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아파트에 살고 싶어 하던 시절, 20여 년 전 부모님은 강산아파트에 입주했다. 주택 아파트 담보를 다 갚은 20년 후 지금 갑자기 다른 주인이 나타나 철거 명령이 떨어졌다. 타워크레인에서 철거 농성을 하던 아버지는 실족하셨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장마는 시작되었고 한 달 넘게 지속되고 있다. 강산아파트에는 나와 어머니만 남았다. 전기, 가스, 수도가 끊겨 둘은 온갖 그릇과 온갖 비닐에 물을 받고 있다. 세계는 비 닿는 소리로 꽉 차갔다. 단순하고 압도적인 소리였다. 어머니는 점점 말이 없어졌다. 나는 물이 우는 소리에 놀라 한밤중에 잠에서 깨기도 했다. 창 밖을 보던 나는 놀란다. 마을이 없어졌다. 어머니는 쓰러지셨고 돌아가셨다. 나는 문짝을 뜯어 배를 만들어 밖으로 나온다. 어머니를 이불과 테이프로 꽁꽁 묶어 집을 나온다. 세계는 온통 물에 잠겨 있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망망대해에서 골리앗 크레인이 마치 혼자 살아남은 유일한 생물처럼 서있다. 한쪽 팔만 긴, 한쪽 편만 드는 십자가처럼 크레인은 자주 출현했다. 전 국토가 공사 중이었던 것이다. 바람이 거세지고 배가 흔들려 어머니를 놓치고 만다. 나는 배고픔과 추위에 떨며 어둠 속에서 그대로 가라앉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그러다 크레인 위에 누군가가 서 있는 것을 보고 헤엄쳐갔다. 그곳엔 아무도 없었다. 크레인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둥둥 떠내려오는 마분지를 건져보니 라면과 사이다가 들어있었다. 문득 아버지가 나를 이리로 보낸 건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아버지가 강가에 데려가 생일 선물로 수영을 가르쳐준 일이 떠오른다. 놀랍게도 비는 거의 멎은 듯했다. 나는 누군가를 기다린다.
<벌레들> 소설처럼 자본주의 사회의 토지, 아파트, 주거 공간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전 국토가 건설 중이라는 문장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도시가 물에 잠겨도 타워크레인만 우뚝 솟아있다. 타워크레인은 건축의 상징이다. 높은 건물은 자본주의의 상징이다. 누가 더 높이 세우냐는 국가의 자존심이다. 모래 위에도 건물이 세워지고 높은 쌍둥이 빌딩이 세워지기도 한다. 타워크레인을 골리앗으로 표현한 점이 놀랍다. 기우뚱한 모습에 늘 불안하고 비정상적인 느낌을 받았다. 그곳은 노동자들이 농성을 하던 곳이다. 그곳에서 아버지는 죽고 소년은 살았다. 결국 기후 위기를 만든 것도 자본주의이다. 우리는 욕망 덩어리에 삼켜졌다. 도시와 아파트는 물에 잠겼다. 소년은 아버지가 가르쳐준 수영 덕분에 살았다. 아버지가 잘했다고 칭찬할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골리앗을 무너뜨린 소년이 생각난다. 소년은 아파트에서 나왔기에 살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