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타자일 수도
나는 내가 어떤 인간인가 자주 생각하는 사람이다.
나는 당신이 어떤 인간인가에 대해서도 자주 생각하는 사람이다.
나는 말을 줍고 다니는 사람이다. 내가 어떤 인간인가 말해주는 사람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사람이다.
나는 하루에 한 가지 일밖에 못하는 사람이다.
나는 아직 잔뜩 남겨진 자이다.
나는 내가 어떤 인간인가 자주 질문하는 사람이다.
나는 당신이 어떤 인간인가에 대해서도 자주 질문하는 사람이다.
나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설명하는 사람이다. 나는 나의 각주이다.
나는 사려 깊은 사람이다.
지하철에서 나를 아는 이지혜를 만난다. 나는 그녀를 기억하지 못한다. 그녀는 동창생 지은이, 명화, 선미, 은미가 요즘 어떻게 지내는지 이야기를 하지만 그들이 기억나지 않는다. 아는 척하며 이야기를 건성으로 들으며 옆에 앉은 사관생도가 앵벌이 사내에게 돈을 주는지 안 주는지 신경을 쓴다. 그녀는 가을 동창회에서 만나자고 인사하며 내렸다. 나는 이내 울적해졌다. 유쾌하지 않은 학창 시절이었다. 이지혜는 나의 비밀을 친구들에게 퍼뜨려 나는 혼자가 되어야 했다. 혼자라는 것보다 내가 혼자인 걸 모두 보고 있다는 데 고통은 있다. 나는 지금 당신에게 가고 있다. 당신과 헤어지고 나는 자꾸만 내가 누군지 잊어갔다.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갔다. 그러나 마지막 역에 내린 후 당신을 만나러 가지 못했다.
나는 내가 어떤 인간인가 자주 상상한다.
나는 당신이 어떤 인간인가에 대해서도 자주 상상한다.
나는 언제나 조금씩 잘린 모습을 한 사람이다.
다시 처음부터 말하는 사람이다.
나는 영원한 화자 맞다. 나는 늘 나에 대해서 말한다.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이름을 말한다. 이름이 나의 전부인가. 그럴 리가. 더 설명을 해야 한다. 나이, 사는 곳, 전공, 하는 일, 가족수 등등. 이것은 나를 말하는 전부인가. 나의 감정, 무엇을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 무엇에 꽂혔는지, 무슨 음악을 듣는지, 무슨 책을 읽는지 말한다. 이것은 나의 전부인가. 어렵다. 나를 소개하는 것이 가장 어렵다. 그럼 이 정도의 나에 대한 정보를 알고 있는, 늘 나를 지켜보는 식구들은 나의 모든 것을 안다고 생각하나, 아니다. 나는 비밀이 많다. 숨기고 싶은 약점은 숨기고 잘못한 일도 포장한다. 나를 아는 것은 오로지 나일뿐이다. 그런가. 아닌 것 같다. 나도 나를 잘 모르겠다. 20대의 나와 지금의 나는 다르다. 30대에 내가 무슨 행동을 했는지, 어떤 감정인지 기억에 남지 않기도 한다. 그때 좋아한 걸 지금은 안 좋아한다. 수시로 변하는 나의 마음만이 나의 본질인가. 나는 누구인가.
그런 나를 누군가 안다고 하면 그건 정말 황당한 일이다. 나도 나를 모르는데 네가 나를 안다고, 어떻게? 내가 그런 인간이라고? 무슨 근거로? 확실해? 그러나 우리는 이런 아이러니를 당당히 말하며 이제껏 살고 있다. 나는 영원한 화자 맞다. 남에 대해서 이러쿵저러쿵 확실하다고 설명하고 묘사한다. 남편에게, 자식에게, 친구에게 당신을 모두 아는 것처럼 말한다. 지금껏 나는 나의 감정을 그대로 쏟았다. 김애란 작가는 이런 감정을 소설로 만들었다. 아주 사소한 감정들, 비겁이라는 감정을 "나는 내가 경멸하는 사람에게 고맙다고 말했던 사람"이라고. 질투라는 감정을 "나는 스스로 조금은 특별하다고 생각하는 사람. 그래서 내 앞사람이나 옆사람도 스스로를 특별하다고 생각할지 모른다는 사실에 불쾌해지는 사람이다"라고. 그렇게 철학적인 요소가 소설이 되었다.
그리고 소설적 사건이 있다. 학창 시절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진 타자를 지하철에서 만난다. 그 타자가 말하는 여러 타자들이 생각나지 않는다. 나를 아는데 나는 모르는 타자도 있다. 문득 타자에 대한 기억이 떠오른다. 불쾌한 기분이 든다. 그리고 헤어진 당신을 만나러 가는 나는 당신을 찾아가지 않는다. 당신과 헤어져서 조금씩 나를 잃고 있다. 타자에 의해 내가 만들어지기도 한다. 어쩌면 타자에 의한 부분이 더 많은 것 같다.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나는 다시 영원한 화자로 돌아가 나에 대한 설명을 늘어놓는다. 거울을 보아도 내가 낯설다. 거울 속의 나는 타자일 수도 있다. 그래서 나는 나를 늘 생각하고 질문하고 상상해야 하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