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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라, 산티아고

4월 1일, 2일 로그로뇨

by 하루달

내가 로그로뇨에서 하루 연박을 하면서 공항에서 운명처럼 만난 친구들을 만나기로 했다. 그들은 바욘에서 1박을 하고 출발했기에 나보다 하루 늦은 일정이었다. 벌써 순례길에 오른 지 10일이다. 어제 28km를 걸었고 로그로뇨는 대도시라 볼거리가 많아 하루 쉬는 날로 정했다. 시차 때문에 이곳에서 새벽 2시, 4시에 깨다 자다를 반복하고 있다. 그래도 저녁 일찍 잠들어서 잠이 부족하다고 느껴지지 않는다. 정말 신기하게도 녹초가 된 나의 몸은 끙끙 앓는 소리를 내며 잠들다가도 아침이면 몸이 회복되어 있다. 정말 잠이 보약인가 보다. 호텔에서 1박을 할까 하다가 사립 알베르게에 왔는데 운 좋게 혼자 방을 썼다. 6개 침대에 욕실이 한 개 있는 쾌적한 곳이다. 8시가 되도록 사람이 오지 않는다. 완전 행운이다. 9시에 잠들었을 때 외국인 커플의 소리가 들리긴 했다. 커튼을 치는 침대라 모른 척하고 잤다. 그들은 새벽에 나간 모양이다. 아침 8시에 눈을 뜨니 아무도 없다 느릿느릿 씻고 어제 까르푸에서 산 딸기요구르트와 연어, 귤을 먹고 하루 연박하겠다고 말했다. 날씨가 쌀쌀하다. 어제는 봄이 아닌 여름 날씨 같더니 이곳의 봄도 변덕스럽다. 경량 패딩에 아우터까지 입고 산책을 나갔다. 예쁜 카페에서 라테와 샌드위치를 먹고 글을 썼다. 나는 길을 걷는 동안 어떤 소설을 쓸까 생각한다. 등장인물의 성격을 이렇게 했다. 저렇게 했다 마음대로 정하고 있다. 카페에서 공책을 꺼내 인물 캐릭터를 잡고 영감을 받은 책을 떠올리며 발단 부분을 써 내려갔다. 글은 사실 아이디어만 있으면 금방 쓴다. 퇴고 과정이 엄청 어렵다. 막연히 생각한 부분이 맞는지 조사도 해야 한다. 문법이 맞는지도 봐야 한다. 1인칭 시점으로 우선은 사건이 터지기 직전의 밑바탕을 까는 작업을 했다. 2시간 정도 손글씨를 쓰니 행복했다. 역시 혼자 있으니까 혼자 하고 싶었던 일을 하게 된다. 나와 이제껏 같이 걸었던 사람들은 다 떠났다. 정말 또 혼자가 되었다. 부엔까미노 앱에서 제공하는 명소를 찾아다녔다. 성 마리아 대성당에 가서 미사를 보고 야고보 교회를 가고 메르카도 광장, 에브로강 다리를 건너며 여행자처럼 돌아다녔다. 도시라 멋쟁이 스페인 사람들이 많다. 여유롭게 라테를 마시며 끝없는 대화를 한다. 성당에는 한국처럼 아줌마, 할머니들만 많다. 이제 곧 도착한다는 공항 친구들의 톡을 받고 부랴부랴 알베르게에 갔다. 너무나 반가운 얼굴들이다. 선혜 씨가 고추비빔장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아시안 식료품 가게에 가서 라면과 떡볶이를 사고 까르푸에 가서 오이, 계란, 샐러드, 레몬 맥주, 사과, 바나나, 삼겹살을 샀다. 알베르게에서 요리를 하니 한상 푸짐하게 차려졌다. 대단한 한국인이다. 나는 아무리 빵순이여도 고추장이 들어간 음식을 먹어야 한다. 겨우 하루 늦게 출발한 그들은 많은 한국인을 만났다고 한다. 그동안 나는 동양인이 없어 외로웠는데 중국인도 많다고 한다. 운명은 하루라는 평행선을 달리는 정말 미묘한 차이인가 보다. 저녁에는 엔젤 맛집에 가서 타파스를 먹었다. 푹 쉬고 잘 먹은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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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인 4명이 방으로 들어왔다. 자신들도 영어를 조금밖에 못 한다고 한다. 파파고를 썼다. 그들은 가족이고 일 년에 일주일만 순례길을 걷는다고 하며 몇 년 더 걸어서 산티아고에 갈 예정이라 한다. 집에서 차를 타고 3시간 걸린다고 한다. 나는 부럽다고, 14시간 비행기를 타고 와야 해서 그렇게 하기 부담스럽다고 했다. 나도 언젠가는 동생네와 우리 가족이 일주일만 산티아고 근처를 걷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자꾸 버킷리스트가 생긴다. 경주 벚꽃 마라톤도 하고 싶고, 부스를 만들어 북페어에도 참여하고 싶고. 파타고니아도 가보고 싶고, 난민 보험료 문제도 해결하고 싶고 환경 캠페인도 참여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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