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 동아리를 부탁해
은행에 가서 200유로 환전을 하고 도서관으로 향했다. 우리 동네 맛집 도서관이다. 책을 읽으러 오는 사람보다 밥 먹으러 오는 사람이 많다. (단 점심시간에만) 엄마밥이 그리울 때면 나는 도서관으로 간다. MSG 없는, 오랜 내공으로 제철 재료만으로 맛을 내는, 집에서 만든 것 같은 반찬은 가짓수도 많다. 식판에는 밥을 놓는 공간이 있는데 거기에 밥과 함께 반찬 두 가지를 놓아야 모든 음식을 식판에 담을 수 있다. 봄향기 가득한 취나물 무침, 무가 유독 맛있는 명태조림, 알싸한 꽈리고추 멸치볶음, 비린맛 없는 미역줄기 볶음, 고소한 콩비지 찌개, 동그랑땡, 계란 토스트와 군고구마를 먹고 나면 저녁밥을 먹을 수가 없을 정도이다. 마지막으로 구수한 누룽지밥도 먹을 수 있다. 오전 11시 30분부터 줄을 설만 하다. 이 음식을 먹고 순례길을 떠나야 힘이 날 것 같았다. 든든하게 배를 채우고 2시에는 그림책 동아리에 참여했다.
조원희 작가의 <우리 집은> 책은 마음이 아픈 내용이다. 주택에서 아파트로 이사 온 식구들은 행복해한다. 아, 로제의 <아파트> 노래가 나올만하다. 전 국민이 아파트에 이렇게 살고 싶어 한다. 식탁에서 밥을 먹고 욕조에서 목욕을 하고 현관문을 열어놓으면 시원한 맞바람이 분다. 옆집에는 아기가 살고 복도 끝에는 강아지도 산다. 그런데 친구들은 임대가 뭐가 그렇게 좋냐고 면박을 준다. 아, 아이들이 읽는 그림책에 이런 내용이 나오다니, 물론 조원희 작가가 시사성 있는 내용을 말하는 작가이지만 내용에 살짝 놀랐다. 아이는 묻는다. "임대에 사는 건 부끄러운 거야?" 엄마는 말한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이 부끄러운 거야" 우리는 이 부분에 감동을 했다. 엄마, 아빠가 단단한 사람들이니 아이들은 행복하고 잘 클 거라고 흐뭇해했다. 반전이 있는 그림책이다. 우리는 남의 시선에 자신의 행복 평가 기준을 만드는 것이 아닐까. 남들에게 잘 산다고 보이기 위해서, 또는 무시당하지 않기 위해서 좋은 옷을 입고 넓은 집에 살려고 그렇게 발버둥 친 것이 아닐까. 아이들은 잘못이 없다. 어른들이 하는 말과 행동을 그대로 따라 할 뿐이다. 이런 속물 어른들은 만나면 나는 험한 말을 할 수 있을까. 요즘 한 문장을 생각해 냈다. "부끄러운 줄 아세요" 문장이다. 나는 그동안 용기가 없었지만 최소한 이 말을 하고 살 것이다. "당신, 부끄럽지 않아요? 부끄러운 줄 아세요."라고. 오늘 그림책에서 비슷한 문장이 나와서 기뻤다. 화를 낼 일도 마음 아파할 일도 아니다. 그들이 불쌍한 사람들이다. 게다가 부끄러움도 모른다. 최근 최재천 교수님이 이 시대에 양심이 필요하다는 말을 하는 영상을 보았다. 그렇다.양심, 수오지심이 필요하다. 또한 나에게는 누가 뭐라고 해도 흔들리지 않을 내공도 필요하다. 그런데 우리는 자식, 가족과 관련이 되는 순간 마음이 흔들리기도 한다. 경쟁하지 말고 모두 다양함을 존중하며 행복할 수는 없을까.
동아리 멤버 두 명이 일을 하는 시간과 안 맞아 빠지게 되었다. 내가 대신 책 선정 목록을 만들어 사서 선생님에게 전달했다. 순례길을 떠나는 4월에 그림책 동아리가 계속 유지되길 바랐는데 멤버들이 부족해서 5월에 만나기로 했다. 따뜻한 마음을 나누는 소중한 시간, 그동안 안녕 그림책 동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