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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 물고기>를 읽고

소설 작법서 같은 이야기

by 하루달

그는 세상에서 가장 근사한 공간을 상상한다. 어떤 공간일까?


그는 똥고개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모는 인큐베이터에 아기를 넣을 돈이 없어 미숙아로 태어난 아기를 그대로 집으로 데리고 왔다. 어머니는 부잣집 아이라면 죽었을 것을 가난한 집 아이라 산 모양이라 생각한다. 어머니는 돼지족을 사다 먹을 형편이 되지 않아 막걸리를 먹고 젖을 주었다. 여섯 살 아이는 부모님이 돌아올 때까지 방 안에 갇혀 자거나 벽에 붙은 신문을 보며 상상하는 일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신문의 글자들이 외계 식물의 씨앗처럼 보이더니 말을 하는 것 같았다. 어느 날 여섯 개의 벽면이 그렇게 새롭게 다가왔다. 그는 한 면씩 읽기 시작한다. 어머니한테 배운 한글을 읽는 속도가 점점 빨라지고 여러 번 읽었고 세로로 써진 글을 가로로 읽기도 했다. 빗물에 천장을 뒤덮은 얼룩은 점점 커져가고 아버지는 또 다른 신문지를 덧발랐다. 몇 년이 지나고 아버지는 시골에서 살자고 한다. 그는 평범하게 자랐다. 그는 전문대학에 다니고 군에 제대하고 졸업을 하고 취직을 못하다가 서울에 가겠다고 말했다. 아버지는 "내가 서울 살아봤는데...." 하며 말렸다.


그는 갓 발라놓은 깨끗한 벽지가 있는 옥탑방을 계약했다. 그는 읽은 책에서 좋아하는 부분을 골라 포스트잇에 써서 한 쪽면에 가득 붙였다. 건강한 소음이 들리는 듯했다. 서로 다른 문장들은 스스로 어떤 질서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그는 자신에 관한 이야기를 포스트잇에 써서 두 번째 벽에 가득 붙였다. 자신의 몸에 그토록 많은 이야기가 깃들었으리라 상상하지 못했다. 세 번째 벽면은 스치는 생각, 단어, 문장을 적었다. 좀 더 무질서했다. 그는 자신이 무언가를 향해 다가가고 있음을 느꼈다. 생계를 위해 나간 건설현장에서 들은 이야기는 건강했다. 그는 네 번째 벽면은 세상에서 들은 이야기를 적었다. 네 벽면은 시간이라는 X축과 공간이라는 Y 측을 가진 사건 그래프로 보였다. 콘센트와 창문을 제외한 모든 벽이 포스트잇으로 덮였다. 그는 소설을 써보겠다고 결심하고 천장에 포스트잇을 붙이기 시작했다. 그는 많은 걸 절제하면서 썼다. 먹고 자는 일 외엔 오직 이 일에만 몰두했다. 좋은 소설이 될 것 같았다. 창문을 열자 포스트잇은 부풀어 올랐다가 가라앉았다. 방 전체가 비늘이 달린 물고기 같았다.


다음 날 그가 공사장에서 일하고 돌아왔을 때 옥탑방은 무너져 있었다. 시멘트에 조금씩 금이 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포스트잇을 붙이느라 금들을 못 보았다. 포스트잇은 시멘트 가루 속에 뒤엉켜 있어 마치 짐승의 창자처럼 끔찍했다. "그는 침도 별로 없는 입을 열며 우리에게 처음으로 말했다. 그것은 어쩌면 희망 때문일 것이라고"라고 적힌 종이를 보고 그는 꺼이꺼이 울었다. 나풀거리는 종이는 마치 물고기 아가미 같았다.







<달려라 아비> 소설집에서 가장 좋아하는 소설, 가장 강하게 기억한 소설은 "달려라 아비"였다. 딸아이가 추천한 소설이다. 누구나 이 소설을 읽으면 주변 사람들에게 추천할 수밖에 없다. 두 번째 소설을 꼽으라면 좀 망설이다가 (모두 재미있기 때문에) "종이 물고기"라고 답할 것이다. 종이 물고기는 무엇일까. 나는 가위로 오린 물고기만을 상상했을 뿐이다. 방 네 면과 천장을 가득 메운 종이(포스트잇)가 물고기가 될 줄은 정말 몰랐다. 눈앞에 그려지듯 물고기가 살아 있는 것 같은 묘사가 압권이다. 그는 세상에서 가장 근사한 공간을 상상했다. 그 공간은 조금 식상한 표현이지만 바로 책이다. 식상한 표현을 종이 물고기로 형성화한 작가의 표현에 놀랐다. 처음에는 다른 작가가 쓴 책 안에서 근사한 공간이 되다가 나의 이야기, 나의 상상력, 주변의 살아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점점 넓혀간다. 그리고 마침내 이야기를 만들겠다고 결심한다. 천장에 붙이는 작업은 목이 꺾이고 허리가 아프다. 마치 미켈란젤로처럼. 창작의 고통이다. 더디다. 포스트잇은 자주 떼어지고 버려지고 천천히 신중하게 붙여진다. 완성품은 아름답다. 바람이 불자 종이들이 살짝 부풀었다가 가라앉는다. 너무나 멋진 장면이다. 나도 저렇게 해볼까 생각이 들 정도이다. 가끔 드라마나 영화에서 경찰, 형사들이 범인을 추적할 때 벽에 인물도를 그린 종이를 붙이기도 한다. 그러나 네 면을 채우지는 않았다. 그는 정말 근사한 나만의 공간을 만들었다. 작가는 종이 안에서 자신만의 공간을 만들 수 있다. 캐릭터를 만들고 서사를 만들고 죽이고 살리고 성공하고 실패하고 날고뛰고 마음대로 할 수 있다. 그런데 그의 공간이 무너졌다. 시멘트, 벽돌 안에 종이는 파묻혔다. 얼마나 황망한 장면인가. 이 모든 것은 꿈이었나. 희망일 뿐인가. 종이물고기는 어쩌면 희망을 상징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잠시 희망을 꿈꾸는 행복한 순간, 종이처럼 약하고 종이 위의 글처럼 강한 것. 마치 작가가 겪는 감정과도 같다. 작가는 등단, 베스트셀러를 꿈꾼다. 그러나 나의 글은 남의 평가에 좌절된다. 그래도 괜찮다. 잠깐 행복했고 종이 위의 글은 나의 머릿속에, 나의 몸에 남아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마치 처음 글을 배울 때처럼 없어지지 않는다. 그도 여섯 살 한글을 깨칠 때처럼 어른이 되어 그렇게 자신만의 글을 완성했다. 글을 쓰다가 좌절하기도 하는 모든 작가들에게 이 소설은 작법서 같은 것이다. 글 쓰는 것이 행복한 작가들, 글이 잘 써지 않는 작가들에게 이 소설을 추천한다. 나도 종이물고기를 만들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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