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녀를 중심으로 진행되는 이야기가 많다. 문학에서도, 심리학, 예술 분야에서도 중요한 소재이다. 할머니, 엄마, 딸 이렇게 이야기는 연결되어 있다. 사실 한 모녀 중심으로 보아서는 안 되는 부분이다. 엄마의 입장에서 또 다른 모녀가 있고, 딸의 입장에서의 모녀가 있다. 작품 속 엄마는 할머니보다 할아버지와 잘 맞았다. 할아버지는 어려운 상황에서 공부를 해서 교사가 된 사람이고 할머니는 그 수준을 맞추는 학벌을 가지고 있지 않았고 흥에 따라 노래를 부르는 것을 좋아한다. 엄마는 어릴 적 영재 소리를 듣는다. 당연히 할아버지는 아들보다 나은 딸이라며 자랑스러워했다. 할머니와 엄마의 사이는 자연스레 살갑지 않다. 둘의 스타일이 다르기 때문이다. 엄마는 그 당시 흔하지 않은 유학을 떠난다. 딸을 낳자마자 할머니에게 맡기고 유학을 간다. 할머니는 기꺼이 손녀를 맡는다.
이제 손녀의 입장에서 보는 엄마는 무섭고 정이 없는 사람이다. 손녀를 키운 사람은 할머니이다. 손녀는 전공을 자주 바꾸고 일자리를 찾지 못하며 방황한다. 엄마의 눈에는 한심해 보인다. 할머니가 폐렴암이라는 사실을 알려주지 않는다. 손녀는 마지막으로 할머니와 시간을 보내고 엄마도 주말마다 할머니집에 온다.
할머니는 손녀에게 마지막 말을 남긴다. 아들 말고 니가 죽었어야 했다는 말을 딸에게 했다며 운다. 아, 얼마나 많은 딸들은 이 말을 들어야 하는 것일까. 오빠건 남동생이건 딸은 순위가 마지막이었던 시절이다. 박완서도 자신의 어머니에게 들은 말이다. 식구 중에서 누가 누구를 위해 희생해야 한다는 말은 너무나 잔인하다. 가장 작은 단위의 사회에서조차 서열이 있으니 불행할 수밖에 없다. 엄마가 할머니에게 냉정하게 군 것은 사실 이 말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엄마는 그래서 더 기를 쓰고 성공을 하려고 했는지도 모른다. 딸이기에 너무 편하고 딸이기에 엄마를 가장 잘 이해해 준다고 믿는다. 고마우면서도 가장 만만하게 대하기도 한다. 아들에게 의지를 했다가 등한시한 딸을 다시 찾는 어머니들이 많다. 그 알 수 없는 감정은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 할머니는 손녀를 데리고 자주 부두를 걷곤 했다. 할머니의 등은 울음을 참는 사람의 등이라 손녀는 느낀다. 아들과 딸을 차별 없이 키우는 것은 가능한 것인가. 다르기 때문에 다르게 반응한다. 다르기 때문에 다르게 사랑한다. 이것도 대대로 내려오는 관습적 차별일까. 그 미묘한 감정선이 사실 있긴 하다. 기억해 두었다가 소설의 소재로 삼고 싶다.
그래도 우리는 안다. 부모의 사랑은 너무나 진실하다는 것을. 그래서 엄마를 친애하고 친해하는... 친애하고 친애하는...친애하고 친애하는....이라고 부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