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토크를 기다리며
<끝과 시작, 크메르>
남편은 기장이다. 연수는 회사에서 마련한 호텔에서 비행기가 추락했다는 말을 듣는다. 부기장의 아내도 왔다. 사고에 대한 원인을 부기장의 부부싸움으로 돌리기도 하고, 기장의 지나친 사망 보험금으로 돌리기도 하면서 유가족들에게 상처를 주는 동안 연수는 남편이 살아있을 거라는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시아누크빌에서 북서쪽으로 떨어진 지점에서 비행기 기체가 발견되었다. 연수는 지금 시아누크빌, 게스트 하우스에 있다. 잔해 인양 작업에 부기장의 아내도 왔다. 둘은 게스트 하우스에서 같이 지낸다. 마침내 사망 소식을 확인한다. 게스트 하우스의 밥은 연수가 마음을 추스르는 모습을 말없이 지켜본다.
시아누크빌에 연수는 무슨 일로 오게 된 것일까, 일 년 전의 일들, 보험회사의 전화는 무엇일까 자연스럽게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관광객, 비즈니스로 온 것 같지 않은 연수를 보는 밥은 혹시 극단적인 선택을 할까 걱정도 하지만 연수의 '단단함'을 발견하고 안심을 하며 자신의 상처도 떠올린다. 밥은 동병상련을 느끼고 그 힘만이 연수에게 유일하게 도움이 되고 있다. "짙은 안갯속에 혼자 서 있는 느낌, 머리부터 발끝까지 이슬이 내려앉는 것 같은 하얀 막막함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을 꿀꺽 삼켰다"
이 장면에서 나는 김애란의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 소설이 떠올랐다. 남편을 갑작스럽게 잃은 아내의 그 막막한 비애가 겹쳤다. 잠시 외국에 와서 쉬라고 장소를 빌려준 사촌언니, 감사하다는 말을 편지로 전하는 제자의 누나에게 잔잔한 위로를 받고 '나'는 조금 용기를 가져본다. 밥을 잘 챙겨 먹으라는 말조차 눈물짓게 만드는 추억인데 상실감을 어떻게 이겨내야 하는 것일까. 연수도 스노클링을 하러 가자는 밥, 먹이를 먹는 물고기 떼에게서 조금 살아야겠다는 용기를 가지게 된다.
사랑하는 사람의 부재는 그 부재라는 시간 이후 시계는 멈추게 만든다. 앞으로 나아갈 수 없고 과거로 돌아가는 시간만이 존재한다. 연수는 '시간이 움직이지 못하게 죽이고 싶'은 마음을 느낀다. 그 문장에서 나도 울컥했다. 믿어지지 않는 현실, 다시 돌아갈 수만 있다면, 시간이 멈추어져 버렸으면 하는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과하지 않은 감정의 절제는 연수의 공군 전투기 조종사 출신이라는 캐릭터 조건에 맞게 표현되었다. 연수는 기체가 떨어질 지점을 예상하고 그곳에 머물며 남편의 생존을 빌었다. 연수에게는 희망을 버리지 않는 당당함, 남편을 믿는 사랑이 있다. 자신의 눈으로 죽음을 확인하는 과정은 어쩌면 애도의 시간일 수도 있다. 그 애도의 시간을 막연하게 지우도록 요구하는 것은 잔인한 일이며 유가족의 시간을 멈추게 하는 폭력이다. 연수가 다시 일어날 수 있었던 것은 애도의 시간을 자신의 의지대로 가졌기 때문이다. 끝이 있어야 시작이 있다.
<칼과 슈왈츠마돈나>
단숨에 읽은, 가독성이 높은 소설이다. 학교 폭력에 관한 책은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론은 나지 않는다. 우리 사회는 폭력과 평화가 공존할 수밖에 없는 것일까. 영화 '아바타'를 보고 많은 사람들이 무기력증을 느꼈다고 했다. 현실에 대한 냉혹한 자각이 평화로운 이상향을 봄으로써 두드러지게 드러난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곳에 대한 혐오감을 느끼고 그 정서는 무기력으로 이어진다. 우리는 이상적인 평화로운 세상으로 갈 수 없을까.
지선은 의사이다. 아들 리안은 현장학습에 가서 죽었다. 물에 빠진 사고가 아닌 학교 폭력이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지선은 칼을 들고 학교로 가서 부일의 목에 작은 금을 그었다. 지선이는 리안을 잃고 나서 주기적으로 리안이의 친구 상훈을 만났고 부일과 담임의 안부를 물었고 운동에 열중했다. 같이 운동하는 여자들의 불운을 이야기하며 지선이의 눈에 생기가 돌았다. 리안이가 늘 사다 주었던 슈왈츠 마돈나를 사서 꽃병에 꽂기도 했다. 리안이의 방문을 열고 여전히 엄마 다녀올게 인사를 전한다. 죽음에 관한 기사를 모은다. 이런 모습에서 새끼를 잃은 어미의 아픔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지선이는 지금 무엇에 집중하고 있는 것일까. 생명을 살리는 의사인데 자신은 죽음으로 향하는 것일까. 지선이의 손에는 언제나 칼과 장미가 쥐어져 있다.
어느 날 부일은 오토바이 사고로 머리가 심하게 손상되어 지선에게 운명처럼 온다. 뇌전문 의사인 지선은 그냥 장난이었다고 말한 부일이를 살릴 것인지 죽일 것인지 고민에 빠진다. 당신이라면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종교의 사랑처럼 나의 원수를 용서할 수 있을까. 죄를 미워하되 사람을 미워하지 않을 수 있을까. 복수 후에는 무엇이 남을까. 나를 위한 용서를 하지 않는 한 우리는 고통에서 벗어날 수 없다. 어미의 사랑이기에 지독하며 끈질기다는 것을 안다. 알기에 용서를 해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자신만큼 가장 사랑하는 존재인 자식의 죽음 앞에서 어떤 애도를 해야 하는 것일까. 어려운 주제만큼 가장 기억에 오래 남는 소설이다.
"살아있는 자 수선하기" 책도 의학 전문 용어가 많이 나온다. 마일리스 드 케랑갈 작가의 사전 조사의 역량에 혀를 내둘렀던 기억이 난다. 이 소설도 뇌전문의가 집도하는 모습을 사실적으로 묘사한다. 작가의 성실한 역량을 느낄 수 있었다.
<블랙아이스>
얀은 회사에서 평점을 잘 받고 싶어 했다. 평점은 인사에 영향을 주고 승진은 곧 가족의 행복이라 믿었다. 회사에서 근무하는 동안 매겨지는 점수와 SNS 활동으로 매겨지는 점수가 합쳐진다. 얀은 신입사원 나에게 친절을 베풀었다. 그의 아내 루벤디를 소개받기도 했다. 인도네시아계 혼혈아인 그녀와 나는 공통점이 있어 금방 친해질 수 있었다. 나는 동양인 엄마와 아빠와는 다른 유전자 초록 눈동자를 가지고 있다. 그것이 원인인지 둘은 서로를 의심했고 다시 각자의 가정을 이루었다. 나는 혼자 남겨졌다. 그리고 얀의 죽음으로 다시 또 남겨지는 역할을 맡게 되었다. 얀은 무리하게 바이크를 탔고 사고 현장 동영상이 올라왔다. 얀이 죽은 후 원하던 높은 평점을 받는다. 얀의 유품 상자를 루벤디에게 전해주어야 한다. 얀의 USB에는 평점을 잘 받는 방법이 있다. 나는 얀의 해맑은 미소가 가식이었나 의심을 한다. 그리고 나도 점점 얀의 모습을 닮아간다. 평점을 잘 받은 나는 정규직이 된다. '남겨진 사람'이 아니라 '남아 있는 사람'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사회에서 만난 인간관계는 가식과 진실이 뒤섞인 경우가 많다. 이해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사회적 이미지를 만들어간다. 집에서 행동하는 모습과 사회에서 하는 모습이 다를 수 있다. 그 벌어진 틈에서 우리는 고뇌한다. 가면을 쓴 자아를 견디지 못하기도 한다. 이제는 스스로 거짓 이미지를 만들라고 강요하는 세상이 되었다. 좋은 모습, 친절한 모습, 행복한 모습만을 보여야 인정을 받고 높은 평점, 많은 팔로우를 획득한다. 그리고 서로를 감시의 눈으로 보는 세상이 되었다. '멋진 신세계'와 '1984'책이 떠오른다. 자본가들은 힘을 들이지 않고 노동자들에게 서로 감시하는 눈을 만들었다. 감시하는 눈은 타인을 향하는 것이 아니라 결국 자신을 향한다. 내가 스스로 원해서 하는 행동인지, 남에게 오로지 평가받기 위해 하는 행동인지 스스로 물어봐야 한다. 그리고 앞의 두 소설보다 타자의 죽음에 애도하는 마음이 크지 않다는 것을 발견한다. 마치 방송매체에서 타인의 죽음 소식을 듣고 무감각해지는 우리의 민낯 같다. 죽음 앞에 다시 삶을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뿐인가. 인간은 여전히 어리석은가 씁쓸한 마음이 들었다.
세 소설은 죽음을 소재로 하고 있다. 죽음으로 남겨진 사람들은 떠나보낸 사람과의 관계에 따라 슬픔의 강도와 애도의 방식이 다르다. 각각의 애도하는 모습을 통해 삶과 죽음이라는 주제에 가깝게 다가갈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