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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5 (산티아고 순례길까지)

난민을 부탁해

by 하루달

성당에서 난민 가정 봉사자를 모집했다. 성경공부를 하는 봉사자님이 자신이 하는 봉사 이야기를 들려주었을 때 나의 마음이 움직였다. 성경을 읽는 이유는 선을 행사하기 위해서이다. 나 자신, 내 가족뿐만 아니라 모르는 타인에게 선을 베푸는 것이 종교의 정체성이다. 의정부 교구에서 매주 토요일 3시간씩 다섯 번 교육을 받았다.


인구의 5%가 다양한 민족으로 구성이 되면 다문화 국가가 된다. 한국은 다문화 국가가 되었다. 그러나 한국의 난민 인정률은 1.7%이다. 일본보다는 나은 숫자이지만 여전히 타인을 배척하는 분위기이다. 난민이라는 단어의 유래는 프랑스 refugie이다. 1598년 낭트 칙령으로 프랑스 내에서 가톨릭 이외에 개신교의 종교적 자유를 인정하였다. 1685년 낭트 칙령이 철폐되어 개신교의 박해는 시작되었고 20만 명의 해외 이주가 시작되었고 그들을 난민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지금은 미등록 체류자, 다문화 가정, 정치적 난민들을 난민이라고 부른다. 우리나라가 난민을 인정하지 않고 인도적 체류만을 허락하는 이유는 당연히 정치적인 이유이다. 난민으로 인정을 하면 선거권만 없고 4대 보험의 혜택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인도적 체류는 매년 갱신을 해야 하고 당연히 좋은 일자리를 얻을 수 없다. 우리나라도 난민의 역사이다. 단편소설을 보면 연해주로 일자리를 찾아 떠나는 사람들이 나온다. 만주, 일본, 미국으로 독립운동을 하러 떠난 적도 있었고, 한국전쟁으로 전쟁고아를 입양 보냈고, 현재는 많은 사람들이 이민을 가기도 한다. 이집트에서 탈출한 이스라엘의 역사도 난민의 역사이다. 시몬 베이유 철학자는 흩어진 사람들이라는 단어로 "뿌리가 뽑힌 사람들", 디아스포라라 명명했다. 그들이 뿌리를 내리기 위해서는 공동체 삶에 참여해야 한다. 그들을 편견 없이 제대로 알고, 곁을 내주고 벗이 되어 함께 살아갈 수 있게 도와주어야 한다. 프란체스코 교황은 성당 안에서 난민을 수용할 것을 요구했다. 구리와 의정부, 파주는 난민을 수용할 성당 안에 공간이 없다. 그래서 1 본당 1 난민가정 돌봄 사업으로 가정으로 찾아가기로 결정했다. 봉사자들은 성당을 대신하여 찾아가게 되는 것이다. 왜 난민을 도와주어야 하는가 활동가들의 사명감과 의무도 있고 우리의 경우는 신앙인의 정체성이다. 내가 도와주는 난민도 정확히 말하면 미등록 체류자이다. 그들도 매년 갱신을 해야 한다. 그런데 그들도 한 사람당 16만 원이라는 많은 건강보험료를 낸다. 이 점도 그들에게 버거운 부분이다.


이슬람교를 믿는 난민이 오기 때문에 이슬람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는 하나님을 믿는 하나의 종교이다. 그러나 차이점은 있다. 이슬람은 선교를 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결국 사람들이 하나님을 알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또 이슬람인들은 거의 개종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따라서 그들의 이 세대, 삼세대가 한국에 정착을 해도 종교를 바꾸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종교로 모든 것을 판단해서는 안된다. 서로의 종교를 이해하면 한국의 문화를 받아들여 자연스레 정착을 할 수 있다. 이슬람은 7세기 아라비아 반도, 메카와 메디나에서 무함마드가 하느님의 계시를 받고 말씀을 전하며 선포하였다. 따라서 예수님의 존재는 인정하나 부활을 믿지 않고 이슬람은 나중에 업그레이드된 종교라 생각한다. 세계 25%가 믿는다. 이슬람을 믿는 사람을 무슬림(남), 무슬리마(여)라 부른다. 이슬람의 다섯 개의 기둥은 신앙고백 (샤하다), 예배(하루에 5번), 자카트(종교구빈세), 단식(라마단), 성지순례(건강과 경제적 능력이 허락할 때만)이다. 이슬람의 여섯 가지 믿음은 절대자(알라), 경전(코란), 예언자(아담, 아브라함, 야곱, 노아, 요셉, 모세, 무함마드), 천사(가브리엘), 최후의 심판, 정명(예비하심)이다. 또 이슬람은 기독교와 다른 점도 같이 공부한다. 정명이란 하느님이 모든 것을 이미 다 정해놓았다는 운명론과 같은 것이다. 그러면 악행을 저지르는 것은 설명이 되지 않는다. 그래서 철학자과 법학자의 논쟁이 치열하고 법학자에게 고해성사받듯이 자문을 구한다고 한다.

우리나라에는 이슬람과 어떤 역사적 관련이 있을까. 신라의 처용가는 사실이 아니라는 주장이 역사학자 대부분의 의견이라고 한다. 고려 때 원나라 공주가 튀르기예 시종과 함께 들어온 사실이 있다. 그들은 고려에 그대로 살기로 하는데 덕수 장이라는 왕명을 받는다. 장동건은 그들의 후손이다. 그래서 그가 한국인의 전형적인 외모를 갖지 않은 것이다. 조선 세종 때 이슬람교에 대한 갈등의 상소가 올라왔고 이에 조선은 다른 종교를 인정하지 않게 된다. 일제 강점기 러시아에서 이슬람에 대한 탄압이 시작되자 일본이 그들을 정치적인 이유로 도왔고 일본으로 도망을 가는 중 우리나라에 머물렀다. 해방 후 당연히 친일을 한 그들은 쫓겨났다. 6.25 전쟁 때 UN 참전용사로 20만 명의 이슬람 문화권 나라가 도와줬다. 또 산업화 시대 중동건설 붐으로 국가가 주도적으로 이슬람을 지지했다. 그때 이태원에서 살게 해 준 것이다. 현재는 난민 중 무슬림이 23만 명이 살고 있다. 그러나 제주 예멘 난민 사건, 대구 모스크 건립 갈등, 울산 아프가니스탄 특별기여자 정착 갈등이 있다. 이슬람은 테러리스트라는 스테레오타입이 있다. 그러나 종교적인 면에서 공통점이 많은 나라이고 우리나라와 역사적 연결점이 많다. 친구를 만날 때 종교 때문에 손절을 하지는 않는다. 다만 서로의 종교를 부인하고 선교를 하면 갈등이 생긴다. 우리는 낯선 것에 두려움을 느끼는 것 같다. 그리고 그 낯설게 느끼는 이유는 책이나 매체를 통해 자주 접하지 않았고 미국과 친한 우리는 당연히 그들처럼 경계심을 가지게 된 것이다.


독재에 반대하는 민주주의 시위가 2010년에 이집트에서 일어났다. 의과 대학에서 공부한 모나 씨는 2013년 이집트 최초로 청년 의회를 만들어 활동하고 2016년 경찰에 잡혀 45일 구금을 당했다. 2017년 모나 씨는 정치적 난민으로 지금 한국에 왔다. 그녀는 WCI가 지정한 영향력 있는 사람 중 한 명이다. 2020년 법무부는 모나 씨의 신원을 확인한다며 이집트에 그녀의 정보를 노출한다. 이는 난민 협약의 기본을 위배한 것이다. 그리고 그녀는 난민불인정 상태에 있다. 모나씨는 우리에게 한국말로 자신의 상황을 이야기하고 어려움을 호소했다. 나는 우리의 민주화 운동에서 목숨을 잃은 많은 사람들이 떠올랐다. 그리고 이집트의 민주화를 응원하며 그녀의 열정과 정의감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난민은 이렇게 다양한 사연을 가진 사람들이다.

난민 가정을 돌보고 있는 봉사자 부부가 나와 그동안의 일을 이야기했다. 난민이 겪는 어러움은 비자 발급, 사회시스템의 무지, 고용 불안정, 자녀 교육이 대표적이라 한다. 봉사는 1년을 기준으로 필요할 경우 1년을 연장해 최대 5년까지 한 가정을 돌볼 수 있다. 많은 사람들에게 혜택이 가게 하기 위해 3년만 하고 다른 가정을 돌보는 것이 좋다. 그러나 3년 동안 만나면서 정이 들어 자신들은 특별한 날에는 연락을 하며 지낸다고 한다. 봉사자가 할 일은 그들에게 한국 친구가 되어 주는 것, 그들의 나라에 관심을 갖는 것, 우리와 똑같다는 생각으로 마음을 여는 것이다.


14세기 후반 알프스 이북 지역에 사람들은 왜 요셉과 성모마리아와 예수님이 이집트로 피신한 사실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을까? 무엇이 그 당시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을까? 수도사가 쓴 <그리스도의 삶>이라는 책이 발간이 되어 그 당시 큰 인기를 얻었다. 그리고 피신하는 장면이 그림으로 제작되었다. <하느님의 도성>이라는 책에서도 하느님의 도성은 나그네가 방랑하는 곳이다라는 구절이 있다. 나그네 감성이 사람들을 자극한 것이다. 출발은 창세기 아담과 이브의 에덴의 추방에서 시작한다. 그리고 이집트 탈출과 바빌론 유배에서 디아스포라 개념이 생겼다. 난민, 이민족, 나그네에 대한 감정은 양가적이다. 배제, 소외를 뜻하는 게르와 환대, 포용을 뜻하는 노크리, 네카르가 있다. 이민족이 나의 천막으로 들어올 때는 환대를 하고 식사를 대접하지만 어떤 면에서는 이민족과 결혼을 하면 멸망할 것이라고 경고를 하며 배제를 시킨다. 이스라엘인들은 바빌론 유배를 계기로 왜 자신들은 이민족으로 떠돌아다니는지 성찰을 했다. 하느님에 대한 충성심을 잃어서라고 생각했다. 비오 12세는 2차 세계 대전 때 라디오 연설을 한다. 최초로 인권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며 난민의 수용은 자연권이라 말한다. 그러나 세계인권선언에도 다른 나라로 이주를 하는 자유는 있지만 이주민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권리는 없다. 따라서 많은 나라들이 비오 12세의 발언은 주권 침해하는 것으로 맞섰다. 이제는 가톨릭에서 인권을 인간존언성이라는 말로 대신한다. 룻이 이방인인 나에게 왜 호의를 베푸는지 묻는다. 이방인을 보호하는 것은 하나님과 우리 만남의 관계성을 보여준다.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사랑을 아가페, 헤세, 애덕이라고 한다면 사람들 사이의 사랑은 호의, 배려, 헨이다. 우리는 하나님에 의해 만들어진 모상성이 있다. 그래서 인간은 존엄하다. 따라서 나그네를 배려하는 것은 바로 모두의 존엄성, 하나님의 사랑 때문이다.


첫째 아기 후드의 생일이다. 케이크를 준비하고 방문을 했다. 후드는 밖에 잘 나가지 않아 비타민 D가 부족하다. 두 돌인데 잘 걷지 못한다. 날씨가 좋을 때 후드랑 밖에 나가 놀라고 카톡을 보내면 잘 나가지 않는다. 사람들의 시선 때문일까. 둘째 아기까지 챙기기 힘들어서일까. 5월에는 성당에서 난민 가정 나들이 행사가 있다. 그때 후드가 참 좋아할 것 같다. 필요한 식재료를 챙겨주고 주위 사람들이 준 옷과 생필품을 전달한다. 냉장고를 열어보니 먹을 것이 거의 없었다. 한 달에 한 번 배달? 되는 음식을 많이 기다릴 것 같다. 아이들이 볼 때마다 조금씩 자라 있다. 기특하고 고맙다. 난민으로 인정을 받기 위해서는 한국어를 잘해야 한다고 들었다. 나는 온라인 세종학당 앱을 난민 핸드폰에 깔아주었다. 난민은 불어를 하기 때문에 한국어로 조금만 소통할 수 있다면 어학당에 취업할 수 있다고 격려해 주었다. 한국어는 어렵다. 그래도 우리나라에서 계속 살 거니까 한국어를 배워야 한다. 소소한 물품보다 정보를 주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나라도 가난한 시기가 있었다. 이만큼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교육의 힘이다. 물고기를 낚는 방법을 알려주는 것이 중요하다. 순례길 가는 동안 봉사자님 혼자 와야 한다. 성당에 제출할 보고서와 영수증을 출력해서 드렸다. 난민에게도 설명을 해주었다. 후드가 현관에서 가지 말라고 운다. 아, 우리는 정이 벌써 많이 들었다. 그동안 난민을 잘 부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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