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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여름은 어떠니>를 읽고

상처의 여름

by 하루달

내가 대학생 때 좋아하던 선배에게서 전화가 왔다. 2년 만이다. 자신이 맡은 프로그램에 누군가 펑크를 냈는데 메꿔줄 수 있냐는 것이었다. 저녁에 친구 조문을 가야 하기 때문에 나는 검은 옷을 챙겨 입고 선배가 일하는 방송국에 갔다.


선배는 홍대 인디 문화, 대학로 소극장의 서늘함, 야구장을 알려준 사람이다. 신입생 환영회에 살짝 무리에 빠져나온 나를 찾으러 다닌 그를 좋아하게 되었다. 상대의 성을 지워버리려는 노력인지 커다란 손바닥으로 머리칼을 마구 헝클어주며 녀석이라고 부르는 그가 좋았다. 여자친구가 있는 선배를 혼자 짝사랑할 수밖에 없었다. 반년 전 회사를 그만둔 나는 체중이 불어나 있었다. 그런 모습을 보이기 싫었지만 제발 도와달라는 그의 부탁을 저버릴 수가 없었다. 그런데 날씬한 푸드파이터 옆에서 딱 달라붙는 레슬링 복을 입고 어마어마한 핫도그를 먹는 역할이었다. 고개를 박고 먹는 나의 모습을 보고 선배는 당황하며 고개를 들으라고 야단이었다. 녹화를 끝내고 서둘러 나오는 나의 팔을 선배는 고맙다며 꽉 잡았다.


초등학교 고향 친구들은 대부분 장사를 하는 부모님 밑에 자라 우리는 해거름까지 밖에서 시간을 때우며 놀았다. 당시 신나는 폐활량을 떠올리면 지금도 개운한 기분이 든다. 병만이는 물에 빠진 나를 구해준 아이였다. 나는 강물에 조용히 떠올랐다가 가라앉기를 반복하는 공포에 휩싸여 있을 때 누군가의 팔을 있는 힘껏 잡았던 기억이 있다. 병만이의 팔에는 그렇게 손톱자궁이 파여 시퍼렇게 멍들어 있었다. 병만이는 화학 공장 회사 근처에서 무슨 사고를 당했다고 했다. 나는 병만이 조문을 가지 않고 집에 돌아와 누웠다. 자신의 팔에 선배가 남긴 자국을 보며 병만이도 이렇게 아팠을 텐데, 나도 누군가를 이렇게 아프게 했을 텐데 하면서 울었다.






동창이 죽었다. 이제 이십 대인데 고향 친구의 죽음을 젊은 나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어린 시절 물속에 빠진 나를 구해준 병만에게 가는 길에 나는 나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한때 짝사랑했던 선배의 부탁을 들어준다. 서로를 도와주면서 서로의 팔에는 꽉 잡은 흔적이 남아있다. 흔적은 젊음이며 관계이다. 싱싱하며 아프고 서러우며 붉다. 선배를 향한 내 마음은 결국 병만이를 향한 마음이었나. 병만이를 향한 마음이 선배를 향한 마음이었나. 친구의 죽음을 바라보는 마음을 다른 사건을 넣어 표현한 것 같다. 공장에서 일하는 청춘이나 도시 방송국에서 일하는 청춘이나 실직을 한 청춘이나 모두 살기가 어렵다. 모두 상처가 나 있는 모습이다. 여름, 부러우면서도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은 그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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