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은 무거워
(헬스장 6km, 만보 걷기)
갑자기 봄이 왔다. 봄은 조바심을 가지게 만든다. 금방 지는 해를 아쉬워하듯 봄을 즐겨야 한다는 마음이 든다. 오늘 하루 일정이 없는 딸과 마치 며칠 전 한 약속을 지키듯 아차산 숲 속 도서관에 갔다. 집에 있기도 도서관에 있기도 애매한 날씨였다. 버스를 타고 내려 굽이굽이 골목길을 걸어서 갔다. 이제는 걷는 일이 익숙하다. 시간적 효율만 생각하면 조금 더 책을 읽기 위해서는 차를 가져가야 하지 않을까 생각을 했을 것이다. 2시간만 책을 읽어도 걸어서 가는 것이 더 좋다. 우리가 배우고 느끼는 것은 책에만 있는 것이 아니기에. 예쁜 카페도 많아서 돌아오는 길에는 술도 한 잔 했다. 걷기를 잘했다. 숲 속 도서관은 야외에도 벤치가 많다. 나는 가져간 책이 있어서 밖에서 읽고 서울 시민이 아니라 대출이 되지 않는 딸은 안에서 읽었다. 아침에는 최진영 작가의 <홈 스위트 홈>을 읽었다. 2023년 이상문학상 대상을 받은 작품이다. 오후에는 최진영의 <구의 증명>을 읽었다. 두 작품 모두 시간의 개념을 독특하게 바라보고 있다. "시간은 발산한다" 문장이 말한다. 우리는 과거의 기억으로 현재를 살고 현재의 기억으로 미래를 산다고, 시간은 동시에 일어난다고. 딸은 엄마의 모습에서 자신의 미래를 보고, 엄마는 딸에게서 자신의 과거를 바라본다. 둘은 현재에 동시에 존재한다. 한 사람은 사고로 죽고 한 사람은 병으로 죽고, 한 사람은 돈으로 죽는다. 그리고 담이는 사랑하는 사람의 몸을 먹는다. 그것이 죽은 구를 증명하는 방법이다. 부모의 가난은 구의 미래였다. <그렇습니까 기린입니다> 소설처럼 대물림되는 과거와 미래는 동시에 일어난다. "아직 아무것도 시작하지 않았는데도 실패는 예정되어 있는 것 같고 할 수 있는 일은 정해져 있는 것 같고 그래서 이미 진 것 같았다." 문장이 기억에 남는다. 사랑하고 희망을 가지는 일조차 어려운 청춘의 이야기와 희망을 가지기 위해 현재를 잃어버린 가족의 이야기는 울림이 컸다. 아. 이렇게 재미있는 책을 순례길에서는 읽지 못한다. 단지 책이 무겁기 때문이다. 나는 한강의 시집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를 한 장씩 사진으로 찍었다. 소설도 몇 편 목소리 다운을 받아야겠다. 이렇게 재미있는 책을 안 읽을 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