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노크하지 않는 집>을 읽고

이름을 아는가

by 하루달

이 집에는 서로 얼굴을 모르는 다섯 여자가 산다. 어떤 상황일까.


고시텔이나 원룸 오피스텔, 그런 종류의 건물에서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라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이름은 몰라도 얼굴을 모르기는 쉽지 않다. 한 층에 화장실이 하나이고 세탁실도 하나라서 오다가다 마주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섯 여자는 누군가 화장실에서 나온 기척 소리와 방 안에 들어가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린 후 나온다. 소리가 나지 않는 이상 절대 먼저 문을 열지 않는다. 출근 시간, 퇴근 시간, 생활 패턴이 모두 다를 수는 있다. 그러나 공동 사용실까지 이렇게 철저하게 약속이나 한 듯이 서로의 얼굴을 보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너무나 현대인의 특징을 잘 드러내는 행동이 아닐 수 없다. 누군가에게 피해를 입히기도 싫고 피해를 받기도 싫은 태도. 어차피 잠시 머무는 공간이니 얼굴조차 알고 싶지 않을 정도의 타인에 대한 피로감과 무관심. 혹은 나를 알리고 싶지 않은 부끄러운 위축된 마음. 어쩌다 얼굴을 보는 순간 화들짝 놀라 반쪽 혹은 삼분의 일 얼굴만 보게 된다. 나는 얼굴을 모른 채 방 앞에 놓인 슬리퍼, 신발, 건조대 위에 놓인 옷 등으로 2호, 3호, 4호, 5호의 성격을 짐작하고 선입견으로 상상한다. 그들은 할 말은 포스트잇으로 한다. 나에게는 두 개의 포스트잇이 붙였다. "방에서 불을 사용하는 사람은 조심합시다. 우리 모두를 위해", "나갈 때 꼭 문을 잠그고 나갑시다. 신발 도둑맞은 사람이 있습니다" 글조차 사무적이고 딱딱하다.


그러다 얼굴 없는 사건도 일어난다. 건조대에 올려놓은 속옷이 없어지거나 다섯 목욕 바구니 안의 치약을 쓴다거나 신발이 없어지기도 한다. 나의 속옷 몇 개가 없어졌다. 일단 묵인하기로 했다. 다음 날 신발이 없어졌다. 나는 서로 얼굴을 보고 말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나는 물건을 밖에 내놓지 않는다. 어느 날 방 한가운데 잃어버린 신발이 놓여있다. 그렇담 범인은 이 안에 있는 것이다. 함부로 나의 방 문을 열다니 화가 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열쇠공을 불러 5호 방 문을 연다. 자신의 속옷을 찾기 위해서. 그러다 5호, 4호, 3호, 2호 모두 나의 열쇠로 열 수 있는 구조임을 알게 된다. 그리고 5호, 4호, 3호, 2호, 1호 모두 똑같은 방의 구조에 놀란다.


"방 안에는 세 칸짜리 분홍색 서랍장 하나, 오른쪽 모서리 귀가 닳은 한 칸짜리 금성냉장고 하나. 그리고 생리 중에 흘린 피가 까맣게 마른 아이보리색 요 한 채와 장미가 무더기로 그려진 이불이 있다. 세 칸짜리 서랍장 중 한 칸은 양말이나 티셔츠가 기어 나와 완전히 닫히지 않은 채 이가 물려 있고 냉장고 옆 책장에는 얼마 안 되는 음반과 책이 있다. 음반 위로 서태지, 김현철, 이승철, 너바나, 비틀스 등의 이름이 보인다. 방문 쪽 콘센트에 휴대전화 충전기가 노란불을 깜빡이고 방바닥 군데군데 담배빵 자국이 나 있다" 이 구절이 여러 번 반복된다.

나는 그녀들이 돌아오는 저녁 시간이 되자 안절부절못한다. 네 명의 여자가 모두 나에게 달려올 것 같다. 그러나 나는 그 후를 기억하지 못한다. 나는 화장실에 "미안해요, 무서워서 그랬습니다" 포스트잇을 붙인 기억만 난다.








아파트라고 다르지 않다. 엘리베이터에서 자주 만나는 사람들 즉 나와 생활 패턴이 같은 사람들만 나는 안다. 어쩌다 못 본 얼굴을 볼 수도 있다. 그러면 나도 쉽게 말을 걸지 못한다. 이사를 왔나, 손님인가 짐작한다. 성당에 같이 다니는 사람들은 안다. 딸아이 친구집도 안다. 강아지를 키우는 집도 안다. 그러나 못 보는 사람은 계속 못 보는 것 같다. 이웃에게 너무 과한 친절을 베풀지는 않는다. 사실 너무 짧은 시간 한 공간에 머물기 때문이다. 길을 같이 걷거나 벤치에 같이 앉았다면 더 오래 대화를 나눌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러나 17층까지의 시간은 참 짧다. 아래층에서 올라왔다. 조만간 출산을 하는데 아기 소리로 시끄러울 수 있다고 양해를 구하며 빵을 준다. 우리도 강아지 때문에 시끄러울 수 있다며 똑같은 양해를 구한다. 며칠 후 나는 신생아 옷을 선물로 줬다. 잘 출산하라는 포스트잇을 붙여서. 이번 추석에 아래층은 또 선물을 문에 걸어두었다. 나도 다음 날 선물을 걸어두었다. 우리는 만나는 시간대가 맞지 않는다. 이런 방법도 편한 것 같다는 생각을 한 내가 좀 정이 없어 보인다. 다음에는 초인종을 눌러야겠다. 위층이 이사를 왔다. 유명 야구선수 부모라고 한다. 그러나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이사떡만 받았다. 옆 집 아주머니도 아주 가끔 본다. 일찍 나가시는 것 같다. 이름을 아는 사람은 없다. 그저 얼굴만 알 뿐이다. 그래서 몇 호라고 부르기도 한다. 아파트 구조가 이런 인간관계를 만드는 것 같다. 뻥 뚫린 공간은 사라지고 지하 주차장에서 자기 집으로 이동하는 길만 있을 뿐이다. 그런데 더 기가 막힌 구조는 똑같은 집안 구조이다. 나도 처음 이웃집에 놀러 갔다가 나의 집과 같은 구조에 현기증 비슷한 불쾌하면서 답답한 이상한 감정을 느낀 적이 있다. 그 이후 내가 양평에 살고 싶다, 주택에 살고 싶다는 꿈을 가지게 된 것 같다. 내가 마치 똑같은 사람이 된 느낌이다. 똑같은 구조, 똑같은 사람들, 똑같은 생활 패턴, 똑같은 취미와 똑같은 꿈, 똑같은 취향, 똑같은 유행, 아, 정말 다르고 싶다는 반항심마저 든다. 이 소설을 읽는 내내 나는 답답함에 미칠 지경이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토지 3부 3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