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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자경이 나오는 영화이니까 선택을 했다. 1990년대 홍콩 영화 같은 분위기가 난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내 스타일이 아니다 싶었다. 더 볼까 말까 살짝 망설이는 순간 남편 웨이먼드가 갑자기 엘리베이터에서 자기가 다른 세계에서 온 존재라고 말한다. 외계인 이야기인가 보다 하고 화면을 껐다. 아르바이트를 하고 온 딸이 저녁에 영화를 보자고 한다. 우리 둘은 영화 한 편 고르는 것도 너무 많은 시간이 걸린다. 서로 본 적이 없는 영화여야 하고 너무 잔잔해도 안 되고 유치해도 안 되고 미성년관람 불가 영화는 서로 민망하니까 패스하고 등등 어쨌든 그날 딱 끌려야 한다. 우리는 왜 이리 선택해야 하는 것이 많을까. 무엇을 선택해야 하나 또 하나의 공부가 늘어난 셈이다. "에에올"을 본 딸이 이 영화가 유명하다고 한다. 나는 10분 정도 보고 끈 영화인데 내 취향은 아니지만 딸과 함께 보는 행복한 시간이니 노력하겠다 맘을 먹었다. 드디어 영화를 선택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영화는 우리의 인생 영화가 되었다. B급 영화 같은 요소를 주는 코믹과 마치 어린이 머릿속에서 나온 듯한 상상력은 숨을 쉴 틈조차 주지 않는다는 느낌을 준다. 쉴 새 없이 바뀌는 화면은 마치 방금 전 영화를 고른 우리의 모습과도 같다. 정보의 홍수 속에서 검색하고 또 검색하는 듯한 장면은 우주 속 우리의 여러 모습이다. 멀티버스(multiverse)가 영화의 소재이다. 처음 내가 외계인 이야기인 줄 착각한 부분, 외계인이 바로 우리 자신인 것이다. 멀티버스 안에서 에블린은 수많은 자신을 만난다. 마치 이 사람 저 사람 검색을 하듯 에블린은 세탁소 주인이자 가수이자 요리사 등 다양한 모습이 있다. 나는 불교의 윤회설이 떠올랐다. 우리는 시간을 직선으로 인식하다. 이 생애가 끝나면 다음 생애가 온다고 생각하다. 그런데 생애가 동시에 존재하는 것이다. 이 길을 선택하지 않았다면 우주 어느 곳에서 나는 다른 모습으로 살고 있다. 기발한 상상력이다. 과학적, 철학적 요소는 아직도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다시 한번 더 봐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다른 요소에도 소름이 끼쳤다. 바로 모녀의 관계이다. 방금 영화 한 편을 고를 때도 우리는 티격대격한다. 남자들은 서열이 있고 여자들은 서열이 없다고 한다. 사냥을 하던 시기 자신의 목숨을 바치는 용맹을 보여주는 사람에게 당연히 존경하는 마음이 들 것이고 또한 일의 진행에서는 복종과 규칙이 있어야 효율적이다. 그 문화는 그대로 군대로 이어진다. 반면 여자들은 나이가 많고 적고 힘이 세고 약하건 서열이 없다. 내가 저 사람보다 낫다, 저 사람이 나에게 복종해야 한다는 마음이 들지 않는다. 따라서 여자들은 평등하기에 아주 사소한 부분에서 경쟁? 한다. 아주 복잡하다. 엄마와 딸도 마찬가지이다. 거기에 유교 문화까지 겹친 동양인 모녀 관계는 더욱 복잡하다. 나는 감독이 그 섬세한 감정을 캐치한 것이 놀랍다. 집에 있는 남편도 우리 둘의 관계를 알다가도 모르겠다고 한다. 친정 아빠도 엄마와 나의 관계에 중간에서 늘 힘들어했다. 엄청 좋았다가도 싸우고 눈물을 흘린다. 역시 섬세한 사람만이 위대한 예술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부 투파키는 허무주의에 빠져 자신을 놓으려 한다. 이것도 해봤고 저것도 해봤고 성공도 쉽게 한 사람이 결국 느끼는 감정은 허무감이다. 최고의 전성기의 에블린이 아닌 최악의 상태인 에블린을 웨이먼드가 찾아간 것도 역발상이면서도 철학적이다. 좀 결은 다르지만 너무 많은 정보 속에 우리가 느끼는 감정이 아닐까 싶다. 유튜브 세상에는 별의별 것이 다 있다. 문 밖으로 나가지 않아도, 비행기를 타지 않아도 된다. 심지어 먹는 방송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허기를 채우기도 한다. 그럼 내가 할 일은 무엇인가. 영상으로, 정보로 다 알게 된 세상에서 나는 무엇을 해야 하나. 산티아고 순례길의 동영상도 정말 많다. 준비하는 마음에 동영상을 보면 벌써 나는 그 길을 걷고 있다는 생각이 들고 신비감? 이 사라진다. 너무 다 알고 가면 재미없을 것 같아 동영상을 안 보기로 했다. 바로 이런 마음이 아닐까 싶다. 이제는 AI가 바로 문제를 해결해 주는 세상이다. 더더욱 우리가 할 일이 없어졌다. 쉬고 놀기만 하면 되는 유토피아가 왔지만 정작 우리는 허무감을 느끼게 될지도 모른다. 뻔하지만 결국 내가 온몸으로 느끼는 세상, 내가 찾아내고 타인과 관계하는 세상이 나의 우주인 것이다.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엉뚱한 행동을 해야만 우주로 점프를 할 수 있는 것처럼. 아무도 나의 인생을 예측할 수는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