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은 그동안 뭐 하고 놀아야 하나
12월 일을 정리할 때 집으로 가져오는 물건이 많아지면서 집도 동시에 정리를 했다. 순례길을 떠나기 전에 정리를 하고 가면 식구들이 편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나의 짐이 많아지면서 안방이 좁게 느껴졌다. 조금 넓은 딸의 방과 바꾸었다. 정리하는 일이 본격적으로 되어 버렸다. 이참에 딸도 대청소를 하게 되었다. 정리의 시작은 버리기이다. 안 읽는 책들, 안 입는 옷들, 안 쓰는 물건은 가차 없이 버렸다. 방들을 정리하고 나서는 가장 난이도가 높은 부엌 정리도 했다. 뒷베란다에 있는 김치냉장고를 부엌으로 옮기고 부엌에 있는 그릇장을 안방으로 옮겨 책꽂이로 용도를 바꾸었다. 요리는 할 때 좋은데 뒷정리를 바로 하지 않으면 청소하기가 참 힘들다. 나의 식구들은 다 요리를 한다. 대학생인 아들, 딸에게 나는 매번 요리를 해주지 않는다. 일도 하기도 했지만 그들은 성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식구들은 요리하는 것까지는 잘하는데 설거지가 어설프다. 전기레인지, 후드 등을 잘 닦지 않는다. 말을 해도 잘 듣지 않는다. 잔소리로 이어지면 요리를 하지 않을까 봐 그만두었다. 내가 사랑하는 부엌은 엉망이 되어갔다. 아, 모두 내려놔야 한다. 부엌은 같이 쓰는 공간이니까 식구들 다 같이 열심히 청소를 했다. 이렇게 간단하게 써버리면 끝인 정리와 청소에 대한 설명은 허무하다. 한 달 정도는 정리하고 버리고 쓸고 닦으면서 틀을 만들어갔다. 딸의 방을 정리하면서 안 쓰는 책꽂이도 새롭게 용도가 바뀌었다. 세로로 길게 서있는 책꽂이를 들어오는 현관 입구에 가로로 눕히고 엄마, 아빠가 주신 도자기, 돌, 여행 가서 산 기념품 등을 한 칸씩 배치하면서 미술관 느낌으로 바꾸었다. 공간만 차지하는 1인용 소파는 당근으로 무료 나눔을 했다. 집이 이사를 한 것처럼 새롭게 단장이 되었다. 사실 순례길을 홀로 떠나는 나의 마음은 식구들에게 조금 미안하다. 열심히 일하는 남편, 아들, 열심히 공부하는 딸이 보기에는 엄마만 놀러 다닌다고 느낄 것 같다. 물론 겉으로는 잘 다녀오라고 하지만 너무 뻔뻔하게 좋아하기만 하지는 못하겠다. 일단 집 정리를 마치니 한결 마음이 놓인다. 잘 정돈된 공간에서 각자 요리를 해서 먹으면 된다. 나는 한 달 동안 먹을 곰탕 따위는 끓이지 않을 것이다. (남편이 유일하게 못하는 멸치볶음만 만들어놔야지)
캠핑을 다니기가 취미인 남편에게 순례길 다녀온 5월에 같이 다니자고 말했다. 그러다가 남편 혼자라도 가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으로 바뀌었다. 카라반 배터리가 고장이 나서 12월, 1월, 2월에 통 캠핑을 가지 않았다. 물론 12월 정치적인 문제로 주말마다 촛불집회에 나가고 마음이 안정이 되지 않아 캠핑을 즐기고 싶은 마음도 싹 사라졌었다. 카라반을 고쳐야 남편이 딸과 아들과 반려견과 친구들과 캠핑을 즐길 것 같다. (아들, 딸이 같이 갈 줄지 모르겠다) 오늘은 AS 받는 일에 시간을 들였다. 다음 주는 텐트도 정리하고 다른 장박 장소로 옮겨야겠다. 지금 장박 하는 곳은 돌아오는 길이 잘 막히고 캠핑장 공간 밀도가 너무 높다. 1시간 간격으로 오가는 곳에 장박을 하면 좋을 것 같다. 나 없이도 식구들이 잘 지내길 바라는 마음이 크다. 그래야 나도 잘 즐길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