 나는 태어났다고 말한다. 그리고 나머지 형제들은 스칸디나비아반도, 스톡홀름,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있다고 한다.
진짜 나는 어떻게 태어났어요 다시 질문을 한다. 엄마 집 근처를 서성이다 엄마의 오빠에게 편지를 들켜 퇴짜를 맞고 돌아가는 길에 엄마가 달려 나왔다. 아버지는 급하게 비누를 살짝 묻혀 입을 헹구었고 비누 때문에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팠지만 엄마와 키스를 했고 비눗방울 속에서 나는 태어났다고 말한다.
나는 아버지의 이야기를 들으며 졸음이 밀려와 고개를 떨군다.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기 때문에 나는 스스로 이야기하려 한다. 아버지는 나를 아랫목에 누인다.
바람이 심하게 부는 날, 우리는 흔히 귀신 소리 같다며 무서워한다. 그 무서움을 견디기 위해 우리는 이야기를 한다.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거나 더 스릴을 느끼기 위해 무서운 귀신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프랑켄슈타인 이야기도 무시무시한 날씨에 이렇게 무서운 이야기를 하는 중에 만들어낸 이야기라고 한다.) 바람이 불어서 이야기를 시작해야 한다는 소설의 동기는 참 참신하다. 바람 부는 날도 소재가 될 수 있구나 느꼈다.
제석, 섣달 그믐날 밤에도 잠을 자면 눈썹이 하얗게 센다며 잠을 못 자게 만들었다. 이날도 우리는 잠을 쫓기 위해 이야기를 하거나 놀이를 한다. 지쳐서 누워 있다가 깜빡 잠이 들면 아침에 자신의 나약함에 화가 나기도 하지만 아무 일도 없음에 감사한다. 비슷한 상황이다. 복어를 먹었기 때문에 잠을 자면 안 된다. 나는 잠을 자면 죽기 때문에 안 자기 위해 애를 쓴다. 머리를 깎아달라고 애교를 부리기도 한다.
이야기들은 이런 상황에서 만들어진 것 같다. 무언가 지루함을, 두려움을 견디기 위해 스토리텔링은 만들어졌다. 그중 연애 이야기만큼 재미있는 이야기는 없다. 나는 엄마와 아빠가 어떻게 사랑을 하게 되었는지가 궁금하다. 아버지는 낭만적이게 대답을 한다. 불꽃에서, 비눗방울에서 나는 만들어졌다. 나는 거짓말이라며 진짜 이야기를 해달라고 자꾸 조른다. 수줍은 청춘 남녀였던 아버지와 어머니의 사랑은 풋풋하다. 그리고 비눗방울처럼 맑고 불꽃처럼 뜨겁다. 아이에게 들려주는 부모의 연애 이야기가 이렇게 낭만적일 수는 없을 것 같다. 이야기는 다시 나에게로 간다. 나는 다시 이야기를 만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