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레네산맥이여 안녕
(왕숙천 걷기 12km)
정말 혼자 가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 남편 없이, 친구 없이, 아는 사람 없이 40일 동안 외국에 가는 것이 나도 처음이다. 그렇다고 영어를 유창하게 잘하지도 않는다. 내가 봐도 대책은 없어 보인다. 그들의 표정에는 용기가 참 대단하지만 걱정된다는, 한편으로는 잘 마치고 와서 너의 실체를 보여주면 따라 하고 싶다는 마음이 드러난다. 산티아고 순례길은 매년 여성 순례자가 늘어나는 통계를 보면 그리 위험하지 않은 곳임에 틀림없다. 아줌마이기에 겁이 좀 없어진 것 같기는 하다. 아니다. 겁이 나지만 아줌마이기에 도전해보고 싶기도 하다. 나는 늘 해외 운? 이 없었다. 대학 시절 뉴질랜드 어학연수를 갈 뻔했지만 뜻밖의 일이 터졌고, 재작년 딸과 그리스 여행을 가려고 했는데 딸에게 일이 생겼다. 남편의 해외근무를 원했지만 늘 기회가 오지 않았다. 그런데 외국에 가지 않게 되는 상황이 한편으로는 안도가 되기도 할 정도로 나에게는 겁이 나는 일이었다. 그런 내가 무모한 휴가를 떠난다. 그것도 혼자서. 나는 지금의 내가 좋다. 거추장스러운 걱정거리 없이 용기를 낼 수 있고, 나를 지지하는 가족이 있기 때문이다. 20대에는 가질 수 없는 용기이다.
까.친. 연 카페가 있다. 산티아고 순례길에 대한 마음을 나누는 카페이다. 오프 모임에 참석했다. 4시간이나 되는 설명회인데 우선 순례길에서 볼 수 있으니 자기소개를 간단히 하자고 한다. 대부분 은퇴를 하고 부부끼리, 친구끼리 온 분들이 많았다. 20대는 단 한 명이었다. 한결같이 은퇴 후 가고 싶은 순례길을 걷게 되었다며 기뻐하는 모습이었다. 나는 그분들이 대단해 보이면서 한편으로는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외국은 한 달 정도의 휴가를 쓸 수 있는 사회적 제도 덕분에 다양한 연령의 순례자를 볼 수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대부분 은퇴자가 많다고 한다. 남편도 일을 하면서 40일의 휴가를 내기는 힘들다. 나는 나중에 남편과 가는 것보다 지금 가고 싶었다. 순례길은 시간 부자만이 갈 수 있는 곳이다. 경쟁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한국 사람들은 정말 열심히 일하고 늘 자기 개발을 한다. 그래서인지 애쓰지 않아도 된다는 메시지의 책이 인기가 있다. 은퇴 후 그토록 원하는 곳을 가게 되었으나 건강이 걱정되어 20Km를 걸으며 물집이 생기는지, 생겼을 때 물집을 터뜨리는 것이 좋은지 아니지 직접 실험을 한 분이 계셨다. 나도 체력이 좋지 않은 편이라 아주 사소한 건강 정보를 꼼꼼히 메모했다. 그리고 여러 루트를 통해 인진지 양말을 알게 되었다. 우선 발가락 양말 liner (cool max 75)을 신고 울양말 trailer (cool max 81)를 신는다. 물집은 대부분 물기 때문에 생긴다. 계절과 상관없이 걷다 보면 땀이 차고 땀이 배출이 되지 않은 채 걸으면 불집이 생기는 것이다. 발가락 양말은 물기가 닿지 않게 하고 울양말은 통풍이 잘 되어 땀을 배출하는 역할을 한다. 나도 오늘 실험을 했다. 일요일마다 남편과 왕숙천을 걷고 있다. 지난주 2시간 걷고 오른쪽 엄지발가락에 살짝 물집이 생겼다. 오늘은 인진지 양말 두 개를 신고 걸었다. 3시간 정도 걷었는데 물집이 생기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많이 걸어도 발목이 아프지는 않다. 그럼 목이 올라오는 등산화를 살 필요가 없는 것이다. 목이 있는 등산화는 발목이 약한 사람에게 추천한다. 4월에는 비가 많이 올 수 있으니 방수가 되는 신발을 사야 한다. 지금 신고 있는 hoka 신발도 걷기 좋아하는 사람이 추천해서 구매했는데 정말 좋다. 그런데 신발을 통해 물이 들어오면 물집이 생길 수 있다. 가장 조심할 부분이 물집이다. 물집방지밴드와 풋크림도 챙겨야 한다. 걷다가 쉴 때는 양말을 벗고 발이 쉬게 해 주고 숙소에 돌아와서는 깨끗이 씻은 후 풋크림을 발라주고 동네를 돌아다닐 때는 슬리퍼를 신는다. 이 정도면 거의 물집 전문가이다. 물집이 생기면 바늘로 터뜨리는 연습도 해봐야겠다.
생장피에드포트 (saint jean pied port)는 프랑스 남서부 바욘 주에 있는 작은 도시로 중세 시대 성벽의 흔적들이 많고 주교 감옥과 성모승천 성당이 유명하다. 볼거리가 많기도 하고 비행기, 기차를 타고 도착하자마자 몸이 피곤할 것 같아 도저히 첫 번째 과제 피레네 산맥을 넘을 수 없을 것 같아 1박을 할 생각이다. 나는 벌써 피레네 산맥 나폴레옹의 길이 걱정이 된다. 이 고비만 넘으면 편하다고 하는데 하필 첫날이 난코스라 벅찬 각오를 하게 만든다. 그런데 오프 모임에서 뜻밖의 소식을 들었다. 겨울에는 피레네 산맥을 넘을 수 없고 겨울은 3월 31일까지란다. 정말 몰랐던 정보이다. 눈앞이 깜깜했다. 내가 3월 24일을 출발일로 정한 이유는 가장 좋아하는 4월에 걷고 싶어서이고 5월 5일 엄마의 기일이기 때문에 4일에 도착하는 날로 정한 것이다. 그런데 3월이 겨울이라니. 피레네 산맥은 4월 중순까지도 날씨를 보면서 그날그날 통제를 한다. 어기면 벌금을 낸다. 그래서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기 가장 좋은 계절은 4월 중순부터 5월까지인 것이다. 나는 그럼 어떻게 론세스바예스로 가냐고 질문을 했다. 발카를로스를 통해 우회하는 길로 가야 한다. 산맥을 넘는 길보다는 힘들지 않나 보다. 남편은 다행이라고 하지만 25Km로 거리는 더 늘어났다. 아름다운 피레네 산맥을 볼 수 없어 아쉽지만 이게 나의 운명인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