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물건을 사는가
나는 세븐일레븐 편의점에 간다. 초록색 조끼를 입은 사장은 나에게 어디 사냐, 학생이냐, 전공이 무엇이냐 자꾸 말을 건다. 더 이상 가지 않는다. 아니 사람의 말이 그리울 때는 가기도 한다. 나는 이동식 포장마차에 간다. 노모와 아들이 하는 가게이다. 노모의 아들도 전공이 무엇이냐, 졸업하면 무얼 하냐 묻는다. 자신도 대학을 나왔다고 말한다. 그 후 그 가게 가지 않는다. 나는 패밀리마트에 간다. 불친절한 사장은 콘돔을 사는 나에게 주민등록증을 보여달라고 하고 계산이 지체되는 이유를 궁금해하는 사람들을 의식하느라 진땀을 뺀다. 그 이후 발을 끊는다. 큐마트의 아르바이트생은 말수가 적고 무심하다. 그는 전공도 묻지 않고 주소도 묻지 않지만 점점 나는 그가 나의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핸드폰을 충전하고 생리주기에 생리대를 사고 고향에 택배를 보내고 쓰레기 통부는 10리터만 사고 햇반을 사는 나의 모든 습관을 그는 안다고 생각한다. 어느 날 고향에서 동생이 올라온다는 연락이 왔다. 마침 친구가 아프다는 연락도 왔다. 나는 큐마트의 아르바이트생에게 열쇠를 맡기기 위해 나를 알지 않냐고 묻는다. 그는 나를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 삼다수를 사는 사람은 너무나 많다고 말한다. 오히려 나는 그 아르바이트생 핸드폰에 오는 문자가 궁금하다. 패밀리 마트에서 담배를 훔친 여고생이 차에 치였다. 큐마트 청년은 곧장 뛰어나가고 그사이 파란색 야구모자를 눌러쓴 남자가 복권을 훔친다. 나와 눈이 마주친다. 남자는 껌을 계산하고 밖으로 나가 쓰러진 소녀의 치마를 내려준다.
편의점의 본질은 무엇인가. 편리함을 제공한다. 어떤 편리함인가. 배고픔도 바로 해결할 수 있게 전자레인지가 있다. 핸드폰도 바로 충전할 수 있고 우체국까지 안 가고 택배를 보낼 수도 있다. 막 떨어진 생필품을 한밤중에도 살 수 있다. 24시간 열려 있어 든든하다. 재래식 시장, 거대한 슈퍼마켓처럼 호객행위를 하지 않고 개인사를 묻지 않는다. 모른척해주는 무심함이 있다. 단골이 되지 않아도 미안해하지 않아도 된다. 오랜만에 온다는 가게 주인의 말은 왠지 미안한 마음을 들게 한다. 불편하다. 이런 사소함이 없어진 단칼 같은 매끈함이 남은 편의점이다. 그런데 편리함이 주는 기계적인 무뚝뚝함이 있다. 아기자기한 물건이 주는 따뜻한 미소가 없고 정신없이 나열된 광고판은 어지럽다. 이상하게 불필요한 물건을 산다는 느낌이 든다. 급하니까 오늘만 해결하고 다음에는 꼭 재래시장이나 커다란 마트에 가서 많이 사두자는 생각이 든다. 나는 편의점을 거의 가지 않는다. 여름에 맥주를 사러 가거나 택배를 보낼 때를 제외하곤 가지 않는다. 그런데 동네에는 편의점이 무척 많다. 장사가 잘 되나 보다. 누가 이렇게 가는 것일까. 학생들, MZ 세대들, 혼자 사는 사람들이 대체로 가는 것 같다. 아이들이 저녁에 편의점에서 간단히 끼니를 때우는 걸 많이 본다. 또 편의점에서 하는 할인 행사 때문에 간다는 사람도 있고 한밤중에도 간다. 그런데 편의점은 사건사고도 많다. 돈을 요구하는 강도질, 물건을 몰래 훔치는 도둑질이 많이 일어난다. 그래서 편한 아르바이트지만 무섭기도 한 모양이다. 청년이 잠깐 사고 현장에 가는 순간에도 누군가는 물건을 훔쳤다. 그리고 자신이 자주 왔으니 자신을 알 거라는 예상은 빗나간다. 나는 서운함을 느낀다. 말을 거는 것을 불편해하던 나는 이상하게 말을 또 걸지 않으니 서운함을 느낀다. <노크하지 않는 집>처럼 현대인은 서로에게 무관심하면서도 속마음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양가적 감정이 있는 것이다. 심리학적으로 모든 감정은 반대의 감정과 같은 것이라 한다. 자만심은 자기 학대와 맞닿아 있고 자기희생은 정복욕이 숨어있다고 한다. 아무도 내가 언제 물이 떨어지는지, 몇 리터 쓰레기봉투를 사는지 관심이 없을 것이다. 나는 불편하게 말을 거는 사람은 싫어하고 나에게 무관심한 사람은 서운하게 생각한다. 그래서 두 가지가 존재해서 편의점에 가는 모양이다.
소설은 캐릭터를 표현할 때 말과 행동으로만 보여주어야 한다. 김애란 작가는 정말 디테일한 것을 관찰하고 말과 행동으로만 보여준다. 처음에 김애란 소설을 시적이라 생각했는데 지금은 정말 소설다운 소설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시적이라 느낀 부분은 디테일에 있었다. 잘 관찰해야 한다는 말을 이제야 이해가 간다. 어떤 물건을 사는가에도 그 사람의 성격을 표현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