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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려라 아비>를 읽고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마라

by 하루달

나는 아버지가 달리고 있다고 생각한다. 나의 머릿속의 아버지는 분홍색 야광 반바지에 여위고 털 많은 다리를 가지고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쉬지 않고 달리고 있다. 그러나 아버지는 어머니를 위해서 한 번도 뛴 적이 없다. 그렇게 느렸던 아버지가 단 한번, 세상에 온 힘을 다해 뛴 적이 있다. 아버지는 서울에 상경해 가구 공장에서 일했다. 혼자 상경한 아버지에게 화가 난 어머니는 가출해 아버지의 셋방에 찾아갔다. 젊은 피에 처녀와 한방에서 지내게 되었으니 아버지는 애원과 짜증과 허세로 어머니를 괴롭혔고 피임약을 사 오면 한 이불을 덮겠다는 어머니의 말에 처음으로 전속력으로 달렸다. 어머니를 위해 달린 것은 아닌거다. 온몸에 하얀 재를 뒤집어쓴 채 달동네 맨 꼭대기에서 시내 약국까지 쉬지 않고 달리던 아버지는 어머니의 임신과 함께 집을 나가셨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어머니는 홀로 나를 키웠지만 미안해하지도 가여워하지도 않았다. 어느 날 아버지가 죽었다는 편지가 왔다. 그런데 미국에서 온 영어로 써진 편지다. 아버지는 달려서 그동안 미국에 간 것이다. 거기서 결혼하고 살았는데 이혼 후 이혼한 전 아내의 집에 잔디를 깎는 일을 했다. 그러다 전 아내의 현재 남편과 싸웠고 도망가는 중 교통사고로 죽었다. 아버지의 자식이 시시콜콜한 이런 이야기를 담아 보냈다. 영어를 읽지 못하는 어머니에게는 나는 거짓말을 한다. 아버지는 어머니를 그리워했다고 말한다. 나는 달리고 있는 아버지에게 그동안 눈이 부셨을 거라 생각하고 선글라스를 씌워주는 상상을 한다.







2005년 초판을 시작으로 40쇄를 발행하고 2019년 개정판이 나왔다. 2005년 차고 깊은 가을에 김애란은 작가의 말에서 자기 소설 안에 어떤 정직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2019년 가을 그녀는 마흔이 되었고 이 책은 어떤 시절 함께 건넌 친구처럼 느껴진다고 말한다. 이 책은 그녀의 이십 대이다. 젊은 작가가 보내준 메시지는 밝음이었다. 그때도 일어났고 지금도 일어나는 삶의 아이러니, 고통, 외로움을 그녀는 다르게 해석한다. 무조건 긍정하라는 억지가 아니다. 나는 소중하다는, 나는 살아있다는 밝음이다. 가족을 버린 아버지를 유목시키고 떠돌아다니게 하고 열심히 달리게 하는 상상력은 자신은 상처받지 않겠다는 의지이다. 마치 남녀가 이별하고 쿨하게 지내는 할리우드식 사랑이다. 부모자식은 할리우드식 사랑을 할 수 없다는 나의 편견을 깨준 소설이다. 유쾌한 문장은 속마음과 반대일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상대가 이렇게 나는 상상한다고 말한다면 나도 웃을 수 있을 것 같다. 위로 같은 건 하지 않고 싶은 마음이 든다. 자신을 지키는 방법은 이렇게 유쾌할 수 있다. 그 원동력은 엄마에게 있다. 우리는 늘 자기 옆에 있는 존재의 소중함을 잊곤 한다. 엄마의 유쾌함은 삶을 유지시키고 딸의 상처를 없애주었다. 자기 옆에 있는 사람을 사랑하는 한 우리는 유쾌할 수 있다. 달리느라 힘들었을 아버지에게 선글라스를 끼워줄 수 있는 넉넉함까지 생긴다.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어려운 숙제를 풀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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