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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달 4시간전

첫째, 은퇴한다고 말하기

 퇴사의 사전적 의미는 회사를 그만둠이다. 그럼 이 회사를 그만두고 다른 회사에 갈 수도 있는 가능성이 있다. 나는 회사가 아닌 자영업이었으니 폐업이라는 단어가 더 맞다. 폐업이란 영업을 그만 둠이다. 어, 이 단어도 영업을 다른 곳에서 시작할 수 있는 것이다. 은퇴의 사전적 의미는 직임에서 물러나거나 사회 활동에서 손을 떼고 한가히 지냄이다. 그럼 나에게 딱 맞는 단어는 은퇴이다.


 어제 학부모들에게 은퇴 전화를 했다. 더 이상 가르치는 일을 하지 않고 쉴 거라고 솔직히 말했다. 처음에는 아프다고 할까 변명 아닌 변명거리를 생각하다가 그냥 있는 그대로 말하게 되었다. 몇몇은 다른 좋은 데로 가는 거 아니냐, 더 학원을 확장하냐, 글만 쓸 거냐 질문을 한다. 내 능력보다 높은 평가에 참 감사하다. 정말 쉰다고 했더니 잘 쉬라는 말이 의외로 많았다. 그동안 수고했다고 한다. 나는 형(언니)을 가르치고 그 동생까지 가르친 경우가 많다. 그럼 한 집안에서 적어도 6년 이상 꾸준히 보낸 것이다. 아이들이 안 가겠다는 말을 안 하니 꾸준히 나에게 가르침을 맡긴 무던한 사람들이다. 나는 상담 전화도 거의 하지 않는다. 일 년에 한 번 하면 많이 한 것이다. 이번 전화 통화에서 알게 된 사실은 많은 아이들이 작가의 꿈을 가진 것이다. 나의 작은 칭찬이 아이들에게 꿈을 가지게 해서 기쁘기도 하고, 독서의 즐거움을 알게 된 것 같아 보람을 느꼈다. 예비 4학년들이 가을부터 문의 전화를 했다. 다 메모했다가 다시 전화를 걸어 은퇴 이야기와 함께 다음에 가르칠 선생님 소개를 했다. 아침 10시부터 전화를 시작해서 3시에 얼추 끝냈다. 배고픔도 잊고 첫 번째 할 일을 마쳤다. 무례한 사람도 없고 모두 응원하는 느낌이라 시원섭섭할 것 같았던 기분은 의외로 가벼웠다.


 통화를 하고 있는데 소율이가 들어왔다. 통화가 끝나자 선생님, 은퇴하세요? 묻는다. 나는 멋쩍게 웃으며 12월까지만 수업하자고 했다. 소율이는 나에게 대뜸 축하한다고 한다. 선생님은 은퇴가 필요했고 응원한다고 한다. 멀리 잠실에서 지하철을 타고 오는 나의 애제자이다. 소율이는 수업이 끝나도 더 책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간다. 기특하게도 내가 생각하지도 못한 부분을 말한다. 김애란 작가보다 더 뛰어난 작가가 될 아이이다. 우리는 수업이 끝나도 연락을 하기로 했다. 누구보다도 소율이의 응원이 든든하다. 꼬꼬마 1학년 아이가 어느새 중3이 되어 나에게 토닥토닥해 주다니 이제야 눈물이 난다. 예전에는 스승이 가르칠 것이 없으니 제자에게 하산하라고 했는데 요즘에는 제자가 스승에게 은퇴를 응원하는 것으로 바뀌었네 라는 생각이 들었다.


소율이 말대로 은퇴, 참 매력적인 단어이다. "나는 은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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