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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잠 못 드는 이유가 있다>를 읽고

인생은 억울하다

by 하루달

제목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그녀는 잠을 잘 들지 못한다. 잠을 자려고 갖은 노력을 다 해도 아주 사소한, 하찮은, 지나간 것들이 생각이 나고 새벽 세 시쯤 잠들고 몇 시간밖에 잠을 자지 못한다. 잠이 부족하니 회사에서 실수가 잦고 그 일을 또 밤에 생각하느라 잠을 이루지 못하고 같은 일상이 반복된다. 그녀는 거절을 두려워하고 오해에 쩔쩔매는 사람이다. 소위 예민한 성격이기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하는 것인가. 요즘 말로 이불킥을 하는 것이다. 그녀는 화장을 꼼꼼히 한다. 스킨, 로션, 아스트린젠트, 수분크림, 선크림, 메이크업베이스, 파운데이션 순을 정확히 지킨다. 과하지도 않고 궁색하지도 않고 수수하다. 모든 일은 이렇게 세분화되어 있다. 우리는 그것을 다 지키며 살아야 한다. 그런데도 사치스럽지 않고 딱 평균이 되는 삶이다. 잠을 잘 이룰 수 없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다음 날 할 일을 생각하느라, 미래를 걱정하느라 책임, 의무, 쓸모, 효용을 생각하느라 잠을 이루지 못한다. 사람들은 가끔 중요한 일을 앞두면 잠을 잘 못 잔다. 그런데 문제는 매일 중요한 일을 앞둔 사람과도 같은 일상이라는 것이 문제인 것이다.


어느 날 아버지가 갑자기 그녀의 집에 왔다. 잠시 머물러도 좋냐고 묻는다. 거절을 못하는 그녀는 당연히 있어도 좋다고 말한다. 아버지는 큰 요에서 자고 그녀는 작은 요에서 잔다. 새벽에 쿵 소리가 난다. 텔레비전에서 나는 소리다. 아버지는 늘 텔레비전을 틀어 놓는다. 그 소리에 더 잠을 못 자게 되고 그녀는 점점 예민해진다. 필사적으로 자려는 그녀와 필사적으로 텔레비전을 지키는 아버지이다. 그녀는 텔레비전 전선을 끊었다. 과거 아버지가 가족들과 연을 끊은 것처럼 쉬웠다. 그런데 텔레비전 소리가 없는 고요와 정막은 둘을 더 어색하게 만들었다. 그녀는 이불속에서 생각한다. '아버지는 왜 왔을까. 전선을 끊은 것을 아버지는 어떻게 생각할까. 아버지에게 용돈을 드릴까.' 그녀는 텔레비전 위에 십만 원을 두고 나왔다. 퇴근하고 돌아오니 아버지는 없었다. 그녀는 또 이불속에서 생각한다. '아버지가 용돈을 어떻게 받아들인 것일까, 나가라는 메시지로 받아들인 것인가 나는 그런 의도가 아닌데 나는 또 오해를 산 것인가.' 그러다 아버지가 눈이 오는 날 친구들과 눈썰매장에 가지 못한 그녀를 삽에 올리고 끝없이 달리던 모습을 꿈꾼다. 아버지가 땀을 뻘뻘 흘리며 그녀를 돌리고 그녀도 이불속에서 식은땀을 듬뿍 흘리고 있다.







불면증, 현대인들은 바쁘게 살아가는 데도 아이러니하게 불면증에 걸린 사람들이 많다. 온종일 운동을 하거나 몸을 혹사하고, 따뜻한 목욕을 한 후 따뜻한 우유를 마시고 자리에 누워도 잠을 이루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같이 성경공부하는 엘리자벳 자매님도 불면증이다. 약을 먹어야 간신히 잔다고 한다. 잠을 못 자는 고통 얼마나 괴로운지 말한다. 시어머니도 지금 요양원 병원에 계신다. 잠을 거의 안 주무신다고 한다. 체력도 대단하다. 어떻게 버틸 수 있을까. 나는 시어머니를 보고 초식동물과 비슷하다고 느꼈다. 초식동물은 깊은 잠을 못 잔다. 언제든지 공격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목숨이 걸린 문제이니 본능적으로 쪽잠을 자는 것으로 단련이 되었을 것이다. 어머니도 불안한 것이다. 언제 집에 가는지 물어보는데 안타깝다. 조금 상황이 나아지면 집집마다 돌아가면서 모시기로 했는데 어머니가 아직 대소변을 가리지 못한다. 아기가 되셨다. 우리가 올까 기다리느라 잠을 못 자고, 집에 갈 수 있을까 희망을 걸고 잠을 못 자고, 낯선 환경이 싫어서 잠을 못 자는 것이다. 눈물이 난다. 우리는 왜 기억을 잃을까. 소설 속 그녀처럼 꼬리에 꼬리를 물던 그 많던 생각은 어디로 간 것일까. 누구는 생각이 너무 많아 걱정이고 누구는 기억을 잃어버려 걱정이다. 인생은 참 억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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