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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달 Oct 21. 2024

<침이 고인다>를 읽고

침이 고인 적이 있는가. 맛있는 음식을 떠올릴 때 우리는 침이 저절로 고인다. 섬세한 미각은 아련한 과거를 떠올리게 한다. 오들오들 떨고 있을 때 먹은 뜨끈한 국물, 겨우 한 끼 안 먹었는데 배고픔에 허겁지겁 먹은 음식, 타들어가는 갈증에 먹은 시원한 과일 한 조각 등 우리 몸은 정확히 기억하고 있다. 그리고 그 맛은 과거와 완전히 똑같을 수 없다는 것도 안다. 음식은 배고픔을 없애는 역할 외에 많은 의미가 있는 것 같다. 매일 먹는 음식은 더 많은 정보를 저장하는 것이다. 뇌보다 몸이 더 예민하고 정직한 것 같다.


서글프고 슬픈 맛도 있을까. 김애란 작가는 맛의 반전을 말한다. 엄마가 사라졌을 때 가슴이 뻐근하게 매었던 참혹한 시간들을 떠올리면, 나 혼자 먹던 풍선껌을 생각하며 침이 고인다. <사랑의 인사>에서 아버지가 놀이 공원에서 아이를 버렸다. 공지영의 <봉순이 언니>에서 외숙모도 봉순이를 벚꽃 놀이하는 공원에서 봉순이의 손을 일부러 놓았다. 사람이 북적대는 곳은 아이를 버리기 적당한 장소인가 보다. 그런데 아주 조용한 한적한 도서관에서 엄마는 아이에게 껌을 씹고 있으라 하고는 사라졌다. 아이는 조용한 곳에서는 울면 안 된다고 스스로 인지하고 오로지 오래 씹었던 껌의 맛만 기억한다. 그 아이는 그녀의 학교 후배이다. 후배는 그녀와 같이 살게 되었고 하나 남은 껌을 반으로 잘라 그녀에게 건넨다.


그녀는 기업형 학원에서 중등부 국어 강사이다. 13평형 원룸의 월세와 세금을 낼 만한 생활력을 가지고 있다. 후배는 하룻밤 자고 갈 수 있는지 물었고 그렇게 같이 살게 되었다. 후배에게 한 장당 천 원하는 첨삭 아르바이트를 주었다. 함께 살아 좋은 순간은 먹을 때이다. 밥상 앞에 한 사람이 더 있다는 것은 오래전부터 내려오는 유구한 밥상처럼 느껴졌다. 미각은 몸이 기억하는 것도 있지만 그때의 기분, 환경이 기억하기도 하는 것 같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익숙한 습관이 꼬투리를 잡는 방향으로 흐른다. 후배의 젓가락질이 싫고 물을 조금 먹는 것도 싫고 발가락에 옹이가 있는 것도 싫어진다. 사내 체육대회에서 국어과는 영어과 선생님들에게 지고 만다. 지친 몸을 이끌고 집에 온 그녀는 후배에게 그만 살자고 말한다. 씻고 나와보니 후배는 사라졌고 후배가 남긴 반쪽 껌을 씹는다. 아직까지 단맛이 남아있다.


그녀도 이제 후배를 내쫓았던 일이 생각이 나면  자기 자신이 몸서리치게 싫어질 때 침이 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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