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집에만 있는 날 6일째이다. 제때 밥 챙겨 먹고 꼬박꼬박 약 먹으면서 빨리 상처가 아물길 최선을 다하고 있다. 오랜만에 고모에게서 전화가 왔다. 나의 고모는 엄마보다 훨씬 젊지만 언니 같지는 않은 애매한 나이의 어른이었다. 제사가 많던 그 시절, 명절에는 친척들이 당연히 자고 가는 그 시절에 고모는 늘 내 옆에 있었고 반말을 할 수 있는 유일한 어른이었다. 그 시절은 남녀 차별이 만연한 시대, 삼촌들만 공부시키고 막내 고모는 공부를 시키지 않았다. 아버지가 아닌 큰오빠였던 나의 아버지는 할머니와 삼촌, 우리 가족을 책임지고 있는 중 막내 고모와 막내 삼촌 중 누구를 공부시켜야 하는 갈림길에 고모를 희생시켰다. 고모는 유명한 고등학교에 당당히 붙었고 삼촌은 재수를 해서 턱걸이로 삼류? 고등학교에 붙은 상황이었다고 한다. 어머니도 아닌 큰언니였던 나의 엄마도 늘 그 선택에 마음 아파했다. 고모는 아버지와 어머니가 사랑하고 믿는 유일한 친척이다. 늘 삼촌들은 아버지 속을 썩이는 짓만 했고, 고모는 한 번도 아버지에게 손을 벌리지 않았고 똑소리 나게 가정을 꾸렸다. 지금도 이마트에서 일을 한다며 놀러 오라고 씩씩하게 말씀하신다. 나는 나의 고모가 자랑스럽다. 그리고 존경한다. 고모는 나의 말에 똑똑한 사람이 지금 이러고 있냐며 호탕하게 웃는다. 아. 고모가 공부를 조금만 더 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동안 연락을 자주 하지 않아서 할 이야기도 많다. 손님이 오면 잠깐만 기다려하며 전화를 놓지 않으신다. 나도 오랜만에 엄마와 이야기하는 기분이 들었다. 고모의 딸 지영이가 아기를 낳았다고 한다. 나는 지영이와 승현이, 나의 사촌들을 정말 많이 예뻐했다. 아기를 좋아하는 나는 너무나 지영이의 아들이 궁금하고 보고 싶다. 고모 쉬는 날 놀러 가겠다고 약속을 했다. 승현이는 어떻게 지내느냐는 말에 한숨을 쉬신다. 이혼을 했다고 한다. 안 맞으면 이혼을 할 수도 있지만 그래도 사람에게 받은 상처가 남아 있으니 승현이가 힘들었겠다고 위로를 했다. 그런데 고모가 더 상처를 받은 모양이다. 시어머니 노릇을 하지 않고 정말 며느리에게 잘해주었는데, 여자 자매도 없어서 정을 주며 잘 지내려고 했는데 속상하다고 하신다. 고모는 없는 살림에 아들, 며느리에게 집을 장만해 주었다. 그런데 빚이 많아 집도 다 팔고 결국 이혼했다고 하니 얼마나 속상하겠는가. 본인에게 쓰지 않고 왜 자식들에게 재산을 주었을까. 무엇보다 잘해 준 그 마음이 얼마나 허전할까. 고생한 고모가 행복했으면 하는 내 마음에 속이 상했다. 나의 핏줄, 가족, 친척들 이야기는 항상 좋을 수는 없다. 아프게 인연을 끊을 만큼 애증이 있어 서로 바라보기가 힘들 때도 있다. 고향, 어린 시절, 향수라는 단어는 어쩌면 아픔을 지우려는 마술인지도 모른다. 잠깐 도취하지만 결국 상처를 보게 되고 다시 고개를 돌리지만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생각이 나는 그런 관계이다.
저녁에는 박완서의 14주기 추모 공연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먹었을까>를 보았다. 일제 강점기와 6.25 한국 전쟁을 겪은 우리 민족은 누구보다도 열심히 살았다. 각자의 꿈을 향해 성실하게 노력해도 징용으로 끌려가고, 의용군으로 끌려가고, 같은 민족끼리 총부리를 겨누며, 비참한 시기를 보냈다. 누군가가 희생한 덕에 내가 살고, 내가 희생하면 누군가 사는 시대였다. 내가 겪어보지는 못했지만, 우리의 역사는 내 안에 흐르고 있고 우리는 서로의 자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기에 서로 공감하고 아파하고 웃을 수 있고 용기를 줄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치열하게 싸워 여기까지 왔다. 나의 고모도, 박완서 작가도, 그의 어머니도, 그의 오빠도, 우리의 부모님들도. <소년이 온다> 책 속에서 "내 안의 깨끗한 무엇, 세상에서 가장 거대한 숭고한 심장, 단단하고 투명한 진짜, 영혼, 양심"이라는 구절이 있다. 우리 안에는 아픔도 있지만 이런 고귀한 정신이 있었다. 나는 그것을 느꼈고 나의 조국이 사랑스럽고 자랑스럽다. 싱아는 사라졌지만 작가는 힘겹게 글을 남겼고 후대는 기억하고 있다. 그리고 혼란스러운 이 시국도 현명하게 극복하리라 굳게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