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덕궁 대온실
창덕궁 끝자락에 하얀 건물이 있다. 아이들이 초등학생 때 온 기억이 있다. 창덕궁은 세계 문화유산 유네스코에 등재된 건물이다. 이유는 인위적으로 네모 반듯하게 건물을 배치하지 않고 자연환경에 맞춰 궁을 지었기 때문에 높은 평가를 받았다. 그런데 저 하얀 건물은 좀 생뚱맞다는 생각이 든다. 분명 근대화 시대 지은 건물이라 추측할 수 있다. 순종을 위로? 하는 차원에서 일본이 지은 대온실이다. 따라서 광복 이후 일제 잔재이기 때문에 없애자는 이야기가 나왔다. 그런데 위치가 외지다 보니 지금껏 그대로 생명을 유지하고 있다. 이금이 작가는 대온실의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대온실 수리 보고서> 소설을 썼다.
영두는 대온실 수리 작업에 문화재 공사 백서 기록 제의를 받는다. 중학생 때 창덕궁 근처 원서동에서 살았던 기억이 좋지 않았다. 그 점이 맘에 걸렸지만 영두는 일을 맡기로 한다. 독자는 자연스레 원서동에서 어떤 일이 있었을까 궁금해진다. 하숙집 주인 안문자 할머니의 과거는 일제강점기 일본인으로 조선에 살았던 시기부터 해방 후 일본으로 돌아가지 못한 사연과 아버지의 죽음, 남동생의 행방까지 이어진다. 책 끝 부분에서 모든 퍼즐이 맞춰진다. 영두는 여러 자료를 조사하는 과정에 대온실을 만든 일본인 건축가 후쿠다 노보루와 문자 할머니의 가정사를 알게 된다. 엄마가 죽고 강화도에서 서울로 혼자 전학을 온 영두는 안문자의 친손녀 리사에게 괴롭힘을 당한다. 아버지가 외할머니와 문자 할머니의 인연으로 하숙을 부탁했지만 결국 영두가 적응을 못하고 집으로 돌아오게 된다. 첫사랑 순신과도 결별한 채로. 한 개인의 상처와 역사의 상처, 건물의 상처는 이렇게 일맥상통한다. 친구 은혜의 딸 산아도 학교 폭력으로 힘들어하는 스미를 안타까워한다. 상처는 현재진행형이다. 일제의 잔재가 남은 건물을 없애버리면 우리의 상처는 사라지게 될까, 개인이 입은 상처는 오로지 시간이 해결할까. 영두는 오히려 아픔의 장소 원서동을 관통하면서 자신의 상처를 바라보게 되었다. 그 힘은 타인의 상처를 보듬는 과정에서 나오게 된다.
대온실이 만들어진 시기는 조선은 약했고 우리의 힘으로 만든 건축물도 아니다. "푸어한 설계능력과 푸어한 노동력, 푸어한 목재와 푸어한 기술의 시대가 남긴 문제라는 데 동의하면서도 뭐랄까. 그렇게밖에 볼 수 없어? 하는 반감이 들었어요" 문장이 있다. 이는 작가가 소설을 쓴 동기가 아닐까 싶다. 아픈 역사가 있는 건물 안에 생명을 불어넣은 이야기의 힘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백수린의 <눈부신 안부>만큼 자료 조사를 많이 한 책이다. 문화재를 수리하는 행정적 과정, 건축 용어, 온실 용어, 후쿠타 노보루의 유럽과 미국 기행은 어느 것이 허구이고 사실인지 헷갈리게 만든다. 제목처럼 소설이 아니고 보고서라는 생각이 든다. 소설을 쓰는 작가의 마음가짐과 수고를 생각하며 천천히 창덕궁을 걸어봤다. 이야기가 주는 힘이 스며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